어제는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남의 집에 초대받은 적도 별로 없긴 했지만 소파가 있는 집에 놀러간 건 정말 오랜만이라서 우습게도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소파가 있다는 것이었다. 밥도 맛있게 먹고 거의 듣기만 하긴 했지만 대화도 즐거웠다. 한국에서는 거의 공대 사람들, 특히 우리 과 사람들과만 어울리다 보니 잘 못 느꼈던 것인데 미국에 와서는 경영대에서 경영대를 졸업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그 간극을 크게 인식하게 되어서 경영대 출신 한국인들보다 인도에서 공대를 졸업한 내 동기에게서 동질감을 느낄 때가 많아 한국인 모임은 잘 안 가고 싶었는데 어제는 즐거웠다. 나는 잘 모르는 이야기가 많아서 듣기만 하고 먹기만 했으면서도.


  사실 요즘은 인간관계에 좀 굶주려 있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아도 메시지가 와 있을 때가 드물고, 추수감사절 연휴를 앞두고 있다 보니 학부생들에게서 질문 메일이 오지도 않고, 드물게 있는 인간적인 접촉은 동기나 연구실 친구와의 대화, 그리고 주말마다 부모님과 통화하는 정도다. 지난 주에 동기한테 섭섭했던 것은 어느 정도 극복했다. 작년쯤 이런 일이 있었다면 별로 안 친했을 때니까 아예 서운함을 못 느꼈거나 초반부터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안 했겠지만 지금은 내가 이 친구를 알고 나 자신을 알다 보니 괜히 속 끓이면서 서운해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연구실 친구와는 같은 과가 아니라서 동기만큼 일부러 찾아가서 이야기할 만한 것은 별로 없지만 늘상 붙어있고 이 친구가 나와의 대화를 별로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아서 오히려 편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두 사람들에게 무한정 귀찮게 하고 관심을 부탁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보니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심심하다, 외롭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날이 많았는데 어제는 그 금요일 밤에 혼자 집에서 예능 보면서 밥을 먹고 있지도 않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지도 않고 여러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물론 어제 늦은 시간에 귀가해놓고 어깨랑 다리가 아파서 스트레칭이랑 마사지를 하긴 했지만.


  사실 지금 엄청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는 게 있다. 10월에 박사과정 사무실에 문의했을 때는 조교 영어시험을 다시 볼 필요가 없고 봄 학기에 영어수업을 들으면 된다고 했었는데, 어제 영어수업을 당장 등록할 수 없고 영어 시험을 먼저 봐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내년 1월 봄 학기 개강하는 날 시험을 보겠다고 하긴 했는데 걱정이 많다. 처음 시험을 봤던 것이 미국에 온지 2달 됐을 때였고 다음 시험은 2년 반 넘게 지낸 시점에서 보는 것이니 실력이 많이 향상되긴 했겠지만 내가 토플 스피킹에서 27점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었나? 하고 생각하면 여전히 의문이고(시험을 통과하는 수준이 토플 스피킹 27점에 해당된다고 한다), 저번 시험 때는 비록 부족하긴 했지만 그게 그 시점에서의 나의 최선이었는데 이번에는 그게 될지 걱정된다. 물론 노력은 할 거다. 어제 이메일을 받고 영어 시험에서 떨어져서 학교를 떠나는 상상, 다른 학교를 알아보는 상상 등 온갖 생각을 다 해봤는데 학점이 부족해서 나가는 거라면 모를까 영어가 부족해서 나가는 거라면 그 이상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무리일 테고, 무엇보다도 굉장히 억울할 것 같다. 어떻게든 여기 남아서 졸업까지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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