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이번 학기 학점은 망했지만 이미 정해져 있던 여행은 간다. 인디폴 공항으로 가는 셔틀이 학교 호텔 앞에서 3시 반에 출발해서 도저히 그 시간에 집에서 걸어올 자신이 없어서 1시간 전에 연구실에 다시 왔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쓰면서 온갖 딴짓을 했더니 제목을 쓸 때만 해도 4시간 47분이 남았었는데 이제 4시간 38분이 남았다.


  한 학기 내내 골치를 썩혔던 해석학에서 충격적인 성적을 받고 교수님을 뵈러 갔다가 성적은 올리지 못 했지만 재수강이라는 대안을 듣고(그 말을 듣고 교수님이 잘못 아신 줄 알았는데 학과사무실에 확인해 보니 정말 가능하다!) 다음 학기에 다시 듣기로 했다...대학원에서 재수강이라니ㅠㅠ아무튼 그래서 내년 봄 학기에는 full semester 과목 3개랑 두 번째 모듈 수업 하나를 들어서 이번 학기 못지 않게 힘든 여정이 예상되는데...뭘 들어도 재무보다는 나을 거라고, 그리고 이제 도저히 벗어나지 못 할 것 같던 그 우울한 시기를 완전히 벗어났으니 이번 학기보다는 나을 거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그나저나 수강과목을 추가하려면 교수님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성적이 그 모양이 되었으며, 재수강을 해야 하는지 납득시켜드려야 하나 모르겠다. 휴 박사를 시작할 때에만 해도 내가 서른 살을 앞두고 교수님께 성적 올려달라고 사정을 하고 재수강을 계획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동기는 지난 주 월요일에 인도로 갔는데 나는 이번 주 월요일까지 프로젝트를 제출해야 해서 죽을 맛이었다. 원래 계획은 지난 주 월화에 시험이 있으니 남은 수목금토일의 시간을 잘 보내서 프로젝트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었는데...화요일 네 시 반에 시험이 끝나자마자 그만 탈진해 버려서 수요일과 금요일은 하루 종일 집에서 자기만 해서 정작 프로젝트에 시간을 쏟은 것은 며칠 되지 않는다. 내 프로젝트 주제는 구할 수 있는 통계 데이터를 이용해서 mixed-strategy game을 만들어서 Nash equilibrium과 실제 데이터를 비교하는 것이었는데, 당장 어떤 데이터 칼럼을 이용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에만 며칠이 걸려서 매트랩 코드를 짜서 최적화 문제를 풀고, 보고서를 쓰고,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를 만드는 데에는 48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 때문에 목, 토요일은 네 시간도 못 자고 일요일은 완전히 밤을 새 버렸는데 월요일에 있었던 프리젠테이션에서 한 사람당 발표 시간이 30분에서 한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ㅠ아침 10시 반에 시작해서 오후 다섯 시에 끝났다. 다행히 이 과목은 성적이 좋다. 그렇게 수면패턴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는데 오늘은 또 집에서 나오기 전에 모든 집안일을 끝내버려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어제 새벽 다섯 시에 자놓고도 아침 아홉 시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깨어 있다. 아무래도 셔틀이랑 비행기 안에서는 거의 혼수상태로 시간을 보내게 될 듯하다. 시간날 때마다 읽으려고 책도 몇 권 챙기고 아이패드까지 가져왔는데...


  작년도 물론 혼자 지냈고 지금껏 연말은 연구실 송년회에 참석하거나 드물게 친구를 만나고 남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급하게 독서 목록을 채우기 위해 책을 몰아서 읽거나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보는 등 정적으로 보냈는데 올해는 멀고 먼 캘리포니아까지 가서 정신없이 바쁘게 보낸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간다!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오다니. 최대한 즐겁게 지내다 와야겠다.


  이제 4시간 16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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