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낮잠을 30분 정도 자긴 했지만 조금 있으면 깨어있은 지 22시간째가 된다. 어제 밤 10시 55분인가. 옷을 갈아입다가 방이 추워서 이불 속에 들어가서 안락함을 느끼다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두 시 20분이었다. 네 시, 다섯 시만 되어도 괜찮은데 두 시는 너무 심한 거 아닌가...싶어서 더 잘 생각을 했다가 너무 일찍 잠이 드는 바람에 못 하고 잤던 일들이 생각나서 영어도 좀 기웃기웃, 논문도 좀 기웃기웃하다 보니 시간도 제법 지난 데다가 피곤해서 불도 안 켜고 침대에 멀뚱멀뚱 누워 있었다. 그러다 7시가 지나서 도시락을 싸려고 드는데 이 주 전인가, 삼 주 전인가 사서 냉장고에 모셔놓고는 생각날 때마다 뿌듯했던 가지가 완전히 썩은 것을 발견해서 결국 가지볶음은 못 하고 어제 만든 악마의 무조림이랑/ 시금치병아리콩무침(시금치무침은 악마의 음식이 아니며, 제법 훌륭하기까지 하다)을 반찬으로 쌌다. 어제 저녁 때 끓인 무조림이 악마의 무조림인 이유는 간장을 좀 많이 넣었는지 매운 맛은 전혀 안 나고 거의 간장게장, 양파장아찌에 가까운 짠맛만 무에 잔뜩 배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게 무조림이 아니라 만능간장인 줄 알았다. 어제는 이 간장국물을 모아놨다 다음주에 장조림을 끓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심 때 먹어보니 저녁 때보다도 더 짜서 당장 무의 회생 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지경이다.


 이번 학기는 정말 어려운 건 한 과목이랑 논문밖에 없는데 성실하게 꼬박꼬박 숙제를 제출해야 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과업이 많다. 그에 비하면 오전 수업이 없는 날 아침 11시가 넘어서 출근을 하는 등 나태하기 짝이 없어서 아예 무슨 요일에는 무슨 일, 무슨 일, 무슨 일을 한다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세웠다. 과연 박사과정생이 책상 앞에 붙어있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는 스스로도 의심스럽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대부분 중요한 일이긴 한데 하루에 모든 일을 한다고 욕심을 부리다 반도 못 이루고 좌절하거나 아니면 하루 무리를 하고 다음날 의욕을 잃는 것보다는, 그냥 나는 하루에 최대 세 가지 일만 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그것만 하는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또 가계부를 밀렸다. 여행 다녀온 다음부터 1월 첫째주까지 영수증까지 전부 붙여가면서 쓰다가 기 이후로 쭉...그런데도 여전히 언젠가는 밀린 가계부를 전부 몰아서 쓸 거라는 헛된 희망 때문에 책상 거의 반이 영수증으로 가득차 있다. 하도 가계부를 안 쓰다보니 지출내역이 궁금해서 은행계좌랑 신용카드 계정 등을 전부 연동해놓은 가계부 어플을 봤는데 이번 달은 오랜만에 내 목표 재정상태를 달성했다. 잔액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1xxx달러를 쓰고 300달러를 저금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인데, 작년 8월에 한국 가느라, 9월부터는 여행 준비를 하느라 지출이 꽤 많아서 번번히 여기에 가까이 가지도 못 했었다. 하 이걸 5월까지만 유지한다면...이사비용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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