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이지만 오랜만에 후기 폴더에 글을 써보고 싶어서 쓴다.


  오늘은 한국인 친구들하고 만나서 저녁 먹고 들어왔다. 원래 중요한 목적이 있어서 만난 거였지만 교수님께 이메일을 안 드린 게 자꾸 생각나서 양해를 구하고 먼저 빠져나와서 연구실에서 교수님께 2주 동안 한 것들을 정리해서 보내고 왔다. 처음 합격하고 교수님과 이메일을 교환한 지 2년 반이 다 되어가는 데도 어른, 굳이 특정하자면 교수님들께 이메일을 보내는 것은 여태 적응이 안 된다. 2017년 봄학기에 내가 교수님께 쓴 이메일을 보고 터키 출신 팀원이 네 이메일은 너무 subordinate하다고 말해서 충격을 받은 이후로(subordinate를 실제로 쓰는 용례를 처음 접해서 감동받았다는 것은 함정) 어른들한테 영어로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내가 너무 비격식체로 말하는 건 아닌지, 너무 바짝 엎드려서 말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캠브릿지 영어사전에서 단어의 용례까지 찾으며 글을 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왠지 모르게 우리 교수님한테는 subordinate해도 될 것 같아서, 아니 그게 더 맞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이메일을 쓰기가 편하다는 거랄까?


  집에 도착하니 현관 앞에 아마존에 주문했던 다리미대가 와 있어서 손발만 씻고 30분 간격으로 교수님이 메일을 보내셨는지 확인하면서 두 시간 넘게 신나게 다림질을 했다. 이번 학기에 학부 티칭을 하게 돼서 블라우스를 몇 벌 샀는데 그 중 하나가 못 봐줄 정도로 구겨진 채로 와서 그걸 보고 나니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었던 옷들이 다 엄청나게 구깃구깃하게 보여서 거의 두 달을 고민한 끝에 이번 달 지름의 일환으로(보통 80달러 정도 자유롭게 사고 싶은 것을 산다) 스팀다리미와 다리미대를 구입했다. 내가 산 다리미는 아마존에서 파는 블랙앤데커(Black and decker) 브랜드 중 가장 저렴한 16.99달러짜리 스팀다리미다. 다리미대는 그냥 싼 거 아무거나 테이블탑으로 샀다. 처음엔 스탠드형으로 사려고 했다가 너무 높아서 허리가 아플 지경이라는 후기를 보고 바로 마음을 바꿔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쓰는 낮은 것으로 샀다. 말이 테이블탑이지, 한국에서라면 바닥에 앉아서 쓰는 정도다. 이걸 식탁 위에 올려놓고 쓰면 정말로 허리가 굳어버릴 듯.


  다리미의 성능은 놀라웠다. 이 모델의 성능이 특별히 좋다기 보다는 그냥 스팀 다리미 고유의 성능이 좋은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viscose나 폴리에스테르 재질을 다릴 때는 스팀이 나오지 않아서 그냥 오 좋군ㅎㅎ이 정도였다면 면, 린넨 셔츠를 다릴 때는 좀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주름이 펴지는 것은 물론 옷감의 질이 바뀌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특히 린넨 셔츠...작년에 유니클로에서 린넨 셔츠를 두 벌 샀는데 소매가 구겨지다 못 해 오그라들어서 린넨은 원래 구겨진 옷감인 줄 알았는데 다 다려놓고 보니 너무 예쁜 옷이었다. 그 중 더 심하게 구겨진 셔츠는 완전히 다 펴지지는 않았지만 다음에 한 번 더 입고 빨아서 다리면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 달 소비는 대성공이다. 굳이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다리는 중에 다리미에서 물이 새는 건지 그냥 나오는 건지는 몰라도 옷에 물방울 얼룩이 졌다는 건데 옷들이 거의 새것 같아져서 괜찮다.


  그 밖에 또 산 것은 DampRid라고 물먹는 하마처럼 통에 물을 빨아들이는 알갱이를 부어서 습기찬 곳에 놓는 제습제다. 집에 벽장과 욕실에 환기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샀다. 내가 습도에 엄청나게 민감한 것도 아니라서 아직은 차이를 못 느끼고 있지만 알갱이가 설치한지 하루 만에 서서히 녹기 시작한 것을 보면 습기가 제법 있긴 한 것 같다. 겨울까지만 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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