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방학이 한 달 반도 안 남았다. 5월은 정말 느리게 가는 것 같았는데 6월, 7월은 정말 뭐하고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일주일은 정말 게을러져서 아침을 금요일 딱 하루밖에 못 먹었지만 산책을 두 번이나 나갔다 왔더니 좀 기분이 좋았다. 다만 아직도 사람 많은 곳에 갈 엄두는 안 나서 항상 마스크를 끼고 사람이 별로 없는 캠퍼스 안으로만 다녔다. 직접 해 먹는 음식에도 완전히 질려버려서 테이크아웃의 유혹에 몇 번 넘어갈 뻔도 했지만 그러려면 학교 근처의 가장 번화가까지 가야 한다.

 

  아직까지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ICE에서 발표한 가을학기 유학생 비자 정책 때문에 좀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하이브리드 옵션을 선택한 우리 학교에서 대면수업으로 간주되는 리서치 크레딧을 듣는 대학원생이라면 학기 도중에 쫓겨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다수의 이메일을 받아서 마음을 놓았다. 나는 내 살림을 차려놓고 매일같이 생활하는 이 공간을 집이라고 부르는데 법적 지위로만 보면 정책이 바뀌면 언제라도 미국 밖으로 쫓겨날 수 있는 처지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무사히 졸업해서 어느 나라든 빨리 정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월 말에 제출한 연방 택스 리턴을 7월 1일에야 받았다. 처음으로 우체통으로 택스 리턴을 부쳤는데 주세도 연방세도 하도 소식이 없어서 혹시 그 우체통을 아무도 안 열어보는 건 아닌가 의심했었다. 다행히 주세 리턴은 한 달 만에 받았다. 그런데 연방세 리턴은 6월 말까지도 연말정산이 어디까지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federal tax return status 사이트에서 내 정보가 검색이 되지 않는다고 하다 어느 날 갑자기 7월 1일까지 은행 계좌로 쏴줄 거라는 메시지가 나오더니 정말로 입금이 됐다. 하긴 지금 이 난리가 난 마당에 IRS라고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리가 없지... 4월 말까지만 해도 연방세 리턴이 들어오면 카펫 스팀 청소기를 사고 싶었는데, 물욕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지금은 아무것도 사고 싶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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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일에 자택 대피령 phase 1이 끝나고 단계적으로 규제가 완화된 phase 2가 시작됐다. phase 1과 phase 2의 차이는 이제 비필수적 외출과 25명 이하의 사회적 모임 활동이 가능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제로 종교적 단체 활동이 허용된다는 것 등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집에 있다. 3월 초부터 학교에 잘 안 가고 사람이 없는 시간에만 장을 보러 갔고, 4월과 5월에 각각 하루씩만 외출하면서 두 달 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 시간 가까이 왜 우울함을 느끼는지에 대해 쓰다가 괜히 쓴 것 같아서 지웠다. 이전까지는 내가 왜 우울한지도 모르고 있다가 글로 써서 실체를 확인하고 나니 확실히 기분은 나아졌는데 남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쓰기에는 좀 구질구질하다. 나는 살면서 운이 안 좋았던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운이 좋거나 안 좋았던 상황이 결국에는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믿고 싶지만 집에 혼자 있으면서 밥 먹고 연구하고 운동하고 집안일만 하다 보니 이제 내 운도 다 된 건가 하는 위기감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필히 해야 할 고민이기는 하지만 당장 급한 것은 아닌 것들까지 덩달아 고민하면서 진짜 늪에 빠진 것 같다. 좀 전에는 정말로 우울해서 아버지랑 30분 동안 통화를 하고 기분이 좀 나아졌다. 어제는 누구에게라도 우울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교수님이랑 동기한테 보낼 이메일에 뭐라고 뭐라고 쓰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지웠는데, 그들에게 말하지 않고 아버지한테 얘기해서 천만다행이다.

  확실히 버티기 쉽지 않다. 나는 혼자 사니까 아무에게도 옮기지 않을 수 있고 밖에 나가지 않고도 살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정신승리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 시간이 언제 끝날지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그냥 아버지 말씀처럼 결국에는 잘 될 거라고 믿고 버틸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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