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오늘 동기한테도 말했던 것처럼, 나는 내 상황이 최악일 때는 아무하고도 공유하고 싶지 않고 고비를 넘고 나서야 사실 이러이러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어떻게 노력해서 이제는 꽤 괜찮아졌다 하고 말하는 것이 마음 편한 성격이라서 이제야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여름학기부터 매 순간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동기에게도 속 얘기를 안 했었다.

 

  9개월 동안 앓아왔던 불면증에서 제법 벗어난 상태이고, 6개월 넘게 교수님께 방치당하다 요즘은 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불면증은 좀 심각한 상태였는데 몇 시에 잠자리에 들든 새벽 다섯 시까지 잠들 수가 없어서 수업이 없던 여름학기부터 그 날은 몇 시간을 잘 수 있을지, 다음 날 아침에는 언제 일어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결국 학교 병원 가서 의사 선생님 만나고 수면유도제까지 먹어가면서(심지어 약이 안 맞아서 도중에 바꾸기까지 했다) 겨우 고쳤다. 교수님께 방치당한 것도 나름 큰 문제였는데 아무리 면담 요청을 하고 연구노트를 보내도 교수님이 읽지 않으시고 어쩌다 마주치면 아직 안 읽었다고만 하셨었다. 교수님이 올해 내내 바쁘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장 동기만 해도 불시에 연구실에 찾아오시고 학회 포스터 발표를 하는 등 정상적으로 연구 지도를 받고 있어서 더 안 좋다고 느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교수님이 내 연구주제에 더는 관심이 없어져서 날 박사과정에서 내보낼 생각을 하신가 보다 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난 벌써 서른한 살이고 유학 와서 cv에 추가할 것이라고는 아마도 좀 늘었을 영어 성적과 TA 경력밖에 없는데, 만약 여길 나가게 되면 다른 학교로 옮길 수는 있을까, 한국에 돌아가서 취업을 해야 하나 뭐 이런 걱정들까지 포함해서. 최근 한 달 반 가량은 교수님이 매일같이 불시에 연구실에 찾아오셔서 동기와 내가 각각 한 것들을 확인하고 독촉(!)하시는데, 그날그날 할 일을 하다가 일주일에 3일 넘게 밤을 새우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지금이 더 행복하다. 애써 회복한 수면 패턴이 완전히 깨져버리긴 했지만 하루 종일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니 누우면 잠도 금방 오는 것 같다. 오늘 처음으로 이 모든 고민거리들을 동기에게 말했다.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 위로를 들었지만 내가 이걸 입밖에 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괜찮아져서 사실 무슨 말을 들어도 상관없었다.

 

  사실 고민거리가 하나 더 생기긴 했다. 교수님이 여행을 가시기 전에 다음 학기 수업 신청양식에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당연히 다음 학기엔 수업을 하나도 안 들을 생각을 하고 있다가 오늘 동기랑 얘기를 하던 와중에 앞으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 세 개나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게 다 내가 수학 과목 하나에서 C를 받고 2학점 짜리 부전공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벌어진 참사다. 일찍 계산해 봤다면 지난 봄 학기나 이번 학기에 수업을 좀 더 들었을 텐데. 이게 문제가 되는 건 필수 수업을 다음 학기에 전부 듣지 않으면 졸업 타임라인이 완전히 밀리기 때문이다. 졸업논문 디펜스 최소 두 학기 이전에 졸업자격시험을 봐야 하고, 졸업자격시험을 보기 이전에 수업을 다 들어야 하는데 만약 봄 학기에 세 과목을 듣지 않으면 내년 여름에 졸업자격시험을 볼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동으로 졸업이 늦어진다. 졸업자격시험은 보통 여름과 12월에 치르게 되는데 만약 졸업을 한 학기 늦춘다고 치고 내년 12월에 시험을 보게 되면 2021년 가을학기에는 졸업논문 디펜스를 하면서 잡마켓에 나가야 한다. 결국 봄 학기에 수업을 다 들어버리는 게 최선인데, 문제는 우리 과 졸업자격시험은 그동안 연구한 성과를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업 3개 듣기+저널 논문 제출+자격시험을 전부 한 학기에 해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금 남은 과목들이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 않지만(2개 세미나+1개 수업) 과연 내가 교수님을 설득해서 이것들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설사 세 과목을 듣게 된다고 해도 수업을 몰아 듣는 목적이 졸업을 늦추지 않기 위해서인데 수업 부하가 너무 커서 논문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자격시험을 여름에 치를 수 없게 되면 결국 그게 그거다. 사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적도 있고 해서 졸업을 1년 미루는 것까지는 각오하고 있었는데 자격시험을 미루게 되면 정말로 졸업이 미뤄지게 되니까 자꾸 미련이 생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온다. 어차피 내일 교수님을 뵐 예정이니 수업 신청양식을 여러 개 준비해가서 교수님이랑 얘기를 많이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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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 친구가 집을 보러 오기로 했다. 기숙사 투 베드룸을 셰어 해서 쓰고 있는 친구인데, 아무래도 내년쯤엔 학교 밖 아파트로 이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내 방을 보러 오라고 한 지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둘 다 바쁘고 시간이 안 맞아서 결국 내일로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일요일에 청소를 한 이후로 집이 조금씩 더러워지고 있는 중이라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나조차도 한숨 나올 정도로 지저분한데 손님을 데려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서 오늘은 학교 갔다 오자마자 빨래 돌려놓고 청소기 밀고, 걸레질하고, 싱크대 청소하고, 먼지 쌓인 것들 청소하고, 일요일에 빨래해서 개지도 않고 침대에 널어놨던 것들 다 개고, 마지막으로 조금 전인 새벽 두 시에 설거지까지 끝마쳤다. 아직도 좀 너저분한 구석이 있긴 한데 내가 전업주부도 아니고... 학생인데... 이 정도면 괜찮겠지 뭐;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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