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학교에서 모든 교수, 교직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10월 31일까지 의무적으로 독감 예방접종을 하도록 하고 있다. 나는 미국에 온 2016년부터 매년 학생 보건소에서 접종을 받아서 올해도 그러려고 보건소에 전화했더니, 학교에서 따로 예방접종을 맞는 장소를 마련해서 10월 중순 전까지는 보건소에서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니 이번 주 월화수는 풋볼 경기장 옆에 있는 운동부 시설에서, 9월 다섯째 주와 10월 둘째 주에는 학교 안에 있는 체육관에서 접종 행사를 하고 있었다. 풋볼 경기장은 우리 집에서 상당히 먼데, 항상 학생들로 바글거리는 학교 체육관에 가는 건 좀 무서우니 이왕 생각난 김에 산책하는 겸 갔다 오자고 다녀왔다.

 

  예방접종은 걸어간 거리가 아쉬울 정도로 굉장히 쉽고 간단하게 끝났다. 입구에서 체온을 재고 데스크에서 보험 카드를 보여준 다음에 줄을 설 필요도 없이 곧장 간호사 선생님에게 직행해서 주사를 맞았다.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 예방접종 확인서 사진을 학생 보건소 웹사이트에 업로드하면 끝나는 거였다. 간 김에 경기장 근처에 있는 cvs에서 필요한 것도 사고(사실 cvs pharmacy를 이용해본 적이 없어서 학교 시설로 갔던 건데 차라리 처음부터 cvs에 갔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번화가에서 걸어봤다.

 

  내 생각에 밖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을 포함한 우리 동네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꽤나 코로나 예방을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거리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은 사람은 정말 거의 없는 데다 다른 사람과의 거리도 잘 유지하는 편이고, 예방접종을 받으러 온 사람들도 많았다. 건물마다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라는 메시지가 붙어 있고, 식당마다 입구에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 수가 적혀있었다. 그래서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번화가로 나올 용기가 좀 생겼는데, 카페 실외 테이블에 마스크를 끼지 않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고 오싹해졌던 것을 보면 아직 외식을 할 정도의 용기는 갖추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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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러면 안 되는데 얼떨결에 한가해졌다.

 

  몇 주 전부터 논문 때문에 말 그대로 시달리고 있었는데 어제 교수님께 보낸 것에 대한 피드백이 아직 안 와서 갑자기 붕 뜬 상태다. 어제는 오랜만에 밤에 불을 끄고 잠을 잤고 오늘은 오전 내내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러다 교수님이 그 이후에 무슨 progress가 있었냐고 물어보시기라도 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데...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원래 오전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월마트에서 식료품 배송이 오기로 되어 있었고, 11시 반에서 3시 반 사이에 코로나 테스트 키트가 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예정된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식료품 배송이 오지 않아서 계속 조회를 해보니까 엉뚱한 집으로 배달을 한 모양이었다. 운전자가 어느 집 초인종을 눌러서 그 집에 사는 사람이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지켜봤다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초인종이 없다. 월마트 고객센터와 지점 고객센터에 전화를 한 끝에 결국 내일 같은 시간에 같은 물건들을 받기로 했지만 이번 주 중 그나마 가장 큰 이벤트였던 식료품 배송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서 짜증 난다. 코로나 키트도 아직 받지 못했지만 배송업체인 UPS가 몇 시간 째 우리 동네를 돌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도록 하자...

 

  곧 가을학기가 시작되면서 학교 대면수업 옵션을 신청한 모든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하게 되었다. 대면 수업을 듣거나 기숙사에 들어갈 사람들은 14일 전에 검사를 받아서 48시간 내에 음성 판정을 받으면 시설에 접근할 수 있게 되고,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기숙사에 있거나 off-campus이지만 룸메이트가 있어서 격리가 안 되는 사람들은 학교 안 격리시설에 격리된다고 들었다. 나는 치과에 갔던 6월 25일 이후에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공간이나 좁은 반경에 있었던 적이 없어서 코로나에 걸릴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음성 판정을 받아서 지금까지 조심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인정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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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방학이 한 달 반도 안 남았다. 5월은 정말 느리게 가는 것 같았는데 6월, 7월은 정말 뭐하고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일주일은 정말 게을러져서 아침을 금요일 딱 하루밖에 못 먹었지만 산책을 두 번이나 나갔다 왔더니 좀 기분이 좋았다. 다만 아직도 사람 많은 곳에 갈 엄두는 안 나서 항상 마스크를 끼고 사람이 별로 없는 캠퍼스 안으로만 다녔다. 직접 해 먹는 음식에도 완전히 질려버려서 테이크아웃의 유혹에 몇 번 넘어갈 뻔도 했지만 그러려면 학교 근처의 가장 번화가까지 가야 한다.

 

  아직까지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ICE에서 발표한 가을학기 유학생 비자 정책 때문에 좀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하이브리드 옵션을 선택한 우리 학교에서 대면수업으로 간주되는 리서치 크레딧을 듣는 대학원생이라면 학기 도중에 쫓겨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다수의 이메일을 받아서 마음을 놓았다. 나는 내 살림을 차려놓고 매일같이 생활하는 이 공간을 집이라고 부르는데 법적 지위로만 보면 정책이 바뀌면 언제라도 미국 밖으로 쫓겨날 수 있는 처지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무사히 졸업해서 어느 나라든 빨리 정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월 말에 제출한 연방 택스 리턴을 7월 1일에야 받았다. 처음으로 우체통으로 택스 리턴을 부쳤는데 주세도 연방세도 하도 소식이 없어서 혹시 그 우체통을 아무도 안 열어보는 건 아닌가 의심했었다. 다행히 주세 리턴은 한 달 만에 받았다. 그런데 연방세 리턴은 6월 말까지도 연말정산이 어디까지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federal tax return status 사이트에서 내 정보가 검색이 되지 않는다고 하다 어느 날 갑자기 7월 1일까지 은행 계좌로 쏴줄 거라는 메시지가 나오더니 정말로 입금이 됐다. 하긴 지금 이 난리가 난 마당에 IRS라고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리가 없지... 4월 말까지만 해도 연방세 리턴이 들어오면 카펫 스팀 청소기를 사고 싶었는데, 물욕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지금은 아무것도 사고 싶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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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일에 자택 대피령 phase 1이 끝나고 단계적으로 규제가 완화된 phase 2가 시작됐다. phase 1과 phase 2의 차이는 이제 비필수적 외출과 25명 이하의 사회적 모임 활동이 가능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제로 종교적 단체 활동이 허용된다는 것 등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집에 있다. 3월 초부터 학교에 잘 안 가고 사람이 없는 시간에만 장을 보러 갔고, 4월과 5월에 각각 하루씩만 외출하면서 두 달 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 시간 가까이 왜 우울함을 느끼는지에 대해 쓰다가 괜히 쓴 것 같아서 지웠다. 이전까지는 내가 왜 우울한지도 모르고 있다가 글로 써서 실체를 확인하고 나니 확실히 기분은 나아졌는데 남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쓰기에는 좀 구질구질하다. 나는 살면서 운이 안 좋았던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운이 좋거나 안 좋았던 상황이 결국에는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믿고 싶지만 집에 혼자 있으면서 밥 먹고 연구하고 운동하고 집안일만 하다 보니 이제 내 운도 다 된 건가 하는 위기감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필히 해야 할 고민이기는 하지만 당장 급한 것은 아닌 것들까지 덩달아 고민하면서 진짜 늪에 빠진 것 같다. 좀 전에는 정말로 우울해서 아버지랑 30분 동안 통화를 하고 기분이 좀 나아졌다. 어제는 누구에게라도 우울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교수님이랑 동기한테 보낼 이메일에 뭐라고 뭐라고 쓰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지웠는데, 그들에게 말하지 않고 아버지한테 얘기해서 천만다행이다.

  확실히 버티기 쉽지 않다. 나는 혼자 사니까 아무에게도 옮기지 않을 수 있고 밖에 나가지 않고도 살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정신승리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 시간이 언제 끝날지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그냥 아버지 말씀처럼 결국에는 잘 될 거라고 믿고 버틸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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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에 자택 대피령(stay-at-home order)이 내려지고 어제 처음으로 장을 보러 밖에 나갔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원래 다니는 마트에 갈지, 아니면 집 근처에 일요일에 문을 열어서 아마도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마트로 갈지 계속 고민했는데, 결정은 의외로 쉬웠다. 구글 지도에서 안드로이드 유저들의 위치정보를 분석해서 실시간 붐빔 정도를 보여주는 가게들도 있는데, 오후 2시에 확인해 보니 원래 가던 마트가 꽤나 한산하다고 나왔다. 그래서 약 15분 만에 외출 준비를 끝내고 얼른 나갔다 왔다.

 

  참, 그나마 마트에 갈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마스크가 금요일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보내주겠다고 하셨을 때는 부모님 쓰실 것도 부족한데 어차피 여기서 눈치 보여서 쓰지도 못 한다고 괜히 보내지 마시라고 반대했는데, 막상 부치시고 나서는 마스크가 오기 전까지는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고, 이제 미국에서도 마스크를 권장해서 마스크를 받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버스타러 가는 길에 길 건너편에서 조깅하고 있는 사람들 두 명 외에는 아무도 못 봤는데, 버스에도 나까지 포함해서 승객이 세 명 정도밖에 없어서 충분히 거리를 두고 앉아서 갔다. 마트에 도착해서는 카트를 직원이 직접 소독해서 나눠줘서 좋았다. 안에 들어가서도 어플에 나온 대로 평소보다 훨씬 한산해서 사람들과 부대낄 일이 없었고, 마스크 낀 사람들이 꽤 많아서 눈치 보이지도 않았다. 우유나 육류는 여전히 구매 수량 제한이 있었지만 무지방 우유가 몇 개 없고 볶음용 소고기가 아예 없던 것을 제외하면 사정이 넉넉해 보였다. 2주 전에 갔을 때는 아예 없던 타이레놀도 다시 쌓여 있어서 한 개 사 왔다. 지난주에 제대로 못 봐서 궁금해서 확인했는데 화장실 휴지는 정말 하나도 없었다. 크리넥스 갑 티슈도 있고 키친타월도 적게나마 있는데 정말 화장실 휴지만 없었다(쓰다 보니 키친타월을 사 왔어야 했는데 안 사온 게 생각났다). 통조림은 다시 충분해져서 고등어 통조림이랑 참치 통조림을 하나씩 샀다. 비비고 만두는 어제도 없었는데 이건 2주 전에도 없었고 그 전에도 없을 때가 많아서 잘 모르겠다. 라면도 수라면(미역국 라면) 말고는 한국, 일본 라면 따질 것 없이 하나도 없었고(마루한 라면은 인터내셔널로 분류가 안 돼서 있는지 없는지 확인 못 함), calrose 쌀도 없었다.

 

  집에 오는 버스에는 승객이 나밖에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다음 집으로 걸어오면서 식당들과 새로 문을 열 마트들을 관찰했다. 식당 중에도 문을 닫은 곳들이 몇 곳 있긴 했지만 간혹 테이크아웃을 해주는 식당들 몇 곳은 영업 중이었다. 항상 사람이 길게 줄을 서 있던 판다익스프레스도 정말 한가해 보여서 충동적으로 사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자택대피령이 내려진지도 이제 2주가 다 되어간다. 시카고에 첫 확진자가 나왔던 1월 24일부터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위생용품들을 사들이긴 했지만 꽤 오랫동안 서부 해안지역에서만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설마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나마 대구, 경북 지역에 확진자가 급증하던 2월에 이미 큰 충격을 받아서 지금 좀 진정된 건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때문에 내 상황도 상당히 안 좋아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아픈 데 없고 집에만 있어도 되는 것만으로도 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짜 환자들과 의료진들은 어떤 감정으로 버티고 있는지도 가늠이 안 된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무너지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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