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곳에 이사 온 지는 1년 2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최근에야 내 방이 정말 습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동네가 여름에 상당히 고온다습한 편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지난 몇 주 동안 습도가 64퍼센트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벌레도 많이 들어오고(다행히 대부분 반딧불이나 풍뎅이긴 하다)

 

===더러움 주의===

 

나무 패널로 된 벽에 흰 곰팡이도 생기고 화장실 욕조 실리콘에도 검은곰팡이가 쌓였었다. 작년 여름에도 벽이랑 나무 싱크대에 곰팡이가 좀 있어서 항균 물티슈로 한 번 다 닦았었는데 그게 습기 때문에 그랬던 거구나, 하고 이제야 알았다. 욕조의 곰팡이는 겨울 지나가면서부터 생겼는데, 아무리 욕실 세척제를 뿌려대도 안 지워져서 실리콘이 오래돼서 그런가 보다 했었다. 그러다 며칠 전에 제습기를 검색해서 구매 후기들을 읽다가 그게 곰팡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 곰팡이 걱정보다 제습기 살까 말까 하는 고민을 더 일찍부터 했었지만, 내게는 적지 않은 지출이고 살림살이를 또 늘리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결국 아직까지 제습기를 사지 못 했고(그 대신 어젯밤에 에어컨을 아주 추울 때까지 켜면 습도가 60퍼센트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신 토요일에 장 보러 갔다가 제목에 쓴 곰팡이 세척제를 사 왔다.

 

  잘 안 닦이면 어떡하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 뿌리자마자 반응이 와서 제품 사용법에 쓰여있는 대로 10분 후에 물로 헹궜더니 아주 깨끗해졌다. 올해도 돈을 열심히 쓰고 있긴 하지만 내가 얻은 만족감 기준으로는 가히 올해의 소비라 할 만하다. 아마존에서는 16oz 한 통에 8달러가 넘는데 우리 동네 마트에서는 32oz 한 통이 5달러 좀 넘어서 아주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월마트와 타겟에서는 32oz 한 통을 4달러가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 

  그냥 일기이지만 오랜만에 후기 폴더에 글을 써보고 싶어서 쓴다.


  오늘은 한국인 친구들하고 만나서 저녁 먹고 들어왔다. 원래 중요한 목적이 있어서 만난 거였지만 교수님께 이메일을 안 드린 게 자꾸 생각나서 양해를 구하고 먼저 빠져나와서 연구실에서 교수님께 2주 동안 한 것들을 정리해서 보내고 왔다. 처음 합격하고 교수님과 이메일을 교환한 지 2년 반이 다 되어가는 데도 어른, 굳이 특정하자면 교수님들께 이메일을 보내는 것은 여태 적응이 안 된다. 2017년 봄학기에 내가 교수님께 쓴 이메일을 보고 터키 출신 팀원이 네 이메일은 너무 subordinate하다고 말해서 충격을 받은 이후로(subordinate를 실제로 쓰는 용례를 처음 접해서 감동받았다는 것은 함정) 어른들한테 영어로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내가 너무 비격식체로 말하는 건 아닌지, 너무 바짝 엎드려서 말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캠브릿지 영어사전에서 단어의 용례까지 찾으며 글을 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왠지 모르게 우리 교수님한테는 subordinate해도 될 것 같아서, 아니 그게 더 맞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이메일을 쓰기가 편하다는 거랄까?


  집에 도착하니 현관 앞에 아마존에 주문했던 다리미대가 와 있어서 손발만 씻고 30분 간격으로 교수님이 메일을 보내셨는지 확인하면서 두 시간 넘게 신나게 다림질을 했다. 이번 학기에 학부 티칭을 하게 돼서 블라우스를 몇 벌 샀는데 그 중 하나가 못 봐줄 정도로 구겨진 채로 와서 그걸 보고 나니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었던 옷들이 다 엄청나게 구깃구깃하게 보여서 거의 두 달을 고민한 끝에 이번 달 지름의 일환으로(보통 80달러 정도 자유롭게 사고 싶은 것을 산다) 스팀다리미와 다리미대를 구입했다. 내가 산 다리미는 아마존에서 파는 블랙앤데커(Black and decker) 브랜드 중 가장 저렴한 16.99달러짜리 스팀다리미다. 다리미대는 그냥 싼 거 아무거나 테이블탑으로 샀다. 처음엔 스탠드형으로 사려고 했다가 너무 높아서 허리가 아플 지경이라는 후기를 보고 바로 마음을 바꿔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쓰는 낮은 것으로 샀다. 말이 테이블탑이지, 한국에서라면 바닥에 앉아서 쓰는 정도다. 이걸 식탁 위에 올려놓고 쓰면 정말로 허리가 굳어버릴 듯.


  다리미의 성능은 놀라웠다. 이 모델의 성능이 특별히 좋다기 보다는 그냥 스팀 다리미 고유의 성능이 좋은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viscose나 폴리에스테르 재질을 다릴 때는 스팀이 나오지 않아서 그냥 오 좋군ㅎㅎ이 정도였다면 면, 린넨 셔츠를 다릴 때는 좀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주름이 펴지는 것은 물론 옷감의 질이 바뀌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특히 린넨 셔츠...작년에 유니클로에서 린넨 셔츠를 두 벌 샀는데 소매가 구겨지다 못 해 오그라들어서 린넨은 원래 구겨진 옷감인 줄 알았는데 다 다려놓고 보니 너무 예쁜 옷이었다. 그 중 더 심하게 구겨진 셔츠는 완전히 다 펴지지는 않았지만 다음에 한 번 더 입고 빨아서 다리면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 달 소비는 대성공이다. 굳이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다리는 중에 다리미에서 물이 새는 건지 그냥 나오는 건지는 몰라도 옷에 물방울 얼룩이 졌다는 건데 옷들이 거의 새것 같아져서 괜찮다.


  그 밖에 또 산 것은 DampRid라고 물먹는 하마처럼 통에 물을 빨아들이는 알갱이를 부어서 습기찬 곳에 놓는 제습제다. 집에 벽장과 욕실에 환기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샀다. 내가 습도에 엄청나게 민감한 것도 아니라서 아직은 차이를 못 느끼고 있지만 알갱이가 설치한지 하루 만에 서서히 녹기 시작한 것을 보면 습기가 제법 있긴 한 것 같다. 겨울까지만 좀 지켜봐야겠다.

  팀 과제를 하고 다소 우울한 마음으로 9시가 좀 넘어서 집에 도착했다. 우울한 시점에선 우울한 감정이 한없이 크게 느껴지지만 그런 불안감이나 자조가 지금껏 한두 번 찾아온 것이 아니라서 이제 어느 정도 그런 감정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사실 가끔 찾아오는 안 좋은 감정보다 평소에 느끼는 즐겁고 편안한 마음이 더 커서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울하기도 하고,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나서 피곤한 것이 겹쳐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고, 옷을 갈아입다가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12시 43분이었다. 한참 잔 줄 알았는데 4시간도 채 못 자서 웃겼다. 근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때까지 저녁을 안 먹어서 사놓은 지 적어도 한 달은 넘은 것 같은 클램차우더 통조림을 열었다.



(다 먹은 통조림이 설거지통에 들어있는 모습)



  캠벨수프는 이번이 두 번째 먹어보는 거다. 버섯 수프는 처음엔 엄청 맛있었다가 갈수록 질려서 마지막 몇 숟갈은 무슨 맛으로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는 캠벨수프 통조림을 먹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우연히 클램차우더라는 음식의 이름을 알게 되어서 궁금해서 사봤다. 그래서 식당에서 파는 클램차우더 맛이 어떤지는 아직 모른다. 통에 써있는 대로 전자렌지용 그릇에 옮겨서, 전자렌지에서 3분 동안 데우고, 먹었는데 정말 너무 짰다. 그래서 우유를 좀 붓고 다시 데웠는데도 여전히 짜다(먹는 중). 그래도 우유를 더하고 나니 식감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짠맛이 강하긴 하지만 감자랑 조갯살이 큼직큼직하게 들어있어서 씹는 느낌이 좋다. 다음엔 우유를 더더더 많이 먹고 데워서 먹어야겠다.



 조립하는 데 세 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옆에 있는 건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배치한 스테들러 연필깎이다. 재미있었다. 봄 학기 끝나면 하나 또 사야지.

 10월에 봤던 두 번째 시험은 한국외대 사회과학관에서 봤다.

 총 세 번을 봤는데 인문과학관->사회과학관->인문과학관에서 봤다. 두 번째 시험에서 사회과학관으로 옮겼던 건 다른 곳도 경험해 보고 싶은 것 때문이었고, 세 번째 시험에서 인문과학관으로 돌아갔던 것은 두 번째 시험의 악몽 때문이었다.


 두 번째 시험 때는 시험장에 조금 늦은 10시 15분 쯤 도착했다. 그런데 외국인 수험생의 신상조회가 안 돼서 늦게 온 학생들의 본인확인 절차가 엄청나게 지연되었다. 시험 볼 컴퓨터 앞에 앉은 것이 10시 40분이 넘은 때였으니까 말 다했지.


 근데 이게 보통 큰 일이 아니었던 것이, 리딩할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내가 리스닝을 할 때에는 일찍 온 사람들이 스피킹 시험을 시작해서 정말 문제가 하나도 안 들렸다. 음량을 최대로 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리스닝 렉쳐 내용이 이전에 공부했던 주제에서 많이 나왔는데도 도저히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덕분에 그 전 시험보다 5점이나 더 낮은 점수가 나왔다). 그렇게 멘붕인 상태로 리스닝을 하고 스피킹 때도 여전히 기분이 안 좋긴 했지만 독립형에서 점수가 많이 깎였으니 변명할 여지는 없다. 다행히 라이팅 때는 정신줄을 겨우 붙잡긴 했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 시험에서 리스닝과 스피킹을 완전히 말아먹고 세 번째 시험도 두려워하면서 봤다. 여전히 리스닝 시험을 볼 때 일찍 온 사람들이 스피킹을 시작하긴 했지만 문제가 안 들린다든가 하는 문제는 없어서 조금 불안함을 덜고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시험장이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컴퓨터 성능도 비슷한 것 같았고 책상이 가림판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도 같았고 심지어 시험감독관들도 세 번 모두 그대로였다. 그냥 내가 느꼈던 것은 남들이랑 비슷한 시간에 시험장에 가서 비슷하게 시작해서 시험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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