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영어 공부하고 출국하기 전에 끝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다.


 덕분에 제주도에 다녀온 지 한 달이 넘은 지금에야 사진들을 정리했다. 찍을 때는 몰랐는데 대부분의 풍경 사진들이 기울어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 대체 전화기를 어떻게 들면 이렇게 찍히나 모르겠다.



4월 28일: 보문동 해녀의 집


 음식 사진 찍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사진은 없지만 자리물회가 맛있었다. 제피가 향긋했다.




4월 29일: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큰넓궤→오설록→포도호텔→방주교회→본테박물관


1)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친구한테 사진을 보냈었는데 필터 효과냐고 물어서 그제야 어플이 자동적으로 필터를 적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위가 따로 깐 어플로 찍은 것이고 아래가 기본 카메라 어플로 찍은 것이다. 이때가 아직 10시, 11시 무렵이었는데도 햇볕이 굉장히 따가웠다. 정문에서 이마트 쪽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통로가 있다.




2) 큰넓궤(영화 '지슬' 촬영장)

 솔직히 말하면 '지슬'이 화제가 되었을 때도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오설록으로 가는 길에 있던 '지슬' 촬영장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보고서야 여기가 거기구나 하고 알았던 것이다. 공터에 차를 세우고 나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큰넓궤 유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진드기가 나타난다니 긴 바지가 좋겠다). 동굴 가까이도 갔었지만 무서워서 그 안을 들여다보지는 못 했다. 동굴 속에 숨어들었어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를 실감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3) 오설록

 내 생각에 오설록에서 꼭 감상해야 하는 것은 차밭과 녹차 아이스크림인 것 같다. 유명 건축가들이 지었다는 티스톤이나 이니스프리 건물도 큰 감흥은 없었다. 내가 건축이나 미학을 잘 알지 못 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서로 다른 콘셉트로 지어진 여러 건물들이 어째서 하나같이 인공연못을 끼고 서 있는지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차밭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차밭을 찍은 사진이 하나 빼고 전부 기울어져 있어서 아쉽다.






4) 포도호텔

 하늘 위에서 보면 포도송이 모양의 호텔이라는데 하늘에서 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대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은은한 와인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여기서는 점심을 먹었다. 우동이 정말 맛있고 정말 비쌌다. 사진은 전부 식당에서 찍은 것이다. 밖에서 찍은 것도 있는데 너무 심하게 기울어져서 이건 차마 못 올리겠다. 제주도 전통 돌담 같은 낮은 현무암 돌담이 정원에 세워져 있었다.




5) 방주교회

 말 그대로 방주처럼 생긴 교회다. 2010년에 무슨 건축상을 받아서 유명해진 건물이기도 하다.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교회 건물 주변에 얕은 인공연못이 있는데 물이 굉장히 더러웠다. 반짝이는 지붕이 꼭 갈치 비늘 같았다. 커다란 십자가가 있는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빛과 그림자에 의해 십자가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 인상 깊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몇몇 신자들만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예배당 뒤로 커다란 창문이 있어서 예배 때는 목사님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




6) 본테박물관

 여기는 입장료가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들어가 보지는 않고 밖의 정원만 구경했다. 



4월 30일: 이중섭미술관→천지연폭포

 이중섭미술관에는 한 번도 안 가봐서 갔던 건데 공교롭게도 이중섭과 아내가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모은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중섭이 제주도에 머문 기간이 2년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이 나름 반전은 반전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그림들이 정말 작았다. 위에 전망대에 가서 파노라마 사진도 찍었는데 역시! 이 사진도 가운데가 찌그러져 있다. 그래서 미술관 밖으로 나가면 나오는 이중섭 거리의 사진만 올린다. 사실상 이중섭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플리 마켓이었다고 보면 된다. 천지연폭포는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여섯 번은 넘게 가서 별 감흥이 없었다ㅠ




5월 1일: 집에서 놀았던 것 같은데 뭘 했는지 생각이 안 난다.


5월 2일: 서울로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버스를 타러 가기 위해 서귀포 칼호텔에 갔었다. 육촌 오빠가 태워다 주셨다. 여기서 한 거라고는 주차장에 선 채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 것뿐이었지만 풍경이 너무 좋아서 찍었다. 어플 효과 때문에 우중충하지만 실제로 이 날 비가 많이 오기도 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활주로에 이는 강한 돌풍 때문에 비행기가 45분 지연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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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공원은 가을에 한 번, 3월에 한 번, 5월에 한 번 왔으니 다음엔 겨울에도 와봐야겠다. 처음부터 낙산공원 갈 생각을 했던 건 아니고, 며칠 전에 '해를 품은 달' 소설을 읽다가 희빈이 머물고 있는 정업원이라는 곳을 찾아보니 낙산공원 가는 길에 있는 청룡사라는 절 바로 옆에 정업원 터가 있었다고 해서 낙산공원에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이화동도 이번이 세 번째인데, 혹시 지난번에 못 보고 간 것이 있을까 싶어서 한 시간 반 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에피톤프로젝트의 '이화동' 때문인가, 이화동 골목을 걷다보니 괜히 슬펐다. 가사의 "오월의 햇살"을 느껴보려고 했는데 오월의 햇살이 이렇게 센 건지 몰랐다. 올해 들어 몸이 가장 안 좋다고 생각하는 때에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리다니....덕분에 물 많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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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부터 30일까지 제주도에 다녀왔다.

블로그에 기행문을 연재하고 있는 후배에게 자극을 받아, 조금이라도 여행의 흔적을 남겨두고 싶지만 밖에서 돌아다닌 날보다 집에서 뒹굴거린 날이 더 많고, 글을 쓸 환경도 여의치 않아서 여행 경로만 대충 정리해보기로 한다.

첫째날: 천지연->새섬
제주도에 하도 오랜만에 가서 새섬과 천지연을 연결하는 새연교는 처음 봤다. 어렸을 때는 제주도에 갈 때마다 천지연폭포에 갔었는데, 이번엔 폭포는 보지 않고 새연교를 통해 새섬으로 들어가서 섬을 한 바퀴 돌고 왔다. 새섬은 원래 무인도라고 들었는데, 산책로를 참 알뜰하게도 잘 꾸며놓았다. 너무 인위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걷기 불편할 정도로 방치해 두지도 않고...한밤중에 가서 경치를 구경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낮에 갔다면 장관이었을 것 같다.

둘째날: 올레길 5코스(남원리~쇠소깍), 비자림
올레길 5코스는 남원리에서 시작해서 쇠소깍에 이른다. 총 길이는 약 15km 정도로, 서귀포 부근의 다른 올레길 코스들에 비해서는 다소 짧은 편이다. 마침 제일 더울 때 제주도에 간 거라서 7시 반부터 걷기 시작해서 11시 반에 끝낼 수 있었다. 가는 길 대부분이 바다 쪽에 있지만 귤농사를 많이 짓는 서귀포답게 가끔씩 귤나무가 있는 농가도 지나쳤다. 길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큰엉, 금호리조트(정원이 무척 잘 꾸며져 있다), 그리고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등이 있다. 경로의 대부분이 상당히 평탄하지만, 바다 쪽에 있는 돌길이 상당히 험해서 꼭 등산화를 신고 걸어야 한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 지났을 때,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고 비옷도 없어서 할 수 없이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들렀다.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면서 커피도 마셨다. 나올 때는 그 집 아저씨가 일회용 비옷을 주셔서 올레길 끝날 때까지 요긴하게 사용했다.

위미리에서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한가인의 집으로 나온 집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정말 바다가 바로 닿아있는 곳에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파도 소리가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역시 파도 소리가 은근하고 잔잔하게 들렸다. 6월부터 리모델링을 해서 11월에 갤러리와 카페로 개장한다는데 겨울에 다시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한참을 쉬고 오후에는 비자림에 갔다. 사실 경로가 좋은 편은 아니다. 5코스는 서귀포 부근의 남쪽 마을들을 지나는데, 비자림은 제주시 쪽에 있으니까 한참 떨어져 있다. 가는 동안 산굼부리를 볼 수 있고, 비자림 가까이에는 제주도 관광객들이 가장 인상깊게 생각하는 곳 중 하나로 알려져있는 만장굴이 있다.

비자림은 비자나무가 집단으로 자생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숲이 아니라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되고 거대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산책로에는 관광객들이 걷기 쉽도록 새집증후군에 좋다는 화산송이를 뿌려놓아서, 맨발로 걷고 있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두 나무가 붙어서 만들어진 연리지, 수령이 천 년이 넘었다는 새천년 나무를 비롯하여, 비자나무 말고도 여러 특이한 나무들이 곳곳에 있어서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산책로 끝날 때 쯤에 있는 약수터의 물은 날이 더워서 그런지 별로 시원하지 않았다.

하효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갔다.

넷째날: 한라산

셋째날에 삼촌이 오셔서 이모, 삼촌과 함께 한라산에 갔다. 한라산 등산로는 영실, 돈내코, 성판악, 관음사 코스 등이 있는데 경치가 좋고 산을 오르기 좋다는 영실 코스는 현재 정상으로 가는 길이 막혀있다. 그래서 올라갈 때는 성판악 코스로, 내려올 때는 관음사 코스로 가기로 했다.

성판악에는 6시 반 정도에 도착했다. 한라산은 해발고도 1,950m의 거대한 산이라서 1,500m 고지의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오후 한 시 이전에는 도착해야 무사히 등반에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가는 길에 속밭대피소라고 화장실과 휴식공간이 있는 곳이 있었지만 여기엔 손 씻을 곳이 없던 것 때문에 마음상해서 굳이 길게 쓰고 싶지 않다.

성판악 코스는 대체로 숲이 우거진 편인데, 어느 정도 고도에 이르면 숲이 없어지고 하늘이 보이기 시작해서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한라산의 다양한 식생 때문인 것 같은데, 중학교 지리시간에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것이 왜 생각이 안 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숲이 없어지기 시작하니까 체력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나무다리가 나타나면서 급속도로 힘들어졌다. 낙오할 뻔했던 것을 이모와 삼촌이 짐도 나눠서 들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정상에는 10시 50분 쯤에 도착했다. 성판악에서 6시 50분에 출발하였으니 4시간 정도 걸린 것이다. 비가 많이 내려서 백록담에도 물이 차 있었다. 사진도 많이 찍고 사고 간 김밥도 먹었다. 혼자 온 일본인 관광객과도 마주쳤는데 정말 대단해 보였다.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악몽같았다. 성판악 코스도 쉽게 올라온 것은 아니었지만 관음사 코스는 더 힘들었다. 경치는 관음사 쪽이 말할 수 없이 더 좋았지만, 문제는 경치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경사가 심했고 돌길이 많았다. 거기다 소나기가 왔는지 돌이 다 젖어있어서 무척 미끄러웠다. 등산화를 신고 스틱까지 짚고 걸었는데도 몇 번이나 넘어졌다. 어느 정도 경사진 길이 지나자 평탄한 길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 길도 역시 돌길이라서 굉장히 힘들었다.

내려오는 데에는 네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마지막 2km 정도는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모랑 삼촌이 '부모님이랑 왔으면 울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모 삼촌이랑 와서 안 울었을 거다'라고 장난스럽게 말씀하셨는데 솔직히 몇 번이나 발에 물집이 생기고 있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울었다. 다행히 지금은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괜찮고, 심지어는 또 가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 하고 있다.

정리를 하고 나니 제주도에 다녀온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 만큼 꿈 같고 일상과 완전히 격리된 생활을 하다 온 것 같다. 올 겨울에 또 가서 올레길 다른 코스도 걷고 바다도 구경할 생각인데, 벌써부터 겨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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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알게 된 것은 2학년 때였나,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봤을 때였다. 영화의 도입부에, 영화감독인 김태우가 제천에 찾아갔던 것은 음악영화제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때 김태우의 얼굴을 계속해서 담기 위해 카메라가 뒷걸음질치듯 그를 따라다닐 때 배경이 되었던 제천의 시골 같은 풍경이, 영화를 본 이후에도 계속해서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항상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제천에 가서 음악영화들을 보고 오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내 게으름은 어디에 안 가서, 2년이나 지난 이번 여름에야 실행에 옮기게 됐지만 말이다.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연구실 휴가를 연구실에서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8월 14일에 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15일 아침에 출발했다. 밖에서 혼자 자고 오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아서, 애초에 당일치기로 계획했다. 충청도라서 굉장히 멀 줄 알았는데 오전 아홉 시 반에 출발해서 열한 시 이십 분에 도착했다. 애초 계획은 11시 30분 영화를 보고, 2시 영화를 보는 거였다. 그런데 상영관인 TTC에 가던 중 길을 잘못 들어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곳을 한 시간이나 걸려서 찾아갔다. 그 덕에 제천시 구경을 실컷했다는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한참 헤메다 지도에 있는 제천단양농협과 중앙시장 건물을 발견하고, 또 극장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심장이 크게 뛰었는지 아직도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극장에 도착한 건 12시 20분 쯤이어서 당연히 11시 반 영화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2시에 상영하는 '스웰 시즌'을 보려고 했는데........당연히 매진되어 있었다. 그래서 매진이 안 된 작품이 뭔지 물어서, 2시 반에 상영하는 '영화음악의 거장들-크리스토퍼 코메다Komeda-A Soundtrack for a life'와 '영화음악의 거장들-가브리엘 야레In the Tracks of Gabriel Yared' 표를 샀다. 어쩌면 더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스웰 시즌'은 '원스'를 통해 이미 익숙한 '스웰 가든'을 다룬 다큐멘터리이지만, 코메다나 야레는 이름도 생소한 음악가들이어서 새로운 음악을 알게 될 기회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상영 시간이 1시간 반이나 남아서 제천 시내를 구경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또 길을 잃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근처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안내소에서 받은 브로슈어에 주변 음식점이 안내되어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극장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마시듯이 먹고, 중앙시장 건물로 가서 전시회를 구경했다.

 음악영화제에 걸맞게, 오래된 밴드의 CD나 LP판을 비교적 싸게 파는 곳도 있었고, 브라질의 악기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곳, 다방, 우쿨렐레와 오카리나를 파는 곳, 캘리그래피 작품을 파는 곳도 있었다. 집에 아직도 LP 전축이 있었다면 비틀즈 판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미련없이 포기했다. 오카리나를 보고 잠깐 들뜨기도 했는데 이미 벌여놓은 악기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연습하지 못할 것 같아서, 결국 구경만 하고 나왔다. 막상 집에 돌아오고 나니, 가족들이나 친한 사람들, 과외 애기한테 캘리그래피 엽서라도 사다 줄걸, 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시간이 남아서, 극장 앞에 있는 별빛다방에 갔다. 공연이 있다는 건 모르고 갔는데, 어떤 팀이 부지런히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브라질 음악? 라틴 음악? 아무튼 그 쪽 음악을 연주한다는 프리마베라Primavera였다. 당연히 처음 듣는 노래를 노래하고 연주하는 처음 보는 밴드였다.



 몇 안되는 파라솔과 의자가 꽉 차고, 길가에까지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서 공연을 기다렸다. 그래서 한 시 반 예정이던 공연이 한 시 이십 분으로 앞당겨 시작되었다. 브라질에서 굉장히 유명한 가수의 곡을 카피해서 연주(한다는데 가수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집에 와서 찾아보고 싶을 만큼 좋았는데)하고 노래했는데, 다른 밴드의 공연에서도 볼 수 있는 키보드와 베이스, 퍼커션이 젬베 같은 악기들과 어우러져 그렇게 신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쩌면 별로 신기해 하지도 않을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모든 것들이 새로운 경험이고 신기한 일이다.)

 45분 쯤 되자 극장 앞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곧 영화가 시작될 거라고 알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영화를 보러 갔다. 노래를 더 들을 수 없는 게 아쉬운 거였지, 마지못해 영화를 봤던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보고 나서는 공연 때 들었던 음악과 함께 영화에서 들었던 음악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이름도 처음 듣는 음악가들이었지만 익숙한 곡들도 조금 있었다. 둘이 작업을 하는 방식은 많이 달랐지만, 영화를 감독만큼 깊이 이해하고, 영상이 표현하는 것과 함께 영상이 담아내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음악으로 오롯이 표현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감동받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두 영화가 곧바로 이어서 상영된다는 것을 모르고 보러 간 거라서,(사실 두 편이나 상영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야레 편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집중력이 급격히 저하된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JIMFF 스테이지가 마련된 의림지에 가기로 했다. 공연을 보기에는 이른 시간이어서, 이름이 익숙한 의림지가 도대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버스 정거장을 못 찾아서 시내에서 한참 헤매기도 했다. 31번 시내버스로는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렸다. 가는 길에 제천영상미디어센터를 발견해서 돌아갈 때는 꼭 걸어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의림지는 생각보다 큰 호수였다. 왜 이름이 익숙한가 했더니, 삼한 시대에 건설된 저수지였다. '농경 문화의 발상지'라는 표기석과 표지판을 보고서야 알았다. 호수 가장자리로 산책로와 다리, 정자, 폭포가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의림지 놀이동산과 주차장이 있었다.





 부모님이랑 온 거였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아버지가 이런 탁 트이고 나무 냄새 나는 곳 좋아하시는데......아무튼 그냥 보기만 해도 좋은 곳이니 한 바퀴 쭉 돌고 가야지, 했는데 JIMFF 스테이지에서 6시 반 공연 리허설이 있었다. 그래서 앉아서 소년 핑크의 곡을 모두 듣고 왔다. 남녀  보컬의 목소리가 많이 익숙한 느낌이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 재밌게 들었다.



 이제 공연까지 봤으니, 영상문화센터에도 들르고, 좋은 풍경사진도 많이 찍고 싶어서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는 길에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꽃들을 많이 봤다. 꽃 사진만 50장 찍었나....더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영상미디어센터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 시간 쯤 걸어서였나. 가까스로 도착했는데, 관객을 위한 곳이 아니라 관계자들을 위한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 좀 잘 알아보고 갈걸......아무튼 제천시내에는 가야 해서 더 열심히 걸었다. 가는 도중에 두 번이나 길을 잃어서 물어물어 겨우 제천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으니까, 저녁도 먹고 다른 구경도 더 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너무 걸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했다. 그래서 바로 표를 끊고, 일곱 시 반 차를 탔다. 오는 길에는 차가 좀 막혀서 두 시간 십 분 정도 걸렸다.

 원래 자주 밖으로 다니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접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놀라운 것이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이번 여행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선 처음 혼자 떠난 여행이었고, 영화제를 관람한 것이 처음이었고, 거리에서 밴드 공연을 본 것이 처음이었고, 제천에 간 것도 처음이었다. 삼바를 라이브로 들은 것도 처음이었고,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본 것도 처음이었고, 시간과 좌석번호가 써 있지 않은 시외버스 표를 사 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온지 하루 좀 더 지난 지금은 어제의 여행이 꿈같이만 느껴진다. 여행을 하면 다 해결되어 있을 것만 같았던 오래된 고민이나 걱정거리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한 것과 함께, 어떤 친구의 말처럼 그것들이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적어도 한 달은 이번 여행을 생각하면서 좀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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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마지막 날인 2009년 12월 31일에

계절학기 중간고사 끝나고 혼자 할 거 없어서

예전부터 홈페이지에 가입은 해 놓고 한번도 가지 않았던 성곡미술관에 갔었다.

워낙 기괴한 전시를 봤던 날이라(사진작가 강영호展이었음) 전시되었던 사진들도 어렴풋이 기억은 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건 주변 전경!

바깥 정원도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어서 구석구석 세심하게 잘 꾸며져 있어서

사진을 무지 많이 찍었던 것 같은데

전화기 카메라의 성능 때문에ㅠㅠ(라고 쓰고 내 수전증^^;이라고 읽는다) 살린 건 이 두 장 뿐.

너무 좋아서, 봄, 여름, 가을 한 번 씩 다시 가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러고보니 그 이후로 한번도 안 갔구나.

하긴 그 때 유난히 돌아다니고 싶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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