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프로그램은

  1) 베토벤의 Sonata for Cello and Piano No. 2 in g-minor Op.5, No. 2,

  2) 히나스테라의 Pampeana No. 2 Rhapsody for Cello and Piano Op. 21,

  3) 프로코피예프의 Sonata for Cello and Piano in C-Major Op. 119

이었다.

 오케스트라나 피아노 곡은 웬만큼 알고 있지만 첼로곡은 잘 안 들어봐서 생소했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는 물론 듣기 좋았지만 비슷한 주제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되어서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1, 2악장 모두 첼로보다는 피아노의 비중이 높아서 반주라기보다는 주제를 이끌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히나스테라의 곡은 동생과 함께 이 곡은 정말 좋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공연 시작 전부터 프로그램을 몇 번이나 읽어서 "전위적"인 곡이라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처음 몇 마디를 듣고 깜짝 놀라서 다시 읽었다. 영화 음악 같기도 한 것이 보통의 클래식 곡들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서 굉장히 특이했다.

 프로코피예프 곡도 물론 좋았지만 2악장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베토벤 곡 때부터 내 옆에 옆에 앞에 사람이 자기 시작해서 난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2악장 때부터 자꾸만 피로가 몰려와서 이 곡을 놓치면 안된다ㅜㅜㅜ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손을 지압하고 프로그램을 읽었다. 다행히 3악장으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졸려서 이게 내 한계인가 하고 자책하려는 찰나에 내 대각선 방향에 앉아계시던 어떤 어머님께서 주무시는 것을 보고 정신이 맑아져서 좋은 곡을 끝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이 곡에서는 피아노가 코드를 잡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앵콜곡이었던 차이코프스키의 Sentimental Waltz(아마도 Op. 51 No. 6로 되어 있는 이 곡인듯하다. 공연이 끝나고 바로 찾아봤다면 멍청하게 들은 곡을 까먹는 일은 없었을 텐데)도 좋았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라고는 발레음악이랑 미뉴에트 몇 곡 밖에 모르고 있어서 흥미롭게 들었다.


 내가 첼로에 관해서 잘 알고 있다면 공연 내내 느꼈던 좋은 감정들을 더 잘, 자세히 표현할 수 있을 텐데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어서 좋았다는 말 밖에 못하겠다.

  작년 초에 '블랙스완'을 보고 1년 내내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는 것이 꿈이자 목표였다. 발레공연은 당연히 크리스마스 때 할 거라고 생각하고 나중에야 알아봤더니, 볼 만한 공연들은 이미 다 끝나버리고 남은 것은 '호두까기인형' 뿐이었다. 백조의 호수를 볼 수 없는 게 안타깝기는 했지만, 또 어렸을 때 호두까기인형을 보긴 했지만, 여기에 나오는 곡들을 굉장히 좋아해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호두까기인형을 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예술의 전당을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하철로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남부터미널역에서 예술의 전당으로 가는 동안 길을 두 번이나 잃어버려서 공연에 늦을 뻔했다. 매표소에서 예매한 표를 발급받았는데, 이번 공연 표를 다음 발레 공연을 볼 때 가지고 오면 문화릴레이 차원에서 1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촬영이 허가되지 않아서 사진은 하나도 찍지 못했다. 내 자리는 A블록 1열 1번이었다. S석인데도 꽤 앞자리라서 놀랐다.


 
  객석이 2천 개가 넘는다더니, 2층까지 있고 꽤나 큰 곳이었다. 공연 시작 전에는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는데 블로그에 글을 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저 감탄만 하느라 찍지는 못했다.

  공연은 최고였다. 호두까기인형에 나오는 노래들은 씨디가 고장날 정도로 들어서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곡들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 들으니까 감동이 더해지는 것들도 있었다. 어렸을 때 본 건 막연히 재미있었다는 거랑 인터미션이 있다는 것밖에 기억이 안 났는데, 이렇게 굉장한 건줄 몰랐다. 무대는 굉장히 화려했고, 무대 앞에서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노래들도 단순히 삽입곡이라고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훌륭했다.

  도입부는 주인공인 어린 클라라가 잠에 빠져들기 전에, 클라라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장면이었다. 여기에서는 어린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이 많이 나와서 사촌동생들 생각이 났다. 걔네가 발레를 배울 때는 다리를 180도로 찢는 것을 보고도 가족들이 기특해 했었는데, 쟤네는 얼마나 어렸을 때부터 저렇게  열심히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여주인공 아역으로 나온 애기가 너무 예쁘고 잘했다. 남동생으로 나온 애기(어렸을 때 책으로 읽었는데 이상하게  등장인물들 중 이름이 기억나는 건 남동생 프란츠밖에 없다.)도 야무지게 잘했다. 저러다 무대에서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아무도 다치지 않고 멋지게 잘해냈다. 도입부는 크리스마스답게 활기차고 즐거웠다.

  호두까기인형이 혼자 있는 것이 안쓰러웠던 클라라가 한밤중에 호두까기인형의 곁으로 와서 잠에 빠져들고 나서부터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졌다. 쥐떼와 인형들의 싸움 부분은 밝고 명랑했던 도입부와는 달리, 다소 어두우면서도 날카로웠다. 쥐들이 쳐들어 왔을 때  호두까기인형이 왕자로 변할 땐 갑자기 어른이 나와서 엄청 놀랐는데, 여주인공은 깨어있을 때의 어린이랑 꿈 속에서의 어른이 키 차이가 별로 안 나고 얼굴이 많이 닮아서 인터미션 전에 무대인사를 나오기 전까지는 바뀐 줄도 몰랐다.   

  왕자가 쥐의 왕을 물리치고 나서 눈송이 요정의 춤이었나 사람이 바글바글하게 나온 군무가 시작되었다. 여기에서는 넘어진 사람이 있었는데 얼마나 아팠을까 싶었다. 공연 순서를 잘 모르고 가서 이 다음에 인터미션이 있다는 건 생각도 못하고, 사탕요정의 춤 부분에서 나오는 노래를 리믹스해서 들려주고는 공연이 끝나는 거라고 착각했었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나서, 왕자를 도와주던 각국의 인형들이 나와서 춤을 췄다. 너무 어렸을 때 공연을 봐서 CD로 삽입곡을 들을 때 이 부분에서는 이런 인형이 이런 모습으로 나올 거야! 하고 상상했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 사랑스러웠다. 푸들을 데리고 나오는 프랑스 인형의 춤은 예전에 텔레비전에서도 본 적이 있었는데,(아마 키로프 발레단이었나 그랬을 거다) 더 귀여워 보였다. 중국 인형의 춤과 러시아 인형의 춤에서 나오는 노래는 모든 삽입곡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이라서 더 재밌게 봤다.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여주인공의 독무 부분에서 나오는 '사탕요정의 춤'인데, 조용한 곡이라 그런지, 여주인공이 무대를 뛰어오르고 디디는 소리까지 들렸다. 남자주인공인 왕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부분을 보면서 주역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무대인사할 때만이라도 사진을 좀 찍었다면 좋았을 텐데, 배우들 사진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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