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개강했다. 개강 첫날부터 늦잠을 자서 두 시부터 시작하는 수업에 지각을 하고 말았다. 난 정말 멋진 녀석이다. 내일 수업도 두 시에 시작하는데 슬슬 기대가 된다.


 오늘 수업은 평소에 관심있던 분야에 관한 세미나 수업인데, 첫 시간이라서 소개만 했는데도 벌써부터 겁이 난다. 교수님께서 워낙 수업을 알차게 하시고, 학생들도 그 만큼의 성과를 내기를 바라시고, 또 나한테 기대하시는 바가 큰 만큼 두 학기에 걸쳐 내게 꾸준히 실망하고 계시기도 해서 이번 학기는 정말 잘하고 싶다. 우리 교수님 다음으로 나에게 관심 가져주시는 분이라서 1년 동안 얼마나 많이 발전해왔는지 보여드리고 싶다.


 정유정의 '7년의 밤'을 읽기 시작해서 지금 150쪽까지 읽었다. 통학할 때 말고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많이는 못 읽는데 워낙에 잘 읽혀서 슥슥 읽었다. 그렇지만 읽는 사람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책이다. 갑갑하기만 한 서원이의 상황에 숨이 탁 막히고, 사이코라는 말도 모자란 영제의 행동에 한 대 맞은 것 같고, 미래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보는 서원이 엄마의 꿈 때문에 안타깝다. 영화 '황해'를 볼 때도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동생이 기분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기분 전환을 시켜주려고 같이 보러 간 영화가 하필 '황해'였는데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이렇게 기분나쁘게 봤던 영화가 없었다(영화의 질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독서는 즐거우려고 하는 건데, 이대로 끝낼지 아니면 사건의 전모가 좋은 쪽으로 밝혀지는 것을 기대하면서 계속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체중이 또 줄었다. 며칠 동안 '심즈 2'를 하면서 딴 짓할 줄 모르고 자기 몸 상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심즈들의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하루 종일 5층 계단을 계속해서 걸어다닌 덕분인가보다. 체중은 그만 줄어도 좋으니까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해야겠다.

'일상 > 주저리주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0908 일요일  (0) 2013.09.08
20130903  (0) 2013.09.04
20130901 개강  (0) 2013.09.01
20130821 사탕  (2) 2013.08.22
20130819 데미소다  (0) 2013.08.19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저자
제임스 조이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1-03-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예술가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 우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젊은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저자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지음
출판사
이덴슬리벨 | 2010-02-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인기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줄리엣에게 어느 날, 건지 섬에서 편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막막하다.


 사흘 동안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랑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스의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읽었다.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중간에 동생 대학원 시험 때문에 하루를 버리고 학교도 제대로 안 나가고 일 주일 동안 거의 퍼져있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조이스의 자전적 교양소설(이라고 책 뒤에 써있었다)인데,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 나오는 실패와 고뇌라고는 모르는 사기캐 주인공과는 달리 끊임없이 고민하고, 좌절하고, 자기 자신에게 지는 과정을 거쳐 결국 자기유배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좋았다. '유리알 유희'를 중간 좀 넘게 읽다 그만둔 것이 주인공의 속내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면서 성공만 하는 것에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는 주인공인 스티븐이 자신의 과오에 한없이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그래도 나와 같은 사람이군!' 하고 안심할 수 있었다.


 소설을 읽은 다음에는 되도록 소설을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빨간 책방'에서 소개된 것을 보고 너무 재밌어 보여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도 읽었다. 마침 읽고 있는 책이 세 권 있어서 어머니께 먼저 읽으시라고 드렸는데, 다 읽고 나서 "실제로 있었으면 하는 일"이었다고 하셔서 어떤 내용인지 무척 궁금했다. 굉장히 재미있었다.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등장인물들끼리 주고받는 편지로 이루어진 서간 소설이다. 초반부에는 외국 여자들끼리 남자 얘기할 때 쓰는 특유의 말투가 싫어서 그만 읽으려고 했는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건지 섬의 사람들이 겪었던 전쟁과 책 모임에 관한 이야기에 마음이 빼앗겨서 거의 세 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 줄리엣의 연애 이야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그게 이 책의 처음과 끝을 이룬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었다.


 제목은 '개강'이라고 해놓고 책 얘기만 잔뜩 썼다. 방학이 이제 정말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긴긴 두 달 반의 방학 동안 내가 얻은 것은 약간의 연구거리, 다섯 편의 영화, 열 다섯 권의 책, 영어 말하기 실력, 두 명 정도의 과 친구와의 어색하지 않은 관계다. 잃은 것은 제대로 된 수면 패턴, 체중 2kg, 시간, 60만원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방학을 허투루 보낸 건 아닐 거라고 애써 생각해본다. 남은 하루는 후회없이 보내야겠다.

'일상 > 주저리주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0903  (0) 2013.09.04
20130903 개강 첫날  (0) 2013.09.03
20130821 사탕  (2) 2013.08.22
20130819 데미소다  (0) 2013.08.19
20130813 아침  (0) 2013.08.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