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생각은 매일 여섯 시에 연구실에서 퇴근해서 집에 오는 거였는데(TA 일정까지 다 잡혀서 전체 일정이 확정되고 나면 그때부터 퇴근하고 학교 체육관 가서 운동을 하고 올 생각이었다), 오늘은 친구가 세 시 반에 식료품을 사러 가자고 하기에 따라가서 장을 봤다가 다시 연구실로 가기도 뭐해서 그냥 집으로 왔다. 물론 집으로 왔다고 쉴 수 있던 건 아니었다. 장 봐온 것 정리하고, 아침에 도시락을 싸느라 못 하고 나갔던 설거지를 끝내고, 과일도 식초 탄 물에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리고 왔다. 하긴 일요일에 식료품 장을 보고 청소를 할 생각이었으니까 하루 더 연구실에 가면 되겠다.
이사 온 첫날에 싱크대 개수대 물이 잘 안 내려가서 개수대 뚜껑을 열었다가 굉장히 끔찍한 촉감의 무언가를 만졌다. 그 뒤로 그 쪽 개수대에서는 아무것도 안 했었는데, 조금 전에 프라이팬이랑 냄비랑 도마랑 다 씻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쪽에 걸어뒀던 채반을 치우고 세제 묻힌 그릇을 두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개수대 뚜껑에 다시 손을 대놓고는 도저히 그 안을 만질 자신이 없어서 지난 주에 사왔던 이쑤시개로 긁었다. 오......미국에 와서 산 것들 중 만족도가 가장 높은 다섯 개 물건들 중에 꼽힐 만하다(1, 2위는 지난 포스팅 참조). 긁어내고 뚫어내고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
원래 그다지 깔끔한 성격이 아니고 부지런떨면서 치우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혼자 살게 되니 치워야 할 게 보인다. 그 덕에 지금 내 방에서 지저분한 곳은 책상 위 밖에 없다!!(영수증 더미를 빨리 치우려면 밀린 가계부를 다 써야 할 텐데) 계속 이렇게 유지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길고 길던 오리엔테이션 주간이 내일로 끝난다. 사실 오늘 1학년 지도교수님을 뵙고 왔고, 내일도 간단한 행사만 남아있어서 큰 건들은 대부분 끝난 셈이다. 맨날 학교 친구들이나 연구실 사람들하고만 지내다 새로운 사람들하고 계속 부대끼고 있자니 기가 빨린다. 그래도 단 며칠 만에 친구도 생겼고 같은 과 친구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니(굳이 말하자면 주로 내가 그 친구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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