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 종일 바빴다. 어제 숙제하느라 너무 늦게 자서 아침 운동도 못 다녀오고 허겁지겁 챙겨서 수업을 들으러 가야 했다. 급하면 판단력도 흐려지는지, 숙제로 짰던 R 코드가 저장된 노트북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그냥 나와서 조금 전에야 교수님께 이메일로 보내드렸다. 아무튼 오전 수업을 듣고 피아노 좀 치다가 오후 수업을 듣고 수영까지 다녀와서 이제야 큼직큼직한 일들은 다 끝냈다.
요즘 들어 피아노를 자주 치고 있다. 여섯 살 때부터 쳐왔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요즘처럼 마음이 어지러운 때에는 피아노를 치는 것만큼 위로가 되는 것이 없다. 악보를 보고 치는 것보다 소리를 기억해서 치는 것을 좋아해서 좋아하는 곡이 생기면 머릿속에 새겨질 때까지 그것만 주구장창 듣는데, 요즘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제가인 '인생의 회전목마'를 듣고 연습하고 있다. 평소에 좋아하는 기교가 화려하고 빠른 곡은 아니지만 듣고 있으면 만화 속 장면들이 머릿속에 펼쳐지는 것 같아서 좋다.
음 그리고 오늘은 '월플라워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를 다 읽었다. 그저께부터 통학할 때 틈틈히 읽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책을 읽고 있지 않은 동안에도 계속 생각났다. 처음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영화에서 패트릭 역을 맡은 이즈라 밀러가 좋아서였는데, 엄청난 책을 읽은 것 같아서 기쁘다. 1990년대의 미국 10대들의 생활이 나의 일상과 겹치는 부분이 있을 리가 없지만, 내가 이 책을 2주 전에만 읽었더라도 내 인생이 지금과는 굉장히 많이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다.
이번 학기에는 기초공통 수업을 두 개 듣고 있는데, 통계는 워낙 반복해서 봐서 그리 어렵지 않고 다른 과목은 중간고사를 잘 못 봤다. 통계를 가르쳐 주시는 교수님은 내가 아무리 황당한 질문을 하더라도 거기에 굉장히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답을 해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다른 과목을 가르쳐주시는 교수님은 내가 학부 때부터 쭉 좋아했고, 존경하고, 닮고 싶은 교수님이시지만 시험을 잘 못 봤다는 이유로 나를 예전처럼 봐주시지 않는다. 굉장히 서운하고 속상하지만 내가 공부를 똑바로 안해서 그렇게 된 거니까 내색은 안하고 있다.
우리 지도교수님은 평소에 연구 외에 공부에 관해서는 전혀 간섭하지 않으신다. 연구실에서의 자유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있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 감사드려야 할 일이지만, 그 동안 교수님이 타이트하게 쪼아서 공부를 시키시는 연구실에 비하면 공부를 덜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아무튼 그런 교수님께서 어제 드디어 책으로 공부를 하지 말고 논문을 찾아가면서 공부하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그냥 하신 말씀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멘탈이 와장창 깨져있던 때에 그 말씀을 듣고 울 뻔했다.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드디어 들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교수님 수업 시간에 배운 토픽들에 관한 논문들 중 인용횟수가 많고 좋은 학술지에 실린 것들을 두 편씩 다운받았는데 분량이.....음....심하게 많다. 학기 막판에 많이 바쁠 것 같다.
벌써 일기가 엄청나게 길어졌는데, 아직도 쓸 것이 있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그러니까 요즘 겪고 있는 감정의 격랑을 제외한다면 돈 문제다. 과외를 안한지 두 달이 다 되어가니까 통장 잔고가 점점 줄어서 이제 토플 시험 한 번 접수할 정도로밖에 안 남았다. 그것도 6월 생활비는 없는 채로 말이다. 곧 연구실에서 월급을 받겠지만, 월급을 주시는 선배님이 이번에 논문 디펜스 때문에 많이 바쁘셔서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전화요금은 얄미울 정도로 딱 맞춰 나가서, 교통카드를 충전하기 위해서 결국 토플 시험 접수비를 깼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 돈들이 전부 묶여있다보니 생활이 고단하고 빈곤하다. 하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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