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까지는 아마도 계속 바쁠 것 같다.


1.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 무신론을 반박하는 신학자들의 사소한 의견 하나하나까지 반박하는 것을 보다보니 싸움닭같다는 생각도 했다. 수잔 블랙모어니, 리처드 스윈번이니 다른 여러 책에서도 등장했던 사람들이 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역시 지식인의 사회는 좁은가보다(?!?!??!).


2. 도둑맞은 편지(에드거 앨런 포): 연초에 라캉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고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학교 도서관을 드나들 수 있는 특혜를 누리면서 읽었던 '우울과 몽상'이 생각났지만 지하철, 버스에서만 책을 읽는 주제에 짐을 너무 늘리면 안되겠다 싶어서 읽었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에 속해있는 책인데, 보르헤스가 기억하는 내용을 적은 건지 예전에 읽었던 것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다.


3. 몬스터 멜랑콜리아(권혁웅): '사랑의 단상'의 오마주를 빙자한 세계(특히 일본) 괴물들에 관한 책이다. 일본의 귀신이 이렇게 많은줄 몰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질투, 외설이 좋았다. 당분간 책을 안 사려고 하고 있지만 이 책은 꼭 사서 다시 읽고 싶다.


4. 다이어트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팻 FAT(돈 쿨릭, 앤 메넬리): 이 글을 쓰려고 찾아보기 전까지 책의 제목이 'Fat' 또는 '팻'인줄 알았다. '다이어트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아까울 만큼 한없이 얄팍하고 가볍다. 어느 파트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라틴아메리카 어딘가에서 인디언의 엉덩이 부위의 지방을 강제로 빼앗아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산품을 생산하는 데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정말인지 의심스럽다.


5. 유럽의 교육(로맹 가리): 나는 같은 작가의 책을 세 권 이상 자발적으로 찾아읽으면 그 작가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제 나도 로맹 가리의 팬이 된 것 같다. 로맹 가리의 대표작은 '자기 앞의 생'과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데, '자기 앞의 생'은 아직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읽은 '가면의 생',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보다 데뷔작인 이 책이 더 좋았다. 나치 독일군이 적으로 상정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폴란드 빨치산이 절대적 선(善)으로 묘사되지 않고, 전쟁을 온몸으로 겪는 그들의 모습이 아무 감정 없이 건조하게 서술되어 있다.


6.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 예전에 읽었던 우디 앨런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와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내가 너무 세속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차라투스트라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한 줄 한 줄 적어놓고 싶은 구절이 참 많았다(특히 초반부의 '잠'에 대한 부분).


7.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고등학교 필독서였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아서 이제야 읽었다. 요즘 소설들과는 달리 주제의식이 너무 뚜렷하고 그걸 소설 속 화자가 아주 직접적으로 말해서 근대소설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긴 1976년 작품이면 그럴 만도 하지...조 원장이 정말로 잘못한 건 무엇이었나를 좇으며 읽다가 어쩌쩌 나병 환자들의 천국은 절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8.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은희경):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매번 헷갈려서 안 읽은 책이었다. 난이도가 높은 단편들은 아니었다. 맨 처음에 실린 '의심을 찬양함'은 '이거 판타지 또는 스릴러인가'하고 흥미를 가지려던 찰나에 끝나버려서 아쉬웠다. 장편으로 늘리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겠지만 장편으로도 읽어보고 싶다. 표제작인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처음에 완전히 잘못 읽고,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가 아버지에게 건강한 장기를 이식해주려는 것인줄 알았다.


9.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단 한 권의 책'의 찬사를 읽고 다시 봐서 그런지 예전에 읽었을 때보다 더 아름다웠다. '별자리식 구성'이 뭔지 알 것 같다. 정민이와 '나'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그 전엔 왜 몰랐을까 아마도 대충대충 읽었나보다).


10. 비평가의 사계(김윤식): 신형철, 김형중의 비평집에 매료되어 읽었는데 아아 이것은 비평집이 아니라 산문집이었다는 것을 거의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비평집을 좋아하게 된 건 다양한 문학 이론과 좋은 책들을 소개받고 찾아 읽으면서 똑똑해지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는데, 이 책은 문학 이론에 깊숙이 들어간다기보다는 작가의 체험과 관계된 문학사를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중3 때 교과서에 있는 근현대 문학사 부분이 좋아 몇 번이나 읽고 고등학교 문학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했으면서 카프(KAPF)는 처음 듣는 나의 무식함에 좌절했다.


11. 에고트릭(줄리언 바시니): 처음 읽었을 때는 자아가 핵심을 가진 어떤 형태를 띈 것이 아닌, 신체기관들의 기계적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는데, 다시 읽고 나서 머리에 남은 것은 '자아는 연속된 기억의 사슬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므로 노화를 자연스러운 미덕으로 여기는 건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피부 탄력이 급격히 떨어진 것 같은 요즘 계속 곱씹게 되는 부분이다.


12. 마술 가게(H. G. 웰스): 초등학교 6학년 때 '타임머신'을 재밌게 봐서 기대하고 읽었다. '타임머신'같은 미래지향적인 판타지가 아닌, 기괴하고 마술적인 판타지라서 어리둥절했지만 재밌었다. 몇 작품 실리지도 않았지만 드물게 실린 작품들이 전부 재미있었다.


13. 환상동화(프란츠 카프카 외): 제목만 보고 '근친상간 버전의 백설공주' 같이 잘 알려진 동화들을 비튼 책인 줄 알고 안 읽었는데 '몬스터 멜랑콜리아'에서 여러 번 인용되기에 궁금해서 읽었다. 이제 보니 완전히 오해한 것이었다. '심장 피의 동화'가 이상하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장미정원과 힌첼마이어'도 그랬는데, 읽는 내내 까마귀 이 XX는 왜 착한 사람을 죽을 때까지 괴롭히나 내가 다 억울했다.


14.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김연수): 내가 생각하는 김연수 작품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진 것 같은 단편집이었다. 수록작 면면이 손이 가는 대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자기가 쓰고 싶은 주제가 뭔지를 끈질기게 생각하고 그 주제를 여러 방식으로 반복해서 쓴듯이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묶인 인상을 받았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실제와 기억의 괴리를 말했다면, 이 책은 실제의 역사와 기록으로 남은 역사의 간극을 말한다. '뿌넝숴'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왜 '한 달'이 아니라 '한달'일까 궁금했는데 찾아보니 '한달'도 허용된단다),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이 특히 그렇다.


15. 논쟁(크리스토퍼 히친스): 596쪽에 달하는 두께에 비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다만 내가 이전에 '유럽사 산책'과 '한밤의 아이들'을 읽지 않았어도 그랬을까 의심스럽다. 정말 명성에 걸맞게 다양한 잡지에 글을 쓴 양반인데, 어째서 여성지인 '배니티 페어'에 여성의 재미없음에 관한 칼럼을 썼을까 궁금하다. 미국의 외교정책과 중동 정세에 관해서는 촘스키('실패한 국가 미국을 말하다')의 입장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어 흥미로우면서도 자기 주장이 굉장히 세고 노골적이라서 불편한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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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 자려고 3시 10분에 쓰기 시작해서 이 시간(4시 24분)까지 쓰다니 미친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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