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내내 이상하게 한 거 없이 바빴다. 매일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잠들었을 정도로 피로가 컸고,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한 감정 소모도 심했다.


 공부에 관해서는 한국에 계신 교수님들께 소식을 전하면서 워낙 여러 번 반복해서 쓰다 보니 더 쓰고 싶지도 않고,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당근'이다. 지난 주에 불고기를 한답시고 베이비캐롯 한 봉지를 사다놨더니 불고기를 하고 나선 당근을 쓸 데가 없었다. 비싸진 않아도 내 돈으로 산 건데 버릴 수는 없고 해서 이 당근을 가지고 뭘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며칠 전에는 고기를 구울 때 당근을 넣었고, 어제는 토마토+당근+사과를 같이 넣고 갈아서 학교로 가져가서 마셨다.


 그러고도 당근이 줄어드는 것이 느껴지질 않아서 오늘은 카레를 하기로 결심했다. 거의 삼 주째 방치 중인 감자를 처리해야 하기도 했고. 오늘은 집안일에 전념하는 날이라서 청소(얼마 전에 산 물걸레 키트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물걸레 부분이 일회용 물티슈같이 생겨서 다 쓰고 나면 걸레를 빨 필요도 없이 그냥 던져버리면 됐다!! 자루가 가늘고 물걸레 부분을 고정하는 부분이 다소 부실한 편이지만 작은 방에서 쓰기엔 충분한 것 같다)와 빨래를 하고, 밥 4인분을 하고, 냉장고 정리를 했다.


 저녁 때 친구와 장을 보러 가기로 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감자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이럴 수가, 어떤 것은 하얗게 곰팡이가 피어있는가 하면 나머지 것들은 도깨비 뿔 같은 싹들이 잔뜩 나 있었다. 살림고수들은 싹 부분만 노련하게 도려내서 요리하겠지만 나는 그럴 정도가 아니어서 눈물을 머금고 봉지째로 버렸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그래놓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장 보러 가서 감자를 또 샀다. 어쨌든 당근은 처리해야 했으니까.


 잔뜩 장을 보고 와서 짐 정리를 하고 인터넷에서 요리법을 찾던 와중에 커리에는 원래 감자와 당근이 안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한국에서 즐겨먹던 바몬드카레에는 당연히 당근이랑 감자를 썰어넣지만 오늘 사온 것은 정통 인도식 커리파우더라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커리파우더까지 샀으니 만들어보자고 요리에 착수했다. 의도치 않게 냉장고 안에서 말라가던 토마토 두 개를 소비할 수 있어서 좋았다.



 기숙사 주민들이 항의할까봐 환풍기까지 틀어놓고 한참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커리가 완성되었다. 커리파우더를 잔뜩 뿌린 탓에 냄새가 제법 그럴듯했다. 잔뜩 기대를 안고 맛을 보는 순간 재채기가 나왔다. 생강을 너무 많이 넣은 것이 문제였다. 결국 내 첫 번째 커리는 한 숟갈 먹을 때마다 재채기가 나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권할 수 없는 그런 악마의 음식이 되었다ㅠㅠ....


 내일부터는 각종 감자와 당근과 양배추를 활용한 요리를 해야 한다. 요리를 하다 보니 골파랑 양파를 쓸 일은 많은데 생각보다 감자, 당근, 양배추를 쓸 일이 흔치가 않다. 아무리 맛없는 요리를 하더라도 버리지 않는 것이 내 철칙이니 당분간은 고생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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