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가 지나서 5월 4일이지만 아직 긴 잠을 자고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5월 3일로 생각하기로 한다.


  오늘 학부 과목 시험 감독을 하나 해야 하고 나면 드디어 봄학기가 끝난다. 1월 9일에 개강해서 4개월 좀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거의 무슨 1년은 된 줄 알았다. 특히 2월 말까지만 진행되는 전반기 수업을 하나 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학기가 끝났다는 말은 반성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학기에는 나름 의미있는 변화도 꽤 있었다. 영어가 많이 늘어서 사람들과의 대화나 조교 수업이 한층 수월해졌고, 그러다 보니 조교 수업이나 오피스아워에 조금 재미를 붙이기도 했다. 12월 말부터 집에서 운동을 하기 시작해서 학기 말로 갈수록 바빠서 더 못 하긴 했지만 몸이 뻐근하거나 활력이 없을 때 습관처럼 운동을 하게 되었고 2월 초부터 시작한 포켓몬 고 때문에 집에 올 때는 항상 걸어다니고 어쩌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도 꼭 산책을 하게 된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져서 석사 때나 지난 학기보다 밤을 새는 날도 줄어들었다. 집안일에 익숙해지면서 요리에 투입하는 시간도 많이 줄었다. 생각해 보니 영어책도 두 권 다 읽었다.


  반면 아직 나아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안 좋아진 것도 있다. 이번 학기에는 전반기 한 과목, full semester 과목 두 개랑 리서치 학점 하나를 들었다(F1 비자 유학생은 정규학기에는 의무적으로 12학점을 채워야 함). 일단 보기에는 네 과목을 들으면서 허덕였던 지난 학기에 비해 여유가 있어서 연구할 시간이 많아서 뭔가 굉장한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optional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지원했던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현실은...매주 case study 과제를 제출하고 두 달 동안 시험 두 번을 보는 전반기 과목은 그렇다 치고, optional 프로젝트가 있는 과목은 총 네 번 시험을 보는 과목이어서 2월 14일, 3월 21일, 4월 20일, 5월 3일에 시험이 있었고 중간중간 일주일 이상 시간을 들여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그리고 어제 기말 프로젝트를 제출한 과목은 시험은 두 번 '밖에' 없었지만 매주 숙제를 제출하고 중간고사 이후부터는 기말 프로젝트를 비롯한 코딩 과제가 거의 매주 있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느꼈던 감동이나 새롭게 배운 것들을 차치하면 거의 무슨 함정카드인줄 알았다. 게다가(이제야 조교 수업하는 것을 즐기게 되어서 굳이 힘들었던 것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학기에만 8번 혼자 help session을 진행했고 오피스아워가 거의 항상 숙제 데드라인 전날 저녁에 있어서 그 때마다 연구실 앞에 줄 서있는 학생들을 상대해야 했다. 이렇게 구구절절 바쁨을 강조하는 이유는 연구를 거의 못 한 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optional 프로젝트는 교수님이 주신 논문들을 다 읽고 요약만 했을 뿐이고 내 연구도 고작 지도교수님이 주신 과제 중 하나를 겨우 해결했을 뿐이다. 교수님은 아직 1학년이라서 그런가 닦달하시지는 않는데 방학 중엔 일주일 정도만 day-off 하고 연구에 전념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게 확실히 지금 추이가 엄청나게 안 좋은 것이 분명하다. 하긴 한 게 없는데 진도 운운하는 것이 우습다.


  아무튼 그래서 연구 성과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다음은 영어공부에 관한 것이다. 이번 학기에 영어 말하기 실력이 부쩍 는 것은 1) 미국에 와서 한 학기를 보냈고 2) 말을 많이 해야 하는 mba 수업을 들었고 3) 동기와 이야기를 많이 했고 4) 조교 수업이랑 오피스아워 덕분에 뜻하지 않은 하드 트레이닝을 한 것 등이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지난 학기에 영화랑 드라마를 열심히 챙겨보면서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를 최대한 많이 외웠던 것도 유효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영화를 많이 보지도 않았고, 보긴 했어도 단어만 적어놓고 뜻을 찾아보고 정리하는 등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도 그럴 시간이 없었거나, 시간이 있었어도 머리를 많이 쓰지 않는 일들을 하면서 쉬기 바빠서 못 한 거다.


  이렇게 전부 적어놓고 보니 결국에는 나의 모든 문제는 시간 관리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연구를 거의 못 한 것도, 영어공부를 게을리하게 된 것도, 운동을 띄엄띄엄 하는 것도 전부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거였다. 그런데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난 5년 동안 논문 한 편도 쓰지 못 하고 체류기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졸업하게 될 거다. 우선은 연구자로서의 자질의 문제이지만 이건 나라는 한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도 결코 좋지 않다. 어렵게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힘든 course works를 비교적 잘 해내고 있는 것도 자랑스럽지만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고, 어떻게 더 나은 인간이 될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우선은 길고 긴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진지하게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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