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학교에 갔다. 블로그에 너무 심심하고 외롭다고 쓰면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바빠지고, 너무 바쁘다고 쓰면 갑자기 심심해지는데 이번 주는 지난 주에 바쁘다고 썼는데도 여전히 바빴다. 월요일 real analysis 숙제 제출(벌써 여섯 번째 숙제), 월수목 financial management 숙제를 했고 다음주에는 월요일 real analysis 7번째 숙제, 화요일 조교수업, 수요일 멀티에이전트 숙제, 금요일 real analysis 8번째 숙제 제출, 월수목 financial management case 한 개랑 problem set 두 개 풀어가기 등의 숙제가 있고 토요일에는 드디어 집을 보러 간다. 다음주 월요일에 내는 real analysis 7번째 숙제는 어제(금요일) 시작했는데 하필 앞의 두 문제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솔루션에 없는 내용이라 두 문제 푸는 데 네 시간이 걸렸다...아니 이 무슨...그래도 오늘 세 시간 동안 여섯 문제 풀고 이제 두 문제 남았다! 금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숙제는 목요일까지 해야 하는 일이 넘나 많기 때문에 당장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재무관리는 일주일에 세 번 수업이 있는데 수업 전까지 숙제를 다 풀어가서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시면 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업 전날은 항상 밤을 샌다. 꼭 석사 때 네트워크 수업 들을 때 같다. 그나마 그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밖에 수업이 없어서 일 주일에 두 번 정도만 밤을 새면 됐었는데 이건 뭐.



  이번 주는 물론 당연히 바빴지만 연구에 대한 내 개념을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순간도 있었다. 이것 또한 real analysis 때문에 하게 된 생각이다. 보통 때 나는 숙제를 할 때 문제를 슬쩍 보고 '음 이건 역시 내가 풀 수 없는 문제야' 하고 바로 솔루션을 찾아보고는 의외로 어렵진 않다는 것을 깨닫거나 역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컨텍스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식으로 이삼일에 걸쳐 숙제를 한다. 물론 시험이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급하게 숙제를 할 때는 제출 전날 밤을 새면서 이해도 안 되는 글자를 적기도 하지만 말이다.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관심있는 문제가 생기면 포뮬레이션을 해보거나 이미 알려진 식을 써놓고 들여다보는 대신, 어마어마한 양의 레퍼런스를 찾아놓고 그 중 일부를 읽으면서 내가 무슨 variation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다. 내가 대가였다면 이런 식의 접근을 통해 이 연구자가 뭐가 미흡했고, 이런 식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발전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아직 연구자로서 걸음마 단계인 상태에서는 선배 연구자가 제안한 방향으로만 사고가 제한되고 만다. 그래서 이번 멀티에이전트 프로젝트는 포뮬레이션을 먼저 해놓고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ㅎ 어제부터 real analysis 숙제만 하고 있다. 그래도 너무 고민이 돼서 동기한테 상담을 요청했던 며칠 전보다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은 한국인 친구랑 같이 밥 먹고 장을 보고 오면서 가깝게 지내는 외국인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나나 그 친구들이나 이국 땅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관계를 돈독히 하려고 더 노력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내가 그 친구들을 왜 좋아하고, 어떤 면 덕분에 친하게 지내게 됐는지를 생각하면 국적 같은 건 확실히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요즘들어 더 자주 든다. 같은 한국인이라도 '저 새끼는 제 정신인가' 싶은 사람도 있는데, 말이 막힐 때가 있더라도(감정을 털어놓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굳이 시간을 내서 같이 사소한 일상을 이야기하고 기쁜 마음으로 의논하고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을 얻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인 것 같다. 그토록 우울우울의 늪에 빠져있던 내가 지금 심지어 행복하다고 느끼게까지 된 건 다 그 사람들 덕분이다.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지는 것도 주변 사람들의 영향이 커서 불과 며칠 사이에 기분이 큰 폭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10월 28일 현재는 그렇다.



  앞에서 쓴 대로 다음 주말에는 첫 번째 집을 보러 간다. 벌써 대여섯 군데의 렌탈 업체에 메일을 보내서 한 곳은 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하고, 두 군데는 휴업일이라 아직 연락을 못 받았고, 한 군데는 월요일에 약속을 잡기로 했고, 한 군데는 여전히 고민 중이고, 한 군데는 다음주 토요일에 가는 곳이다. 이 중 마지막 아파트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마음이 기운 곳이다. 처음 off-campus housing을 구하기로 마음먹고 정한 조건은 1) 5월에 입주 가능해야 하고(기숙사 퇴사기한이 6월 1일까지이므로) 2) 연구실에서 걸어다닐 수 있어야 하고 3) 유틸리티를 제외하고 월세가 700달러를 넘지 않아야 하고 4) 모든 가구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였는데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연구실에서 10분 내외로 걸어다닐 수 있는 곳은 많은데 5월에 입주 가능한 곳은 드물고 더구나 이 가격대에 가구가 갖춰진 곳은 거의 없다. 이 네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곳이 바로 마지막 아파트인데 렌트에 가스&전기(렌탈 매니저 말로는 한 달에 합쳐서 보통 55-95달러 정도라고 한다), 인터넷 비용까지 다 더하면 800불 안팎이라 더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머리를 굴리고 있다. 조건이 맞지 않은 곳은 알아본 곳들 중 가장 평이 좋고 가격이 싼데, 8월에는 빈 원베드가 없어서 5월에 입주하려면 3베드룸 하우스에 3인분의 렌트를 납부하면서 임시로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제꼈다. 월요일에 약속을 잡기로 한 곳은 가구가 아예 없고(대신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고 함) 월세는 720달러인데 방이 아주 넓고(641sqft) 싱크대가 아주 널찍하다. 고민 중인 곳도 8월 입주 가능에 가구가 없지만 레딧에서 (학교 이름) apartments를 검색했을 때 평이 꽤 좋은 편이었고, 처음 연락했을 때 만약 내가 관심이 있다면 지금 사는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5월에 서브렛을 시작하고 필요하다면 그 사람한테 가구를 팔라고 권유를 하겠다는 등 무척 협조적이어서 계속 미련이 남았었는데, 얼마 전에 자기네 웹사이트에 올린 곳들이 꽤 좋아 보여서 다시 연락을 할까 고민 중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처음에 가구가 다 갖춰진 곳에 가야겠다는 다짐은 이후에 책상과 의자는 내가 사서 조립해도 되지 않을까? 였다가 지금은 안 되면 침대 프레임은 포기하더라도 매트리스는 사자...라는 것까지 누그러졌다. 사실 조립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사를 간 시점에서 3년 후 졸업인데 그 많은 가구들을 높은 확률로 다른 주에 있을 새로운 집까지 들고 가거나 여기서 전부 중고로 팔아서 처리를 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부피가 큰 가구는 되도록 사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정말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미래의 괴로움을 감안하고 가구를 장만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침대/나이트스탠드/옷장/엔드테이블/커피테이블/카우치를 제공한다는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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