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방학이 끝났다. 사실 월, 화 이틀 밖에 안 되지만 금요일 저녁 때부터 조금씩 들뜨기 시작해서 방학 내내 재밌게 놀았다. 일요일과 월요일엔 학교 가서 공부를 하고, 토요일과 오늘은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것 외에는 집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들어서 내일 학교는 어떻게 갈지 걱정이다.



  어제는(월요일) 점심 도시락 싸서 가려고 채소를 다 썰어놨더니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렸다. 기숙사 사람들로 구성된 groupme가 그것 때문에 엄청 웅성거렸는데, 누가 메인 오피스 가서 물어보니까 건설 중에 뭔가를 건드려서 전기가 나간 것 같다고 했다고 해서 금방 전기가 들어올 줄 알고, 저녁은 집에서 먹을 생각으로 학교에 갔다. 몇 시간 지나서 전체메일로 다섯 시에 전기공급이 재개될 것 같다고 해서 생각보다 심각하긴 한가보다, 그리고 어차피 난 다섯 시엔 집에 있지도 않을 텐데 뭐,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 다음엔 또 일곱 시에 전기가 들어올 것 같다고 해서 실망했지만, 여전히 그 때까지는 집에 도착하지 않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그리고 여섯 시 반이 좀 지나서 몇 군데 알아본 아파트 중 한 곳의 주변을 정탐(?)하기 위해 짐을 챙겨서 퇴근했다. 분명 매니지먼트 사이트에는 연구실이 있는 건물에서 9분 거리라고 했는데 구글 지도에서 계산한 결과로는 13분이 걸렸고, 방학 중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인적이 드물고 길도 몇 번이나 건너야 하는 등 다소 위험해 보여서 마음 속에서 지웠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비록 도보로 25분이 걸리긴 해도 학교 안에서만 걸어다닐 수 있어서 참 좋은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걷는 길에 다른 아파트들도 구경했다. 구글과 레딧에서 검색해 보면 엄청나게 악명이 높은 곳이 두세 곳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이곳저곳 심지어 좋은 위치에 아파트 단지를 많이도 만들어 놨다. 저 회사가 한 달 치 렌트 만큼의 deposit을 별 핑계를 다 대어가며 떼어먹는다는 리뷰를 보지 않았다면 높은 확률로 저 중 한 곳에 입주했을 텐데. 학교 주변의 큰 회사들은 대부분 deposit을 갖가지 명목으로 떼어먹는다니까, 이왕이면 떼어먹는 액수가 적은 곳에 가서 반쯤 포기하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해서 집 밖에 안 나가고 집에서 영어공부 하다가 몇 군데 눈여겨본 아파트 매니지먼트에 이메일을 보냈다. 근무 시간이 끝나고 나서 메일을 보내서 한 곳 밖에 답이 안 왔는데, 모든 조건이 나와 맞지 않아서 못 갈 것 같은데 답장을 보내준 직원이 너무 친절해서 계속 미련이 남는다. 8월부터만 입주가 가능하고, 침대, mattress, dresser가 제공되는 가구의 전부라서 만약 여기로 이사간다면 기숙사에서 나가는 5월부터 8월 초까지 살 수 있는 sublet을 따로 구해서 두 번이나 이사해야 하고, 책상, 식탁, 의자 등 상당수의 가구를 사야 한다는 엄청난 문제가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아직도 좀 고민이 되는데, 이사 두 번할 생각하면 끔찍해서 그냥 여긴 포기하기로 했고, 대신 마찬가지로 방을 찾고 있는 연구실 친구에게 매니지먼트에서 보낸 답장을 포워딩해줬다. 그리고 10시 이후부터는 아무리 그래도 방학인데 금요일에 제출해야 하는 real analysis 숙제를 반도 안 해놓는 건 너무한 것 같아서 숙제를 풀고 있었다.



  사실 어제는 집 생각만 한 게 아니라 saving account 생각도 했고 자전거 사는 것도 생각했었는데, saving account는 그렇다 치고, 자전거는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고 이사하기 전에 짐을 더 이상 늘리면 안 되므로 당분간 사지도 말고 생각도 하지 말아야겠다. 물론 이런 것들이 전부 중요한 것들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 내 본업ㅠㅠ도 제대로 못 하고 있고 하 지금 한 번에 고민 중인 문제가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한 번에 생각할 수 있는 것들만 같이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아파트 매니지먼트에 컨택 메일을 보냈던 것도, 이만하면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정보는 충분히 구했으니 이제 나머지는 계속 검색해서 얻을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한테 직접 얻어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답장을 받기 전까지는 이제 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잊어버리고 기다려야지 뭐. 며칠 동안 알아볼 수 있는 건 다 알아본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재채기, 콧물, 기침이 나와서 조금 전에 자기 전에 먹는 감기약을 먹었다. 벌써 좀 졸리기 시작하는 게 오늘은 일찍 잘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11시 반 수업이 있으니까 일찍 일어나서 시금치두부무침 해서 어제 끓인 카레랑 같이 도시락 싸고 연구실 가는 길에 cvs 가서 낮에 먹는 감기약을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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