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부터 30일까지 제주도에 다녀왔다.

블로그에 기행문을 연재하고 있는 후배에게 자극을 받아, 조금이라도 여행의 흔적을 남겨두고 싶지만 밖에서 돌아다닌 날보다 집에서 뒹굴거린 날이 더 많고, 글을 쓸 환경도 여의치 않아서 여행 경로만 대충 정리해보기로 한다.

첫째날: 천지연->새섬
제주도에 하도 오랜만에 가서 새섬과 천지연을 연결하는 새연교는 처음 봤다. 어렸을 때는 제주도에 갈 때마다 천지연폭포에 갔었는데, 이번엔 폭포는 보지 않고 새연교를 통해 새섬으로 들어가서 섬을 한 바퀴 돌고 왔다. 새섬은 원래 무인도라고 들었는데, 산책로를 참 알뜰하게도 잘 꾸며놓았다. 너무 인위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걷기 불편할 정도로 방치해 두지도 않고...한밤중에 가서 경치를 구경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낮에 갔다면 장관이었을 것 같다.

둘째날: 올레길 5코스(남원리~쇠소깍), 비자림
올레길 5코스는 남원리에서 시작해서 쇠소깍에 이른다. 총 길이는 약 15km 정도로, 서귀포 부근의 다른 올레길 코스들에 비해서는 다소 짧은 편이다. 마침 제일 더울 때 제주도에 간 거라서 7시 반부터 걷기 시작해서 11시 반에 끝낼 수 있었다. 가는 길 대부분이 바다 쪽에 있지만 귤농사를 많이 짓는 서귀포답게 가끔씩 귤나무가 있는 농가도 지나쳤다. 길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큰엉, 금호리조트(정원이 무척 잘 꾸며져 있다), 그리고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등이 있다. 경로의 대부분이 상당히 평탄하지만, 바다 쪽에 있는 돌길이 상당히 험해서 꼭 등산화를 신고 걸어야 한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 지났을 때,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고 비옷도 없어서 할 수 없이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들렀다.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면서 커피도 마셨다. 나올 때는 그 집 아저씨가 일회용 비옷을 주셔서 올레길 끝날 때까지 요긴하게 사용했다.

위미리에서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한가인의 집으로 나온 집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정말 바다가 바로 닿아있는 곳에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파도 소리가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역시 파도 소리가 은근하고 잔잔하게 들렸다. 6월부터 리모델링을 해서 11월에 갤러리와 카페로 개장한다는데 겨울에 다시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한참을 쉬고 오후에는 비자림에 갔다. 사실 경로가 좋은 편은 아니다. 5코스는 서귀포 부근의 남쪽 마을들을 지나는데, 비자림은 제주시 쪽에 있으니까 한참 떨어져 있다. 가는 동안 산굼부리를 볼 수 있고, 비자림 가까이에는 제주도 관광객들이 가장 인상깊게 생각하는 곳 중 하나로 알려져있는 만장굴이 있다.

비자림은 비자나무가 집단으로 자생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숲이 아니라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되고 거대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산책로에는 관광객들이 걷기 쉽도록 새집증후군에 좋다는 화산송이를 뿌려놓아서, 맨발로 걷고 있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두 나무가 붙어서 만들어진 연리지, 수령이 천 년이 넘었다는 새천년 나무를 비롯하여, 비자나무 말고도 여러 특이한 나무들이 곳곳에 있어서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산책로 끝날 때 쯤에 있는 약수터의 물은 날이 더워서 그런지 별로 시원하지 않았다.

하효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갔다.

넷째날: 한라산

셋째날에 삼촌이 오셔서 이모, 삼촌과 함께 한라산에 갔다. 한라산 등산로는 영실, 돈내코, 성판악, 관음사 코스 등이 있는데 경치가 좋고 산을 오르기 좋다는 영실 코스는 현재 정상으로 가는 길이 막혀있다. 그래서 올라갈 때는 성판악 코스로, 내려올 때는 관음사 코스로 가기로 했다.

성판악에는 6시 반 정도에 도착했다. 한라산은 해발고도 1,950m의 거대한 산이라서 1,500m 고지의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오후 한 시 이전에는 도착해야 무사히 등반에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가는 길에 속밭대피소라고 화장실과 휴식공간이 있는 곳이 있었지만 여기엔 손 씻을 곳이 없던 것 때문에 마음상해서 굳이 길게 쓰고 싶지 않다.

성판악 코스는 대체로 숲이 우거진 편인데, 어느 정도 고도에 이르면 숲이 없어지고 하늘이 보이기 시작해서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한라산의 다양한 식생 때문인 것 같은데, 중학교 지리시간에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것이 왜 생각이 안 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숲이 없어지기 시작하니까 체력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나무다리가 나타나면서 급속도로 힘들어졌다. 낙오할 뻔했던 것을 이모와 삼촌이 짐도 나눠서 들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정상에는 10시 50분 쯤에 도착했다. 성판악에서 6시 50분에 출발하였으니 4시간 정도 걸린 것이다. 비가 많이 내려서 백록담에도 물이 차 있었다. 사진도 많이 찍고 사고 간 김밥도 먹었다. 혼자 온 일본인 관광객과도 마주쳤는데 정말 대단해 보였다.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악몽같았다. 성판악 코스도 쉽게 올라온 것은 아니었지만 관음사 코스는 더 힘들었다. 경치는 관음사 쪽이 말할 수 없이 더 좋았지만, 문제는 경치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경사가 심했고 돌길이 많았다. 거기다 소나기가 왔는지 돌이 다 젖어있어서 무척 미끄러웠다. 등산화를 신고 스틱까지 짚고 걸었는데도 몇 번이나 넘어졌다. 어느 정도 경사진 길이 지나자 평탄한 길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 길도 역시 돌길이라서 굉장히 힘들었다.

내려오는 데에는 네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마지막 2km 정도는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모랑 삼촌이 '부모님이랑 왔으면 울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모 삼촌이랑 와서 안 울었을 거다'라고 장난스럽게 말씀하셨는데 솔직히 몇 번이나 발에 물집이 생기고 있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울었다. 다행히 지금은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괜찮고, 심지어는 또 가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 하고 있다.

정리를 하고 나니 제주도에 다녀온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 만큼 꿈 같고 일상과 완전히 격리된 생활을 하다 온 것 같다. 올 겨울에 또 가서 올레길 다른 코스도 걷고 바다도 구경할 생각인데, 벌써부터 겨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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