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목소리의 結晶(롤랑 바르트): 너무 어려워서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를 먼저 읽고 읽었더니 훨씬 이해가 쉬웠다.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코드화된 대중 문화를 디코드(decode)해서 읽으려는 시도가 롤랑 바르트 사상의 기조였다는 건 알겠다. 어떤 면에서는 다른 철학자들에 비해 명료하다고 느꼈다(절대 쉽다는 뜻이 아니다).


1.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우치다 타츠루): 지금까지 읽은 구조주의 철학 책들 이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그 먼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쉽다. 구조주의의 큰 틀 안에서 다른 분야에서 활약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얼마 전에 산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도 이 책의 저자가 쓴 거라서 기대하고 있다.


2. 은밀한 생(파스칼 키냐르): 소설이라고 보기에도, 에세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책이다. 처음에는 현재의 사랑을 얘기하는 줄 알았더니, 그리고 다음에는 과거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더니, 밀란 쿤데라의 잠언 같은 구절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읽으면서 그 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음 그랬나?' 했다.


마음에 들었던 구절:

내가 당신을 잃었다는 사실 자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당신을 잃은 방식 때문에 고통을 느낍니다(Et incomparabiliter major fit dolor examissionis modo quam ex damno). - 28장 피에르 아벨라르에 대한 엘로이즈의 반론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성적 흥분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육체가 아닌 한 육체와 매일 함께 있고자 하는 욕구이다. -33장 마조히즘


3. 리퀴드 러브(지그문트 바우만): 바우만의 책을 몇 권이나 읽고 또 쓰는 건지 모르겠다. 그 만큼 바우만의 책을 좋아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동어반복적인 것 같다고 느낀다. 모든 것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하에서 어느 한 곳에 묶이지 않고 쉽게 변한다는 것이 씁쓸했다.


4. 번역한다는 것(움베르토 에코): 내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읽었을 것 같다. 번역은 단어 하나하나를 대응시켜가며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음에 들었던 구절:

폴로니어스--(어느 사물의 너머에서) 오, 격렬한 수단을 이용하여 나를 죽음으로 인도하였어!(햄릿의 한 부분을 단어의 정의를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번역했을 경우에 일어나는 참사, 원문은 Lord Polonius--(Behind) O, I am slain!)


5.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제롬 뱅데): 세계화, 과학의 발전 등이 인류의 가치관과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여러 석학들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부제가 '윤스코, 21세기의 대화, 세계의 지성 49인에게 묻다'인데 글을 두 개 이상 쓴 저자들이 꽤 있어서 정말인가....? 싶다. 저자들 이름값 만큼 좋은 글들이 많은데 하나의 주제 안에 여러 명의 글이 있다보니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서 지겨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 장마다 그 장에 있는 글들을 요약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6. 몰락의 에티카(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정확한 사랑의 실험'만 보고 읽기에는 굉장히 깊고 넓은 책이었다. 초반부터 라캉, 바디우 등의 철학자들이 인용되는 것을 보고 이게 본격적인 평론이구나 싶었다. 난 시는 거의 읽지 않고 소설을 많이 읽어서 아는 시가 별로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시들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에 드는 시 몇 개는 베껴뒀는데 이건 나만 읽어야지.


7.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지그문트 바우만): '액체근대', '유행의 시대' 등에서 본 듯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어차피 내 돈으로 산 거라서 다 읽긴 읽어야 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회의 변화를 해설한 이전의 책들과는 달리 여성 잡지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글들답게 유동성이 사회 곳곳에 어떤 식으로 침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바우만의 이론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 미사고의 숲(로버트 홀드스톡): 분위기가 음침하다. 프롤로그부터 무슨 내용이지...? 하고 호기심을 갖고 읽고 있었는데 로빈 후드 얘기가 나와서 좌절했다. 여기서 그만둘 수도 있었지만 참고 읽다보니 중세, 또는 더 이전의 서양 판타지 세계관이 흥미로웠다. 사람이 새로 변한다는 건 미국 원주민들의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켈트 신화와도 상관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