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에서 보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영화였다.


 포스터는 무슨 'mit 천재들이 카지노를 턴 이야기' 내지는 '세계를 속인 마술사 이야기' 같은 분위기인데, 실상은 kbs 일요스페셜 또는 ebs2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 차라리 아주 지적인 분위기로 홍보를 했다면 입소문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스페셜이나 다큐멘터리 분위기가 난다는 것은 영화가 재미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카메라의 거친 움직임이나 극 중간에 화면이 멈추고 등장인물들이 배경지식 등을 설명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중간중간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들(예를 들어 아이폰의 발명)도 그런 분위기를 강화했던 것 같다. 금융위기 전후의 일련의 사건들이 너무 극적이어서 최대한 등장인물들의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하게 '아, 이 영화가 극영화이구나'하고 느낄 수 있었던 건 브래드 피트가 등장하는 부분에서였다. 배가 나오고 수염이 덥수룩했지만 극중 이름이 브래드 피트였어도 별로 위화감이 없었을 것 같다. 스티브 카렐이 등장하는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그못 알아봤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쩐 일인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객관적 수치만을 믿는 외골수 박사가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그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한창 금융공학에 관심이 있던 2010년에 샤이아 라보프가 나오는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를 봤었다. 금융위기 직후에 제작된 영화여서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오로지 인간의 탐욕! 그리고 그 해결책은 가족주의! 라는 식으로 맺고 끝낸 것이 무척 실망스러웠다. 그에 비하면 '빅쇼트'는 금융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비교적 냉엄하게 분석하고 금융시장 전체에 만연한 비합리성과 도덕적 해이를 자세히 그린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금융시장의 붕괴에 베팅한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던 내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꼈다는 거다. 금융시장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들을 비웃는 사람들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웃을 수 있나 두고보자 했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2008년, 2009년의 경제위기를 간접적으로 체험했던 주제에 어서 붕괴시점에 도달하기를 바랐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금융시장만 부도덕한 게 아니라 나도 부도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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