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학 시작한지 2주가 넘었다. 학기 중보다 시간이 더 안 가는 것 같다. 그렇게 느끼게 된 건 순전히 심심해서다. 학기 중엔 동기랑 맨날 붙어다니고 연구실에서도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피스메이트랑 긴 시간을 같이 있었는데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둘다 실종이라도 된 것처럼 학교에 오지를 않는다.  아무리 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2주 동안 사람과의 대화 한 마디도 못 하는 것은 가혹하다. 오죽하면 그 두 사람한테 제발 학교에 와 달라고 이메일을 보내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까. 다행스럽게도 오피스메이트는 목요일부터 학교에 오기 시작했다! 주말에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서 목요일, 금요일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를 보자마자 지나치게 반가워했던 것 같다.




2.


  날씨가 너무 오락가락한다. 그저께까지 29도, 30도 정도로 덥더니 비가 오고 나서 갑자기 추워져서 어제는 긴 옷을 입고 나가야 했고, 오늘은 또 낮 기온이 15도 정도이기에 긴 후드티를 입고 연구실에 갔다가 저녁 6시 반쯤 밖에 나오니까 26도로 후텁지근했다. 처음엔 핸드폰 날씨 어플이 잘못 된 것인 줄 알았다. 집에 가면 또 얼마나 덥고 습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창문을 닫아놓고 나와서 아침 기온 정도로 서늘해서 오늘도 에어컨을 켤 필요가 없을 것 같다.




3.


  요즘 부쩍 집밥에 물리기 시작했다(왠지 이렇게 시작하는 일기를 이전에도 썼던 것 같다).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하루에 한두 끼씩은 꼭 밖에서 사먹었는데 미국에 오고부터는 뭐 주말에 한 반찬을 일주일 내내 먹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남들은 바빠서 밥을 사먹는다는데 난 바쁠 때는 불평없이 꾸역꾸역 잘 먹다가 정작 한가해지니까 외식을 하고 싶어한다. 이런 청개구리가 따로 없다. 5월 들어서 초밥 한 번 먹고(아마도 방학 시작 기념이라는 명목으로 먹었던 것 같다) 지난 주 일요일에 판다익스프레스에 한 번 갔었다. 판다익스프레스는 지금껏 딱 두 번 가봤는데 굉장히 달고 맵고 짠 맛이 딱 한국에서 외식할 때 먹는 맛이다. 다른 곳에 비하면 비교적 저렴한 편이지만 일주일치 장 보고 오는 게 40달러 안팎인 주제에 한 끼에 9달러가 넘는 음식을 자주 먹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아서 아예 냉동 오렌지 치킨을 사다놨다.


  생각해 보니까 방학 시작하고 스스로 한가하다는 착각에 빠져서 주말에 반찬을 부지런히 만들어놓은 적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것 것 같다. 학기 중에는 아무리 바빠도 일요일엔 새벽 두세 시까지 찌개 끓이고 잡채 만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 방학 시작하고 나서는 밥을 미리 지어놓을 생각도 안 하고, 먹을 때 되면 새로 만들어 먹겠지 하고는 정작 손 많이 가는 음식은 안 하다 보니 반찬이 너무 부실하다. 부실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맛이 없다. 내일은 꼭 잡채랑 고구마맛탕이랑 된장찌개를 만들 거다.



4.


  방학이 시작되고 새로 목표를 세운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영어책을 필사하는 것이다. 그 전에도 단어 공부를 목적으로 책 몇 권을 읽긴 했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직접 쓰면서 공부하다 보면 뭔가 다른 것을 더 배우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예전에 <App generation>을 읽을 때도 책 전체에 쓰인 표현들이 다 좋아서 전부 외우고 싶다고 생각해서, 마찬가지로 좋은 책들을 계속 꾸준히 필사하다 보면 내 문장력도 그 정도에 이르지 않을까 하는 그런??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효과가 나타났다. 연구실에다 책이랑 단어장을 갖다 두고 매일 30분씩 필사하고 모르는 단어를 정리하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다 보니 학교에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날에도 필사를 하러 간다. 간 김에 다른 공부도 좀 더 하다 오게 되고 그러니 나 같은 게으름뱅이에게는 이 만큼 좋은 처방전이 따로 없다. 참고로 이 책은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written by Diane Ackerman)>이다. 4월 초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책을 한 번에 너무 많이 사버려서 4월 한 달을 곤궁하게 살았는데 이런 용도로 책을 이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8월까지 필사 끝내고 다시 읽어봐도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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