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자정까지가 기한인 레포트만 제출하면 드디어 방학이다. 한 학기 끝날 때쯤 되면 영어가 엄청나게 늘어있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아, 어제 같은 과 중국인 언니랑 얘기하면서 이전보다 유창해진 느낌이긴 했다.


  한 달을 어떻게 보낸지 모르겠다. 추수감사절 연휴기간에도 학교에 매일 나갔을 만큼 정말 바빴다. 숙제 여섯 개, 프로젝트 세 개, 시험 하나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다. 그러다 이번 일요일 5시에 자정까지 내야 하는 레포트를 내놓고는 마음이 탁 풀려버려서 내내 놀다가 화요일 저녁 7시부터 있는 시험 공부를 월요일에야 시작했다. 시험 직전까지 숙제 솔루션도 다 못 보고 들어가는 줄 알았다. 시험은 어떻게 잘 보긴 했는데(한국에서 듣고 온 과목인데다, 이전의 두 번의 시험에서 점수가 워낙 좋아서 부담이 크지 않았다), 그러고 나와서 어제인 수요일 아침 8시부터 시작되는 학부 시험감독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 하고 늦잠잘까봐 새벽에 몇 번이나 깨다가 7시에 겨우 일어나서 30분 만에 다 챙겨서 집을 나왔다. 물론 그래놓고도 버스를 놓쳐서 시험 직전에야 들어갔다.


  그래놓고는 10시에 시험이 끝나고 오피스에 돌아와서 놀다가 선배 언니가 다음 학기에 듣는 과목들 때문에 얘기하러 와서 같이 시간표 보면서 얘기하고 12시에 밥 먹고 또 놀다가 자고 일어나 보니 오피스를 같이 쓰는 친구가 남자친구와 와 있었다. 이 사람들은 연애할 데가 그렇게 없는지 틈만 나면 남의 오피스에서 데이트를 한다. 책상에 쓰레기 버려놓고 치우기만 제대로 했어도 이렇게 거슬리진 않았을 거다. 저번에 연구실에서 떠들기에 나가서 얘기하라고 했더니 지금은 자기들끼리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어제는 유난히 거슬려서 뒤를 돌아봤더니 남자애가 게임을 하고 있어서 또 나가서 얘기하라고 했더니 둘이 같이 오피스를 나가버렸다. 이렇게 쓰고 보니 평소에는 웬만하면 넘어갔으면서 어제만 뭐라고 해서 일관성 없는 처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제는 괜히 짜증이 났었다. 시험공부를 하든 게임을 하든 연애를 하든 한 가지만 하라고.


  오늘은 집에 있다. 월요일에는 집에만 있었고 화요일에는 시험 때문에 오후에 나갔다가 밤에 걸어서 집에 올 때 극심한 추위 때문에 허벅지가 찢어지는 듯한 느낌을 경험했고 어제는 아침에 버스 위치를 확인하느라 장갑을 잠깐 벗었다가 손이 에이는 듯한 추위를 느꼈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보다도 더 춥다고 한다. 한낮에 영하 18도라니. 그래서 집에서 난방 켜놓고 담요 뒤집어 쓰고 따뜻한 차 마시면서 바깥을 구경하는 중이다. 내일까지 제출하는 레포트도 빨리 써야 하는데. 어제 겨우 참고문헌이랑 introduction까지만 완성했다. 지난 주 금요일에 발표했던 프리젠테이션 내용을 그대로 따다가 쓴다고는 하지만 장문으로 늘여야 하니 시간을 꽤 들여야 할 텐데.


  어젯밤에는 동기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다. 여전히 나이도, 전화번호도 모르지만 4개월간 붙어있으면서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방학해서 4주 동안 얼굴을 못 보면 다시 어색해질 것 같아서였다. 페이스북 친구가 된다고 해서 친밀도가 엄청나게 상승하는 건 아니겠지만 뭐. 이래놓고도 한 마디도 안 할 수도 있다.


  방학 때는 학기 중에 못 봤던 논문들을 탐독하고 영어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 이번 학기에 수업 네 개를 듣느라 research 수업을 듣지 않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논문 읽기를 게을리했었다. 다행히 이번 프리젠테이션, 레포트 주제가 내 관심분야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라서(사실 그래서 그 주제를 고른 거였다) 일부러 참고문헌을 더 찾아가면서 열심히 했는데 기대한 것보다도 재미있었다. 한국에 계신 지도교수님께 1년차 때 논문 한 편을 쓰고 8월에 한국에 가서 찾아뵙겠다고 큰소리쳤었는데 가능했으면 좋겠다. 영어는 단어를 많이 공부하고 영화도 많이 보고 한국에서 보다 만 grammar in useㅠㅠㅠ를 한 번 다 보고 그럴 생각이다. 방학해서 다들 학교를 떠나면 영어로 말할 기회가 잘 없을 텐데 이렇게라도 해야 실력이 늘지는 않더라도 유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동도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날씨가 이렇게 추워서 집에서 10분 떨어진 학교 체육시설까지 과연 얼마나 자주 다니게 될지 조금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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