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 여덟 시 반이었나 아홉 시에 깼는데 밖에서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음 지금 장 보러 가기는 글렀군 생각하고 다시 잤다가 한 열한 시 쯤 다시 깼었다. 그 때도 뭔가 핑계를 대면서 다시 눈을 감고 자다깨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 이제 정말 허리 아프고 배고파서 못 참겠다 싶었을 때 침대에서 완전히 벗어나 핸드폰 시계를 봤더니 웬걸 오후 세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무리 주말이어도 그렇지 이게 뭐냐, 토요일이라 버스도 일찍 끊길 텐데 장은 보러 갈 수 있겠냐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버스 시간표를 확인해보니 다행히도 6시 11분까지는 평소처럼 3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그 다음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오는 거라서 부지런히 챙기면 별 탈 없이 장도 볼 수 있을 것 같고 정 늦는다면 편리한 lyft를 탈 수도 있겠다(두 번 타 봤다고 여유가 생겼다) 싶어서 밥 먹고 세수하고 나와서 4시 50분 차를 탔다. 올 때는 시간표보다 차가 무려 20분이나 늦게 와서 정류장에서 장본 것들을 다 들고 서 있는 게 좀 힘들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돌아왔다.



  이번 여름방학부터 무려 주6일 근무라는 걸 하고 있는데(어떤 때는 주 5일만 가기도 한다) 그게 어쩌다 보니 습관이 이상하게 들어서 주말에 꼭 하루씩 엄청나게 늦잠을 자서 연구실에 못 가고 있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토요일에 학교에 가고 일요일에는 집에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청소도 빨래도 일요일에 하는데 학교에 갔다 오면 해가 지기 전에 청소기를 돌려야 해서 쉴 틈도 없이 청소를 하고 시간 돼서 밥 차려먹고 운동하고 씻고 빨래까지 해야 하니 주중 저녁보다 더 힘들다. 그나마 이번 주는 목요일 밤에 빨래를 한 덕에 빨랫감이 적어서 내일은 빨래를 안 해도 될 것 같다.



  어제는 교수님이랑 연구 미팅을 했는데 가져간 게 워낙 엉망이라서 교수님께서 계속 지적하시고 연구 전반에 대한 조언까지 하셨다. 목요일에 부전공 세미나 들어가서 애들 발표하는 거 보고 '저런 식으로 발표하면 우리 석사 지도교수님이라면 말로 쥐어패셨을 텐데'하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내가 해간 것을 교수님 검토를 받고 나니 내가 딱 그 짝이었다. 2년 동안 교수님이 나한테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다고 느낀 것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스스로의 영어 실력에 충격을 받았을 때였고 두 번째가 5주 동안 별 다른 진도를 못 나가고 심지어 문제를 오해해서 시도한 이번인데, 교수님이 드러내놓고 화를 내지는 않으셨지만 이번에 들은 말들을 곱씹어 보면 정말로 화나고 실망하셨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나마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게 교수님이 말씀하신 소프트웨어를 돌려보는 거라서 장 보고 와서 밥 먹기 전에 우분투랑 이 소프트웨어를 깔고 예제 문제를 돌려봤다. 내일부터는 정말로 뭔가 실질적인 연구를 해야지.



  날씨가 한창 춥더니 오늘은 또 덥다. 오후에도 30도가 넘어갔지만 새벽 한 시 반인데 25도라니...내일은 정말 일찍 일어나서 아이스아메리카노 사서 연구실 갈 거다.

'대학원 > 박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1110 난방+입조심  (0) 2018.11.10
20181001 치과+발코니  (0) 2018.10.02
화요일  (0) 2018.08.22
이번 주  (0) 2018.08.05
7월  (0) 2018.07.04

 오늘은 다섯 시 반에 퇴근해서 낮잠을 세 시간이나 잤다. 아홉 시에 오전 수업이 있었고 세 시에 오후 수업이 있었는데 오전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아...오늘은 일찍 가서 자야겠다'하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아침 수업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내가 못 일어날까봐 긴장해서 새벽잠을 설치는 게 문제다. 어제도 아침에 못 일어날까봐 조마조마하면서 세 시 반인가, 네 시까지였나 잠을 못 잤다. 통학 시간이 편도로 한 시간이었던 한국에서와는 달리 건물까지 가는 데 걸어서 7분밖에 걸리지 않아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 사니까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할 일이 있으면 정말 며칠 전부터 긴장이 된다. 나중에 직장 들어가면 주중엔 매일 긴장해서 잠을 거의 못 자고 사는 거 아닌가 걱정될 정도다. 다행히 일곱 시에 눈이 떠져서 한동안 뭉게고 있다가 일어나서 씻고 아침, 점심까지 다 준비해서 가긴 했는데, 저녁 때 한국인 친구들이랑 만나기로 했던 건 약속시간 두 시간 전에 취소했다. 오늘따라 집에 너무 일찍 가니까 동기가 이상한 눈(?)으로 보긴 했지만...너무 피곤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자고 일어나서 아홉 시에야 겨우 정신차리고 저녁 먹고 좀 쉬다 보니 이 시간이다. 빨리 공부해야 됨.



  이번 학기도 수업을 세 개나 듣고 있다. 그 중 두 개가 하루에 수업을 몰아서 하는 박사레벨 세미나 수업들이라 5레벨 수업에 비하면 편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또 한 과목은 매 시간 논문을 읽어서 랜덤으로 발표를 하는 수업이라 또 가늠이 안 된다. 나머지 한 과목은 무려 5레벨 컴퓨터과 수업이라서 솔직히 이번에 듣는 과목들 중 가장 기대가 되는 과목이면서도 좀 무섭다. 지도교수님이 적극 권하셔서 관심이 생겨서 듣는 거긴 한데 오늘 강의실에 앉아있으면서 '교수님이 내 수업패스를 체계적으로 구상하고 계시긴 한 건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뭐 어쨌든 선택은 내가 한 거고 연구와는 별개로 나는 원래 다양한 과목을 듣고 싶어 했으니까 이 과목 때문에 연구가 늦어졌다는 생각을 추후에 하지 않도록 좀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방학 때부터 퇴근해서 집에서 공부하는 습관이 많이 흐트러졌는데 학기 중에도 계속 이러면 나중에 꽤나 고생하고 후회할 것 같다. 그 날 하기로 마음 먹은 일들은 퇴근해서도 끝까지 하고 잘 거다.



  토요일부터 계속 베트남 쌀국수 생각이 난다. 토요일에는 먹으러 갔더니 식당이 닫혀 있어서 못 갔고, 일요일에는 가려고 봤더니 이미 닫는 시간이었고(저녁 여덟 시에 문을 닫는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어제는 또 먹으러 가려다가 아 내일 친구들이랑 밖에서 먹을 건데......하고 안 갔고 오늘은 또 자느라 못 갔다. 오늘이나 아니면 일곱 시 반 전에 퇴근하는 날도 잘 없어서 별 수 없이 주말에나 먹으러 가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두 번 먹으러 갔는데 두 번 다 꽤 좋았다. 처음 갔을 때 먹은 포는 말할 것도 없고, 두 번째 가서 먹은 분짜조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곁들여 나온 팃 느엉(Pork skewers)이 그야말로 완벽했다. 이번 주말에는 포랑 팃 느엉을 같이 시켜서 먹을 거다.



  요즘 부쩍 삶의 무게가 버겁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얼마나 운 좋게 여기에 와 있으며, 여기서 직장까지 얻어서 살려면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며, 그 전에 졸업을 하려면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하며 뭐 이런 생각들이 자꾸 들다 보니까 모든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전보다 특별히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 맛있는 것들 먹어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즐겁게 그림그리고 동기랑 재밌게 얘기하고 운동시간이 점점 늘어가는 것에 기뻐하며 살겠다고 그렇게 가볍게 마음 먹어야겠다.

'대학원 > 박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1001 치과+발코니  (0) 2018.10.02
20180825 토요일  (0) 2018.08.26
이번 주  (0) 2018.08.05
7월  (0) 2018.07.04
20180508 단수  (0) 2018.05.08

  이번 주는 뭔가 완전히 망가진 것 같다.


  월요일엔 특별한 일 없이 학교에 갔다가 저녁 먹고 산책하고 집에서 운동까지 하고 나서 씻다가 갑자기 아파서 토했다. 산책할 때 날씨도 선선하니 속력 좀 내보겠다고 빨리 걸으면서 배가 살짝 아프긴 했지만 아무 전조도 없어서 좀 무서웠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바로 얼려뒀던 밥으로 죽 끓여먹고 병원에 갔다 왔다. 의사선생님이 가능한 원인이 워낙 다양해서 확언할 수 없다고 하셔서 그냥 처방받은 약 먹고 바나나랑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토스트만 이틀 내내 먹었다. 근데 목요일 쯤 되니까 배는 안 아픈데 현기증이 사라지질 않아서 좀 무서웠다. 근데 화요일 수요일 낮잠을 네 시간씩 두 시간씩 막 자면서 쉬다 보니 지금은 완전히 나은 것 같다. 비교적 빨리 완쾌했는데도 이번 주가 망가진 것 같은 건 요리를 거의 해먹지 않아서 지난 주에 사다놓은 채소들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고, 학교도 거의 오후 두세 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출근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예 출근도 하지 않고 푹 쉬었으니 내일은 학교에 일찍 가야지.


  어제는 교수님하고 면담을 했다. 우리 교수님은 예전에도 무척 친절하시고 관대하신 편이긴 했지만 내가 멘탈이 약해진 티가 나서 그런가 유독 더 친절하신 것 같았다. 일단 자신감을 가지고 모든 걸 너무 앞서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어제 분명 뭔가 혼날 수도 있던 부분이 있던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그냥 달래주시기만 한 것 같아서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교수님이 내가 해온 것을 보시고는 방향을 다시 잡아주셨는데 아직까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안 잡힌다. 정말 갈 길이 멀다. 열심히 고민해서 답을 찾아봐야겠다.


  학교 안에서 먹는 밥에 싫증이 나서 외식을 잘 안 하고 있다. 학교 안에서 먹을 수 있는 맛이 없지 않은 음식은 조각피자/햄버거/멕시코 음식 정도인데 이것도 처음 몇 번 먹었을 때에나 감동적이었지, 원래 그렇게 좋아하지 않던 음식들이라서 그런가 오늘은 집 밖에서 음식을 먹고 싶은데 그게 굳이 피자나 햄버거인가? 하고 생각하면 별로 땡기지 않는다. 그래서 학교 밖에서 먹을 것들을 고민 중이다. 판다익스프레스는 좋아하지만 플레이트는 양이 너무 많아서, 볼은 메인메뉴를 하나밖에 못 먹어서 좀 아쉽다. 그러다 지지난주에는 처음으로 베트남 음식점에 가봤고 지난 주에는 (드디어) 프로즌 요거트를 먹었다. 베트남 음식은 잘 몰라서 그나마 익숙한 쌀국수를 먹었는데 (그 중 내가 먹었던 round eye steak and tripe가 뭔지 이제야 찾아봤는데 홍두깨살과 소 양이라고?) 굉장히 맛있었다. 고수, 숙주나물, 라임, 고추, 무슨 이파리 같은 걸 따로 내와서 아무것도 넣지 않은 국물부터 먹었을 땐 그것대로 진하고 맛있었는데 고수 외에 다른 채소들을 다 넣고 먹는 것도 거의 다 먹을 때쯤 돼서는 자극적인 재료들이 국물에 배어서 그런가 입이 약간 아리긴 했지만 좋았다. 심지어 가격도 세금까지 해서 7.22달러밖에 안 했다! 프로즌 요거트는 요거트 자체가 워낙 맛있는 데다 내 마음대로 넣어서 먹을 수 있는 과일들 중 딸기가 미국에서 먹은 딸기들 중 거의 처음으로 달아서 정말 좋았다. 아무튼 최근에 밖에서 먹은 음식들이 이렇게 만족스러워서 오늘도 장 보고 와서 쌀국수를 먹으러 갈까 프로즌 요거트를 먹을까 고민했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안 먹었네.



<지난 주 토요일에 먹은 프로즌 요거트>


  몇 주 째 꽤 시원해서 좋았는데 며칠 전부터 좀 덥다. 드디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 기회가 왔다. 이번 여름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딱 두 번인가 먹었는데 연구실이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이주 전에 옮긴 새 연구실은 냉방이 잘 안 돼서 약간 더울 때도 있지만 그 동안 날씨가 워낙 서늘하다 보니...내일은 아침에 시원할 때 학교 가서 사마셔야겠다.

'대학원 > 박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0825 토요일  (0) 2018.08.26
화요일  (0) 2018.08.22
7월  (0) 2018.07.04
20180508 단수  (0) 2018.05.08
학기말  (0) 2018.05.04

  밝은 내용으로 일기를 쓰고 싶은데 특별히 기분 좋은 일이 없다.


  요즘은 매일매일이 똑같다. 뜨거운 아침햇살 때문에 강제기상을 하던 것도 2주 전까지고 요즘은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서 매일 학교에 갈까말까 고민을 하고 막상 연구실에 가면 아무도 없어서 혼자 심심해 하면서 오래 집중 못 하고 딴짓을 하다가 겨우겨우 정신줄을 부여잡고 밤이면 생난리를 쳐대는 벌레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학교에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학교에 가는 건 순전히 날씨 때문이다. 11시부터 6시 반까지는 무더위와 엄청난 햇볕 때문에 바깥에 나가는 것이 곤란할 정도인데 그렇다고 학교에 가지 않으면 집에서 푹푹 찌는 더위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에어컨 쐴 것을 기대하면서 가는 것이다. 그렇게 연구실에 가서는 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실망한다. 방학 중반이 되도록 대화를 할 기회가 거의 없다보니 너무 심심하다. 지지난주 금요일에는 동기가 물어볼 게 있다고 찾아와 줘서 엄청 좋았다. 지난 주에는 나는 연구 관련해서 물어볼 게 없는데 그냥 심심해서 왔다고 하면 싫어할까봐 하루종일 고민하다 집에 가고 있는 동기를 보고 진작 놀러갈걸 후회했다. 아무튼 꾸역꾸역 연구실에 앉아있다가 6시 50분에서 7시 30분 사이에 집으로 와서 밥을 먹고 산책을 하거나 그냥 뒹굴거리다가 9시부터 운동을 한다. 스쿼트 어플이랑 30일 운동 어플로 운동을 하는데 스쿼트는 예전에도 꾸준히 해서 큰 부담이 없지만 30일 운동 어플은 갈수록 루틴이 길고 난이도가 높아져서 좀 버겁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다가 씻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는 등의 집안일을 하다가 컴퓨터 앞에 앉는데 공부를 할 때도 있고 그냥 이것저것 구경을 하기도 한다. 곤충들이 붕붕거리기 시작하는 것은 이 시간쯤인데 말 그대로 매일매일 출몰한다. 주로 풍뎅이나 개똥벌레가 들어와서 날아다니고, 오늘은 30분쯤 전에 풍뎅이 한 마리가 부엌 전등 속으로 들어가려고 발버둥치다가 포기하고 렌지 후드 위에 가만히 붙어있다. 어제 새벽 3시 좀 넘어서 잤다가 풍뎅이가 생난리치는 소리 때문에 6시 45분에 일어났었는데 그 놈이 저 놈인가 의심스럽다.


  뭔가 글이 길어졌는데 요약하면 매일매일이 똑같은 상태에서 큰 성과는 없고 사소하지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7월 중순이 되기 전에 빨리 이 상태를 벗어나야 할 텐데.

'대학원 > 박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요일  (0) 2018.08.22
이번 주  (0) 2018.08.05
20180508 단수  (0) 2018.05.08
학기말  (0) 2018.05.04
20180420 연어덮밥  (0) 2018.04.21

  며칠 전부터 임시 숙소인 쉐어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8베드룸이라서 엄청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다섯 명 밖에 안 되고, 서로 생활패턴이 달라서 욕실을 공유하는 사람과도(2인 1욕실) 부딪힐 일이 전혀 없고, 결정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나 같은 성격들인지 약간 서로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뭐 나도 짐만 잔뜩 쌓아둔 내 방에 정이 안 가서 밖으로만 돌고 있지만 뭐...


  일요일에는 영어수업에서 사귄 친구랑 영화를 보러 갔다.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또 불러와서 셋이서 봤는데, 보고 올 때는 원래 만나기로 한 친구만 집으로 가는 방향이 달라서 완전 처음 보는 친구랑 꽤 오래 같이 걸어왔는데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생전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보지 않은 정치 이야기를 한 데다 고질적인 낯가림 때문에 너무 버벅거렸다. 난 뉴스도 잘 못 챙겨봐서 김정은이 한국에 도착했다 이전과 이후의 상황도 아직까지 파악을 못 했는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어째서 나보다도 잘 아는지 모르겠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거라는 것도 이 친구에게서 처음 들었다. 영어도 못 하고 정치상황도 잘 모르고 얼마나 멍청하게 보였을까.


  어제는 교수님을 만나러 가려고 면담자료를 준비하다 이 방향이 괜찮은가 싶어서 동기한테 도움을 청했다. 동기에게서 적지 않은 피드백을 받아서 고치긴 했지만 여전히 이거 괜찮은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저께 교수님 과목 기말시험 성적이 나왔는데 꽤나 엉망으로 나왔기에 뭔가라도 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애가 탄다. 본래 내 계획은 면담자료를 준비한다->면담을 요청한다->여름학기 등록 서류에 사인을 해달라고 한다->즐겁게 연구실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는데 기말 성적을 받고 보니 면담에서 사죄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맙소사. 별개로 동기랑 얘기하는 건 즐거웠다. 일요일에 성적을 보고 온통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가(이러다 교수님이 프로그램에서 나가라고 하시는 거 아닐까?) 친구랑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나와서 아주 약간 나아졌다가 동기랑 얘기하고 나서 부정적인 기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난 내가 엄청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하고 만나서 얘기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제야 이 일기의 제목이 단수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어제 숙소를 관리하는 오피스에서 이메일이 왔는데, 시 차원에서 상수도 검사? 비슷한 걸 해서 아침 8시 반부터 12시까지 단수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숙소에 아직 정을 못 붙인 것과는 달리 잠은 아주 푹 잘 자고 있어서 매일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잠들어서 중간에 3, 4시쯤 한 번 깼다가(보통 밖에서 누가 화장실에 가는 소리가 들려서) 7시에 알람 소리를 듣고 알람을 끄고 다시 9시, 10시에 일어나고 있는데 단수가 되면 세수를 못 해서 학교도 못 오고 참 큰일이겠다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알람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도시락 싸고 설거지까지 하고 8시 23분에 나왔다. 이렇게 단수되는 날이면 욕실이며 부엌이며 온통 붐빌 거라고 예상했는데 놀랍게도 내가 나갈 때까지 아무도 일어난 기척이 없었다. 심지어 도시락이며, 물컵을 안 들고 나와서 도중에 돌아갔는데도...다들 세수도 안 하고 12시까지 집에서 버틸 생각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 덕에 난 편하게 물 잘 쓰고 왔으니 뭐.


  빨리 이사가고 싶다. 이전 집은 벌써 옛날 집이 되어버린 것 같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청소하러 갈 때마다 텅 빈 것을 보고 울컥했는데 이젠 딱히 슬픈 느낌도 들지 않고 빨리 새 집에 들어가서 짐도 풀고 살림살이도 새로 사고 정착하고 싶다.


덧붙임: 일찍 일어난 덕분에 어버이날이 지나기 전에 부모님께 전화도 드릴 수 있었다. 두 분이 두 딸을 키우느라 바빴을 나이에 나는 혼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심지어 별것도 아닌 일에 우울할 여유도 있으니 감사하고 죄송해야 한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진심으로 말씀드렸다.

'대학원 > 박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번 주  (0) 2018.08.05
7월  (0) 2018.07.04
학기말  (0) 2018.05.04
20180420 연어덮밥  (0) 2018.04.21
20180320 An old mystery  (0) 2018.03.2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