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 신문을 읽고 내가 얼마나 어리고(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님) 무능력한 사람인지 알았다.


 요즘 연구실 선배님들하고 지내면서도 어렴풋이 느끼긴 했던 건데, 내가 그 분들한테 도움도 많이 받고 의지도 많이 하지만 한 번도 그 분들의 깊은 부분까지 궁금해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수업을 듣고 오신 선배님 한 분이 기분이 좀 안 좋아보이셨는데,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여쭤보는 대신 교수님이 시키신 심부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여쭤봤고, 결국 왜 기분이 안 좋으신지 듣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연구실 선배님들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랬다. 학교 다니는 건 어떤지, 무슨 전공 듣는지는 잘 물어보면서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그 흉터는 어쩌다 생긴 건지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선을 넘어가는 질문을 하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기대하고, 내 속내를 들려주는 게 무서워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몇 개월째 블로그에서 화 내고 짜증내는 대상이었던 사람도 마찬가지다. 알고 지낸 건 몇 년 되었지만 실제로 보고 인간적인 관계로 지낸 건 몇 개월 안 되었는데 그 동안 난 그 사람한테 그런 종류의 질문을 해보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의 특별한 점은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한 것들과 그 사람이 말하면서 흘린 것들을 내가 임의로 가공해서 얻은 정보를 통해 얻은 것이지, 직접 물어봐서 알게 된 것들이 아니었다. 결국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은 내 머릿속에서 만든 존재일 뿐 진짜 그 사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내 멋대로 생각해놓고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격분했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또 하나 느낀 것은, 그 사람의 정보를 알고 있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건 내가 그 사람에게 그런 사소한 것들을 질문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개인적인 것을 물어본다는 건 그 만큼 그 사람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표현하는 건데 난 그것조차 무서워서 혼자 지레짐작만 할 뿐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교수님께는 다음 시간에 휴강할 거냐고 돌직구로 잘만 여쭤보면서 나이도 얼마 차이 안 나는 사람에게는 왜 못 그랬는지 모르겠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현자타임을 통해 느낀 점을, 평소에 내가 온갖 하소연을 다 하는 선배님께 말씀드리니까 그 선배님은 내가 그 기사에 휘둘릴 이유는 없지만 내가 레벨업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 좋은 인간이 될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잃어야 할지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그건 그렇고 방금 전에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는 친구한테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물어봤다. 이 친구를 알고 지낸 것이 햇수로 4년째이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친구도 뜬금없는 질문에 어이없었는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 가득한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 친구가 나랑 같은 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기쁘기도 하고, 연락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다 오랜만에 연락을 한 것 자체로 좋기도 하다. 앞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궁금하고 더 많이 질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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