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카테고리에 써야 하는 글이지만 그러다보면 글도 너무 길어지고 생각도 많아질 것 같아서 그냥 여기에 별점 달지 않고 쓰기로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었다. 예전에 일기에 썼던 것처럼 하루키의 소설은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조금 낯설긴 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끝까지 다 읽고 느낀 점을 두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스포 포함).



1. 결국 어떤 떡밥도 회수되지 않았구나....


2. 작가의 어투를 따르는 것과 자연스런 우리말 어순으로 해석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걸까(여기에 대한 확답은 얻지 못했다).



 소설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마음이 조급했다. 분량은 이것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초반에 투척된 떡밥들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아서 도대체 결말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싶었다. 이런 말 자체가 엄청난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결국엔 어떤 떡밥도 회수되지 않았다. 시로가 거짓말을 한 이유도, 하이다가 학교를 떠난 이유도, 하이다의 아버지가 만난 피아니스트에 관한 것도, 시로의 죽음에 관한 것도 어느 것 하나 마무리된 것이 없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도대체 이게 뭐야?????' 싶은 마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결말에 관해서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는 하루키 자신도 정리하기가 벅찰 만큼 떡밥의 크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을 거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결말에 가서 모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인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결말에 가서 주인공이 그토록 얻고자 했던 진실이 낱낱이 밝혀진다. 그렇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밝혀지지 않고 찜찜한 상태로 묻히고 마는 일들이 훨씬 더 많다. 과거의 일들이 쓰쿠루의 인생을 지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온전한 형태로 쓰쿠루의 인생에 영향을 줬다기보다는 쓰쿠루가 받아들인 그 만큼의 형태만 존재하기 때문에 16년이나 흐른 지금에 와서 진상이 밝혀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을 거다. 거기다 만약 피아니스트에 관한 떡밥이 회수되었다면, 이 책은 조용하고 차분한 소설이 아닌 '해변의 카프카'를 닮은 괴작이 되었을 것 같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작가 하루키를 어떻게든 이해해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상이야 밝혀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지만, 소설에서는 적어도 의혹투성이인 부분은 풀고 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두 번째로 느낀 점은 소설 종반부에서 에리와 쓰쿠루의 대화를 보면서 느낀 것인데, 이 부분에서는 어순 도치가 굉장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원래 그렇게 쓰는 건줄 알 거다. 중학교 때였나,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 '아일랜드'의 대사들이 이런 식의 도치가 많아서 낯선 느낌을 준다는 말을 국어 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것을 보면 당연히 우리말에서도 가능한 표현이겠지만 이게 너무 자주 나타나니까 조금 짜증이 났다. 원문을 읽어보지 않아서 이게 하루키 특유의 문체를 따라서 이렇게 된 것인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만약 외국 작가의 문체가 일반적인 우리말 문법이나 어순에 맞지 않을 때 그것을 수정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건 좀 더 많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이제 내일 발표 준비해야 하니까 여기서 끝!

'일상 > 주저리주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1029 야구  (0) 2013.10.29
20131024  (0) 2013.10.25
20131010 일 주일  (0) 2013.10.11
20131007 아는 사람  (0) 2013.10.08
20131004 노예  (0) 2013.10.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