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하고 시간이 너무 안 간다. 아직도 화요일 오후라니...빨리 주말이 됐으면 좋겠다.

 좀 전에 박사과정 사무실에서 영어시험 떨어졌다는 전화를 받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근데 완전 망해서 시험을 다시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ESL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라서 엄청 기뻤다. 재작년에 그래서 다시 봐야 했던 거고, 두 번 이 점수를 받아서 박사과정을 나간 사람도 있다는 말도 들어서 계속 학교를 나가야 하는 사태를 걱정했었다. 5월에 이사를 못 할지도 모르는데 괜히 1년 계약을 한 건 아닐까, 지금 고이율 적금통장을 만들어도 몇 번 못 넣어보고 해지해야 하는 건 아닐까, 아침에 학부생 메일에 답해주면서 내가 얘 얼굴을 실제로 못 보고 학교를 나갈 수도 있다고 상상하기도 했었는데...(생각해 보니 별 걱정을 다 했군) 이제 부모님께 영어시험 봤다는 것도 말씀드릴 수 있다! 물론 합격했다면 그 시간에 실해석학 재수강을 할 수 있어서 좋았겠지만(아직도 교수님께 실해석학을 다시 들어야 한다는 말씀을 못 드렸다. 영어시험도 떨어지고 실해석학 재수강도 해야 한다고 하면 정말로 내보내실 것 같아서) 영어 수업을 듣는 것도 나한테는 엄청 유익할 것 같다. 이번에 영어시험 준비하면서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봤는데 영어로 말하는 억양이 굉장히 이상하게 들렸다. 영어 수업 들으면서 억양이랑 발음이 좀 교정됐으면 좋겠다.

 월요일에는 영어시험이 아침인줄 알고 늦잠 자고 못 갈까봐 불안해서 두 시간 밖에 못 자고 일어났는데 오늘은 또 9시에 1교시 수업이 있어서 수업 못 들어갈까봐 불안해서 세 시간 밖에 못 자서 좀 힘들다. 다행히 수업시간엔 안 졸았는데 오전에 coursera python 강의 듣다가 잠깐 잤다. 지도교수님이 진행하시는 수업에서 python 코딩 숙제가 나올 수 있다고 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파이썬을 미리 공부해보자고 등록해서 지난 주부터 듣고 있는 건데, 명령어를 제외하면 내가 원래 다뤘던 c++이나 매트랩과 크게 다른 것이 없어서 이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 하나 조금 고민이 된다. 처음엔 돈을 내고 업그레이드해서 certificate을 받을까 고민했었는데 이런 기초과정의 certificate을 cv에 쓴다고 유리할 리가 없을 것 같다. 나중에 중급 과정을 듣게 되면 그 때 딱 한 달만에 끝내기로 하고 등록해야겠다. 한 달에 59달러를 내야 해서 부담이 좀 된다.

 아무튼 무거운 짐 하나를 덜어서 기쁘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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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이번 학기 학점은 망했지만 이미 정해져 있던 여행은 간다. 인디폴 공항으로 가는 셔틀이 학교 호텔 앞에서 3시 반에 출발해서 도저히 그 시간에 집에서 걸어올 자신이 없어서 1시간 전에 연구실에 다시 왔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쓰면서 온갖 딴짓을 했더니 제목을 쓸 때만 해도 4시간 47분이 남았었는데 이제 4시간 38분이 남았다.


  한 학기 내내 골치를 썩혔던 해석학에서 충격적인 성적을 받고 교수님을 뵈러 갔다가 성적은 올리지 못 했지만 재수강이라는 대안을 듣고(그 말을 듣고 교수님이 잘못 아신 줄 알았는데 학과사무실에 확인해 보니 정말 가능하다!) 다음 학기에 다시 듣기로 했다...대학원에서 재수강이라니ㅠㅠ아무튼 그래서 내년 봄 학기에는 full semester 과목 3개랑 두 번째 모듈 수업 하나를 들어서 이번 학기 못지 않게 힘든 여정이 예상되는데...뭘 들어도 재무보다는 나을 거라고, 그리고 이제 도저히 벗어나지 못 할 것 같던 그 우울한 시기를 완전히 벗어났으니 이번 학기보다는 나을 거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그나저나 수강과목을 추가하려면 교수님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성적이 그 모양이 되었으며, 재수강을 해야 하는지 납득시켜드려야 하나 모르겠다. 휴 박사를 시작할 때에만 해도 내가 서른 살을 앞두고 교수님께 성적 올려달라고 사정을 하고 재수강을 계획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동기는 지난 주 월요일에 인도로 갔는데 나는 이번 주 월요일까지 프로젝트를 제출해야 해서 죽을 맛이었다. 원래 계획은 지난 주 월화에 시험이 있으니 남은 수목금토일의 시간을 잘 보내서 프로젝트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었는데...화요일 네 시 반에 시험이 끝나자마자 그만 탈진해 버려서 수요일과 금요일은 하루 종일 집에서 자기만 해서 정작 프로젝트에 시간을 쏟은 것은 며칠 되지 않는다. 내 프로젝트 주제는 구할 수 있는 통계 데이터를 이용해서 mixed-strategy game을 만들어서 Nash equilibrium과 실제 데이터를 비교하는 것이었는데, 당장 어떤 데이터 칼럼을 이용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에만 며칠이 걸려서 매트랩 코드를 짜서 최적화 문제를 풀고, 보고서를 쓰고,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를 만드는 데에는 48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 때문에 목, 토요일은 네 시간도 못 자고 일요일은 완전히 밤을 새 버렸는데 월요일에 있었던 프리젠테이션에서 한 사람당 발표 시간이 30분에서 한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ㅠ아침 10시 반에 시작해서 오후 다섯 시에 끝났다. 다행히 이 과목은 성적이 좋다. 그렇게 수면패턴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는데 오늘은 또 집에서 나오기 전에 모든 집안일을 끝내버려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어제 새벽 다섯 시에 자놓고도 아침 아홉 시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깨어 있다. 아무래도 셔틀이랑 비행기 안에서는 거의 혼수상태로 시간을 보내게 될 듯하다. 시간날 때마다 읽으려고 책도 몇 권 챙기고 아이패드까지 가져왔는데...


  작년도 물론 혼자 지냈고 지금껏 연말은 연구실 송년회에 참석하거나 드물게 친구를 만나고 남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급하게 독서 목록을 채우기 위해 책을 몰아서 읽거나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보는 등 정적으로 보냈는데 올해는 멀고 먼 캘리포니아까지 가서 정신없이 바쁘게 보낸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간다!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오다니. 최대한 즐겁게 지내다 와야겠다.


  이제 4시간 16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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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바빴다.


 원래 월요일부터 바빴어야 했는데 다섯 시간 반 동안 수업을 듣고 탈진해서 12시도 되기 전에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퇴근하고 집에서 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빨래도 안 돌렸었다. 화요일이 되어서 출근해서 생각해 보니 1) 일요일이 학부생들 숙제 제출기한이라 화요일 오피스 아워에 분명 애들이 많이 올 거고 2) 수요일과 목요일에 재무관리 숙제를 해 가야 하고 3) 목요일에 조교 수업이 있고 4) 금요일에 실해석학 숙제를 내야 하고 5) 다음주 월요일에 멀티에이전트 숙제를 해야 하고 6) 최대한 빨리 멀티에이전트 프로젝트의 포뮬레이션을 완성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화요일에는 수업이 없고 2시 반에 지도교수님 면담이 있고 오피스아워는 3시부터 시작해서 오전에 문제를 부지런히 풀어놓고 면담 갔다가 애들을 맞았고, 5시 반에 오피스아워가 끝나서 뭔지 기억도 안 나는 일을 끄적대다 별달리 한 일도 없이 퇴근했다. 수요일에는 재무관리 수업 들어가기 전까지 리딩 자료를 읽다 들어갔고, 목요일에는 동기가 도와달라고 한 일이 있었는데 재무관리 숙제를 하느라 늦게야 만났고, 6시부터 7시까지 조교수업을 하고 8시 반까지 질문을 하러 온 학부생 친구들과 문제를 풀다가 거의 9시가 다 되어서 초밥 한 상자 사서 퇴근했다. 수요일인가에 고등어무조림을 만들었지만 집에 밥이 없어서ㅠㅠ그리고 너무 피곤해서ㅠㅠ점심에 피자를 사먹어 놓고 또 외식을 한 거다.


  어쨌든 그렇게 다섯 시 반인가까지 밤을 새서 실해석학 숙제를 하다가 두 문제 남겨놓고(이 정도면 학교 가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깐 누워있는다는 게 정말로 잠들어버려서 오늘은 세 시간 자고 일어나서 학교에 와서 박사 공용주방에서 빵 세 개랑 커피를 얻어와서 숙제를 하면서 먹었다. 다행히도 숙제는 일찍 끝냈는데 막상 수업 시작 20분 전에 숙제를 살펴보니 안 풀고 넘긴 문제가 있어서 엄청 부지런히 풀어서 (조금 지각했지만)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 끝나고 겨울방학 중 기숙사에 남아있겠다는 보고를 하러 학생 레지던스 센터에 가는데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했다. 알고 보니 재무관리 수업에서 비스듬한 대각선 방향에 앉아있던 사람인데 한번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어서 못 알아본 거였다.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교사 출신의 MBA 학생이라는 정보를 얻고 도중에 헤어져서 가던 길을 갔다. 학생 레지던스 센터는 학부생 기숙사가 밀집되어 있는 구역에 위치해 있는데, 그 덕에 점심 먹으러 레지던스 홀로 돌아가는 학부생들 무리에 껴서 모처럼 대학생 된 것 같이 기분이 좋았다. 서류를 내고는 센터에서 750미터 거리에 있는 국제학생 센터에 가서 재발급 신청을 해놨던 i-20을 받으러 갔다. 작년 4월에 받은 i-20은 너무 구겨져서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였지만 그래도 용케 안 잃어버리고 있었는데 결국 잃어버렸다. 아무튼 빠르게 i-20을 받고는 학생 보건소에 가서 독감 예방접종을 맞았다. 접종까지 맞고 연구실로 오니 오후 1시까지 7,438보를 걸었다. 미친; 퇴근하고 집에 들렀다 장을 보러 가는 금요일에는 보통 9천 보에서 만 보 정도를 걷는데 오늘은 거의 14,000보는 나올 것 같다.


  연구실로 와서는 학부생 질문메일에 답을 하고 좀 한가해졌는데 절대 지금 한가해지면 안 된다...월요일에도 숙제를 제출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프로젝트 진도가 너무 안 나갔다. 그래서 노느니 블로그라도 쓰자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이 글만 쓰고 정말로 공부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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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남의 집에 초대받은 적도 별로 없긴 했지만 소파가 있는 집에 놀러간 건 정말 오랜만이라서 우습게도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소파가 있다는 것이었다. 밥도 맛있게 먹고 거의 듣기만 하긴 했지만 대화도 즐거웠다. 한국에서는 거의 공대 사람들, 특히 우리 과 사람들과만 어울리다 보니 잘 못 느꼈던 것인데 미국에 와서는 경영대에서 경영대를 졸업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그 간극을 크게 인식하게 되어서 경영대 출신 한국인들보다 인도에서 공대를 졸업한 내 동기에게서 동질감을 느낄 때가 많아 한국인 모임은 잘 안 가고 싶었는데 어제는 즐거웠다. 나는 잘 모르는 이야기가 많아서 듣기만 하고 먹기만 했으면서도.


  사실 요즘은 인간관계에 좀 굶주려 있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아도 메시지가 와 있을 때가 드물고, 추수감사절 연휴를 앞두고 있다 보니 학부생들에게서 질문 메일이 오지도 않고, 드물게 있는 인간적인 접촉은 동기나 연구실 친구와의 대화, 그리고 주말마다 부모님과 통화하는 정도다. 지난 주에 동기한테 섭섭했던 것은 어느 정도 극복했다. 작년쯤 이런 일이 있었다면 별로 안 친했을 때니까 아예 서운함을 못 느꼈거나 초반부터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안 했겠지만 지금은 내가 이 친구를 알고 나 자신을 알다 보니 괜히 속 끓이면서 서운해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연구실 친구와는 같은 과가 아니라서 동기만큼 일부러 찾아가서 이야기할 만한 것은 별로 없지만 늘상 붙어있고 이 친구가 나와의 대화를 별로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아서 오히려 편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두 사람들에게 무한정 귀찮게 하고 관심을 부탁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보니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심심하다, 외롭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날이 많았는데 어제는 그 금요일 밤에 혼자 집에서 예능 보면서 밥을 먹고 있지도 않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지도 않고 여러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물론 어제 늦은 시간에 귀가해놓고 어깨랑 다리가 아파서 스트레칭이랑 마사지를 하긴 했지만.


  사실 지금 엄청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는 게 있다. 10월에 박사과정 사무실에 문의했을 때는 조교 영어시험을 다시 볼 필요가 없고 봄 학기에 영어수업을 들으면 된다고 했었는데, 어제 영어수업을 당장 등록할 수 없고 영어 시험을 먼저 봐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내년 1월 봄 학기 개강하는 날 시험을 보겠다고 하긴 했는데 걱정이 많다. 처음 시험을 봤던 것이 미국에 온지 2달 됐을 때였고 다음 시험은 2년 반 넘게 지낸 시점에서 보는 것이니 실력이 많이 향상되긴 했겠지만 내가 토플 스피킹에서 27점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었나? 하고 생각하면 여전히 의문이고(시험을 통과하는 수준이 토플 스피킹 27점에 해당된다고 한다), 저번 시험 때는 비록 부족하긴 했지만 그게 그 시점에서의 나의 최선이었는데 이번에는 그게 될지 걱정된다. 물론 노력은 할 거다. 어제 이메일을 받고 영어 시험에서 떨어져서 학교를 떠나는 상상, 다른 학교를 알아보는 상상 등 온갖 생각을 다 해봤는데 학점이 부족해서 나가는 거라면 모를까 영어가 부족해서 나가는 거라면 그 이상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무리일 테고, 무엇보다도 굉장히 억울할 것 같다. 어떻게든 여기 남아서 졸업까지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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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는 이상하게 편안하게 보내고 있어서 왜 그런가 생각해 봤는데,


1) 월요일에 참치김치찌개를 한 덕분에 매일 두 끼는 따뜻한 밥을 먹고 있다(라고 쓴 순간 밥이 다 떨어진 것이 기억나서 전기밥솥 내솥을 씻어놓고 왔다).


2) 멀티에이전트 숙제가 없다! 시험은 다음주였는데(헷갈린 거였음) 수강생들의 결의로 시험이 취소되고 그 대신 숙제가 한두 번 정도 더 부여될 거라고 한다.


3) 재무관리 숙제를 집에 밤을 새어가면서 하지 않고 연구실에서 조금 늦게 퇴근하는 대신 다 끝내고 오니까 밤 시간이 가뿐해졌다.


4) 금요일이 제출기한인 real analysis 숙제를 아직도 시작하지 않았고,


5) 생각해보니 또 금요일이 제출기한인 project proposal을 시작하지 않았다(급하게 Tex template을 다운받기는 했다).



  역시 할 일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한가한 거였다. 앞으로 남은 이틀은 망했군...생각해 보면 어제는 오피스 아워가 정해진 것보다 길어져서 거의 여섯 시까지 하고 엄청 피곤했는데 순전히 학교에서 저녁으로 김치찌개 도시락을 먹고 기분이 좋아져서 좋게 기억한 거였다. 앞으로 밥은 잘 챙겨먹고 다녀야지.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하루 종일 집에 난방을 켜놓고 다니는데도 밤이 되면 발이 시리다. 히트텍도 입고 수면양말도 신는데 몸이 따뜻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뜨거운 물로 설거지하거나 씻는 것 같다. 오늘은 아직 귀찮아서 안 씻었는데 너무 추워서 설거지를 하고 왔더니 훨씬 낫다. 여름부터 항상 의심스러웠던 건데 언젠가 용돈이 남는다면 거실에 온도계를 달아야겠다.



  동기와의 관계는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제일 친한 사이인 것 같으면서도 한 번씩 나 혼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단과대 박사과정 심포지움 단체메일이 왔는데 발표자 명단에 동기가 있었다. 평소에 그렇게 수업 얘기도 자주 하고, 프로젝트 얘기도 하고, 일상생활 얘기도 하는데 얘가 여기에 지원했다는 것은 듣지도 못 했다. 심지어 추수감사절 연휴 끝나고 수업시간에 발표한다는 것도 얘기했으면서 이건 왜? 전에도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느꼈던 거지만, 이 친구는 정작 중요한 건 나한테 얘기를 하지 않는 것 같다. 나한테는 생각날 때마다(지금은 화나서 그런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물어본 것 같다) 논문 수정이 어떻게 되어가냐고 물어보면서 왜 본인은 발표를 할 정도로 성과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까? 저번에는 무조건 이 친구 말에 따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나도 모든 것을 오픈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지우다 보면 대체 친구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 뭐가 남을지 모르겠다. 퇴근하고 집으로 걸어오면서도 내가 모든 인간관계를 너무 순진하고 아름답게만 생각했던 건가, 유학와서 경험하는 인간관계는 왜 이렇게 하나같이 어려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토요일에 집을 계약하러 가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인, 처음으로 보증금 걸고 집 계약하기라는 과업을 앞두고 있는데도 극심한 감정의 격랑을 겪고 있는 탓에 그다지 설레지가 않는다. 정신차려 이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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