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힘든 일주일이었다.


 월요일: Real analysis 숙제 제출/Financial management 숙제


 화요일: 조교수업


 수요일: 멀티에이전트 숙제 제출/Financial management 숙제


 목요일: Financial management 숙제


 금요일: Real analysis 숙제 제출


 진짜 이번 주는 내내 숙제만 하다 끝난 것 같다. 이 중 3일을 밤샜고, 수요일에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섯 시에 퇴근해서 두 시간 자고 일어나서 다음 일을 했다. 이렇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도저히 나지 않아서 동기나 오피스 친구와도 말 한 마디 나누지 못 했다. 그랬더니 실해석학 숙제를 내고 비로소 시간이 났는데도 말을 붙이러 가는 것이 얼마나 어색한지...동기네 연구실 앞까지 갔다가 괜히 쑥스러워서 그냥 돌아왔다.


  오늘은 실해석학 중간고사 점수가 나왔는데 정말 엉망진창이다. 30점이라니...그것도 블랙보드에 점수 올라온 것을 보니 125점 만점에 30점이다. 그나마 시험지만 받아왔을 때보다는 기분이 나아졌는데, 평균이 50점대 초반이고 median이 40점대 후반이라서다. 시험지를 받고 연구실로 오자마자 한 일이 이 과목 성적 scale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는 거였을 정도이니...중간고사가 35퍼센트이긴 한데 몇 점부터 몇 점까지는 A, 이런 식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서 두렵기도 하고 오히려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스케일을 확인하고 두 번째로 한 일이, 과 홈페이지 들어가서 평점 몇까지 전공 이수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였는데 다행히도! 한 분야 평점이 3.2 이상이면 된다고 한다. 같은 분야인 선대가 4.0이었으니 이 과목은 2.4까지 가능한 건가. 기분이 좀더 나아졌지만 정말로 이 과목에서 C를 받으면 평점이 엄청나게 떨어지니 일단은 B+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어쨌건 처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덜 나쁜 상황이긴 하지만 시험을 못 본 것은 변하지 않아서 기분은 여전히 안 좋다. 시험볼 때는 그 정도로 어렵다고 느끼지 못 했는데, 대체 뭐가 문제지? 일단은 교수님이 첨삭을 해주셨으니 다시 풀어봐야겠다. 아무튼 이제 지도교수님한테 수학 부전공하고 싶다는 소리는 절대 안 할 거다. Functional analysis 들을 생각도 하지 말고. 일단은 남은 숙제들 정말 열심히 풀어서 전부 만점 받기로 하고, 기말고사는 다 손댈 생각하지 말고 두 문제 이상 완벽하게 풀도록 해야겠다.


  석사 때는 안 그랬는데 유학을 온 이후에는 뭔가 기대한 만큼/노력한 만큼의 성취를 이루지 못 하는 경우가 생기면 이 학교는 대체 내 어떤 잠재력을 보고 뽑은 걸까 생각하는 자괴감->역시 나는ㅠㅠ->은혜갚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겠다ㅠㅠ 이런 식의 사고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좀 그렇다. 이전에 이런 과정을 거쳤던 것은 TA세션을 엉망으로 했을 때, 입학하고 첫 발표 때 수학식 전개를 너무 장황하게 하고 영어를 너무 버벅거려서 교수님이 도중에 중단시켰을 때 등이 있다. 아마도 졸업할 때까지 내가 뭔가를 잘못할 때마다 이럴 것 같은데, 이런 부족한 나를ㅠㅠ뽑아준 학교, 교수님들한테 감사해서라도 이제 그만 놀고(12시 30분에 연구실 돌아와서 점심 먹고 지금까지 놀고 있음) 빨리 일해야겠다.


  다음주는 아직 숙제와 중간고사가 확정되지 않은 과목이 있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단 잠정적인 일정은 여전히 빽빽하다. 어쩌면 아직 주제도 구체화시키지 못 한 project proposal 때문에 더 바쁠 수도 있다.


월요일: Financial management 숙제/퀴즈/(멀티에이전트 중간고사: 확정되지 않은 일정)


수요일: Financial management 숙제


목요일: Financial management 숙제/조교수업


금요일: Real analysis 숙제 제출/멀티에이전트 project proposal due


  멀티에이전트는 아직 한 번도 숙제 점수를 받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일단 financial management는 아주 잘 하고 있다. 그저께 교수님께 퀴즈 받으러 가서, "너가 수업시간에 전혀 말을 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퀴즈에서 perfect score를 받아서 놀랐다"는 말씀을 들었다. 사실 50점 만점에 46점이었는데...칭찬이기도 하고 힐난이기도 한 말씀이어서 어제부터 내가 조금만 알 것 같은 것이 나오면 무조건 손을 들고 있다. 이제 발표도 열심히 해야지.


  일단 오늘은 논문을 열심히 읽고/Real analysis 복습을 하고/논문 수정을 열심히 하고 집에 가는 게 목표다. 내일이랑 모레는 학교에서 football이랑 농구 경기가 있어서 주말 내내 집에만 박혀있게 될 것을 각오하고 최대한 오늘 많이 끝내야겠다.

'대학원 > 박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1118  (0) 2017.11.19
이번 주  (0) 2017.11.09
20171028 토요일  (0) 2017.10.29
20171018 가을방학 끝나고  (0) 2017.10.19
20171010 가을방학 마지막날  (0) 2017.10.11

  오늘도 학교에 갔다. 블로그에 너무 심심하고 외롭다고 쓰면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바빠지고, 너무 바쁘다고 쓰면 갑자기 심심해지는데 이번 주는 지난 주에 바쁘다고 썼는데도 여전히 바빴다. 월요일 real analysis 숙제 제출(벌써 여섯 번째 숙제), 월수목 financial management 숙제를 했고 다음주에는 월요일 real analysis 7번째 숙제, 화요일 조교수업, 수요일 멀티에이전트 숙제, 금요일 real analysis 8번째 숙제 제출, 월수목 financial management case 한 개랑 problem set 두 개 풀어가기 등의 숙제가 있고 토요일에는 드디어 집을 보러 간다. 다음주 월요일에 내는 real analysis 7번째 숙제는 어제(금요일) 시작했는데 하필 앞의 두 문제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솔루션에 없는 내용이라 두 문제 푸는 데 네 시간이 걸렸다...아니 이 무슨...그래도 오늘 세 시간 동안 여섯 문제 풀고 이제 두 문제 남았다! 금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숙제는 목요일까지 해야 하는 일이 넘나 많기 때문에 당장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재무관리는 일주일에 세 번 수업이 있는데 수업 전까지 숙제를 다 풀어가서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시면 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업 전날은 항상 밤을 샌다. 꼭 석사 때 네트워크 수업 들을 때 같다. 그나마 그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밖에 수업이 없어서 일 주일에 두 번 정도만 밤을 새면 됐었는데 이건 뭐.



  이번 주는 물론 당연히 바빴지만 연구에 대한 내 개념을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순간도 있었다. 이것 또한 real analysis 때문에 하게 된 생각이다. 보통 때 나는 숙제를 할 때 문제를 슬쩍 보고 '음 이건 역시 내가 풀 수 없는 문제야' 하고 바로 솔루션을 찾아보고는 의외로 어렵진 않다는 것을 깨닫거나 역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컨텍스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식으로 이삼일에 걸쳐 숙제를 한다. 물론 시험이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급하게 숙제를 할 때는 제출 전날 밤을 새면서 이해도 안 되는 글자를 적기도 하지만 말이다.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관심있는 문제가 생기면 포뮬레이션을 해보거나 이미 알려진 식을 써놓고 들여다보는 대신, 어마어마한 양의 레퍼런스를 찾아놓고 그 중 일부를 읽으면서 내가 무슨 variation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다. 내가 대가였다면 이런 식의 접근을 통해 이 연구자가 뭐가 미흡했고, 이런 식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발전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아직 연구자로서 걸음마 단계인 상태에서는 선배 연구자가 제안한 방향으로만 사고가 제한되고 만다. 그래서 이번 멀티에이전트 프로젝트는 포뮬레이션을 먼저 해놓고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ㅎ 어제부터 real analysis 숙제만 하고 있다. 그래도 너무 고민이 돼서 동기한테 상담을 요청했던 며칠 전보다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은 한국인 친구랑 같이 밥 먹고 장을 보고 오면서 가깝게 지내는 외국인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나나 그 친구들이나 이국 땅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관계를 돈독히 하려고 더 노력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내가 그 친구들을 왜 좋아하고, 어떤 면 덕분에 친하게 지내게 됐는지를 생각하면 국적 같은 건 확실히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요즘들어 더 자주 든다. 같은 한국인이라도 '저 새끼는 제 정신인가' 싶은 사람도 있는데, 말이 막힐 때가 있더라도(감정을 털어놓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굳이 시간을 내서 같이 사소한 일상을 이야기하고 기쁜 마음으로 의논하고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을 얻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인 것 같다. 그토록 우울우울의 늪에 빠져있던 내가 지금 심지어 행복하다고 느끼게까지 된 건 다 그 사람들 덕분이다.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지는 것도 주변 사람들의 영향이 커서 불과 며칠 사이에 기분이 큰 폭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10월 28일 현재는 그렇다.



  앞에서 쓴 대로 다음 주말에는 첫 번째 집을 보러 간다. 벌써 대여섯 군데의 렌탈 업체에 메일을 보내서 한 곳은 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하고, 두 군데는 휴업일이라 아직 연락을 못 받았고, 한 군데는 월요일에 약속을 잡기로 했고, 한 군데는 여전히 고민 중이고, 한 군데는 다음주 토요일에 가는 곳이다. 이 중 마지막 아파트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마음이 기운 곳이다. 처음 off-campus housing을 구하기로 마음먹고 정한 조건은 1) 5월에 입주 가능해야 하고(기숙사 퇴사기한이 6월 1일까지이므로) 2) 연구실에서 걸어다닐 수 있어야 하고 3) 유틸리티를 제외하고 월세가 700달러를 넘지 않아야 하고 4) 모든 가구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였는데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연구실에서 10분 내외로 걸어다닐 수 있는 곳은 많은데 5월에 입주 가능한 곳은 드물고 더구나 이 가격대에 가구가 갖춰진 곳은 거의 없다. 이 네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곳이 바로 마지막 아파트인데 렌트에 가스&전기(렌탈 매니저 말로는 한 달에 합쳐서 보통 55-95달러 정도라고 한다), 인터넷 비용까지 다 더하면 800불 안팎이라 더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머리를 굴리고 있다. 조건이 맞지 않은 곳은 알아본 곳들 중 가장 평이 좋고 가격이 싼데, 8월에는 빈 원베드가 없어서 5월에 입주하려면 3베드룸 하우스에 3인분의 렌트를 납부하면서 임시로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제꼈다. 월요일에 약속을 잡기로 한 곳은 가구가 아예 없고(대신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고 함) 월세는 720달러인데 방이 아주 넓고(641sqft) 싱크대가 아주 널찍하다. 고민 중인 곳도 8월 입주 가능에 가구가 없지만 레딧에서 (학교 이름) apartments를 검색했을 때 평이 꽤 좋은 편이었고, 처음 연락했을 때 만약 내가 관심이 있다면 지금 사는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5월에 서브렛을 시작하고 필요하다면 그 사람한테 가구를 팔라고 권유를 하겠다는 등 무척 협조적이어서 계속 미련이 남았었는데, 얼마 전에 자기네 웹사이트에 올린 곳들이 꽤 좋아 보여서 다시 연락을 할까 고민 중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처음에 가구가 다 갖춰진 곳에 가야겠다는 다짐은 이후에 책상과 의자는 내가 사서 조립해도 되지 않을까? 였다가 지금은 안 되면 침대 프레임은 포기하더라도 매트리스는 사자...라는 것까지 누그러졌다. 사실 조립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사를 간 시점에서 3년 후 졸업인데 그 많은 가구들을 높은 확률로 다른 주에 있을 새로운 집까지 들고 가거나 여기서 전부 중고로 팔아서 처리를 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부피가 큰 가구는 되도록 사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정말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미래의 괴로움을 감안하고 가구를 장만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침대/나이트스탠드/옷장/엔드테이블/커피테이블/카우치를 제공한다는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대학원 > 박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번 주  (0) 2017.11.09
폭풍같은 일주일  (0) 2017.11.04
20171018 가을방학 끝나고  (0) 2017.10.19
20171010 가을방학 마지막날  (0) 2017.10.11
브라우니  (0) 2017.10.06

  진심 너무 바쁘다.


  가을방학 직전까지만 해도 난 왜 이렇게 심심하고 우울할까 하는 생각을 계속 했었는데 이건 뭐, 너무 바쁘고 거기에 맞춰서 몸도 부지런해져서 우울할 틈이 없다. 금요일에 real analysis 숙제를 제출했고 어제인 화요일엔 오피스아워랑 조교수업이 있었고 오늘은 real analysis review session에 갔다가 중간에 나와서 시험감독을 하러 갔으며, 오는 금요일에는 (또) real analysis 중간고사를 본다. financial management 수업도 오늘 시작해서 토요일, 일요일에 케이스를 읽고 월요일과 화요일에 교과서 읽기 숙제와 케이스 숙제를 해서 겨우 오늘을 해결했는데 내일 수업이 또 있어서 지금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주말에 부모님이랑 통화한 것 외에는 계속 영어로만 말하고 있어서 피곤하다. 진짜 말만 해도 피곤하다.


  mba 수업을 제외하면 우리 과 수업은 경영대 안에서 많이 열리지 않다 보니 수강신청을 전략적으로 잘 하기만 하면 어떻게 편하게 한 학기를 보낼 수도 있을 텐데 이번 학기는 완전 실패한 것 같다. 물론 절대적인 비중은 real analysis가 가장 크다. 이 지경인데도 정신 못 차리고 봄 학기에 functional analysis를 들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으니...교수님이 듣지 말라고 하셨으면 좋겠다. 수업만 듣고 있을 게 아니라 연구를 좀 더 바쁘게 해야 되는 건데!


  미국에서 만난 한국인이 아닌 친구들 중 실수로라도 한국말로 말을 걸었던 친구는 지난 봄 학기 mba 수업에서 만난 인도인 친구가 유일한데(지금은 연락도 안 함), 가끔 내 동기에 대해서도 한국말로 생각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 딱 세 번 '너 이 자식!' 하고 생각했는데, 작년 가을학기에 이유는 모르겠으나 뭔가 나한테 삐졌거나 서운한 일이 있는 것 같아보여서 '이 자식이 왜 이러지' 하고 생각했던 게 처음이었고, 이번 학기에는 벌써 두 번이나 그 생각을 했다. 이번 주 월요일에 자기가 공부 루틴을 바꿨다면서 앞으로 밤 11시까지 연구실에 있을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이 자식...너무 열심히인데...'하고 좀 감동을 받아서 갑작스럽게 경쟁심을 느껴서 새벽 3시까지 공부했다가 바로 다음날인 어제는 탈진+밤 10시까지 조교수업하고 지침이 겹쳐서 10시 40분 넘어서 집에 와서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잤다.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은 바로 오늘인데, 같이 financial management 수업을 듣는데 마침 오늘 배운 재무제표에 전혀 백그라운드가 없는 상태에서 꽤 불친절한(!) 수업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지 드롭을 하겠다는 거다. 학부 때 회계수업 세 개, 재무수업 두 개를 듣고 나는 회계에는 꽤 재능이 있지만(전부 A) 재무는 엉망진창이구나(전부 B), 재무는 앞으로 듣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이 친구가 재무를 듣고 싶다고 해서 그래 그럼, 하고 들어갔던 건데 정작 자기는 빠지겠다니. 이 자식이 날 불구덩이에 빠뜨려놓고 혼자 빠져나간다, 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물론 정말로 화난 건 아니고 그냥 섭섭했던 거고, 섭섭한 걸 티낼 만큼 심각한 감정은 또 아니다. 근데 이 친구가 날 두고 수업을 드롭한 게 벌써 두 번째라서, 앞으로는 정말 내가 듣고 싶은 것만 수강신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원 > 박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풍같은 일주일  (0) 2017.11.04
20171028 토요일  (0) 2017.10.29
20171010 가을방학 마지막날  (0) 2017.10.11
브라우니  (0) 2017.10.06
새 집  (0) 2017.10.05

  가을방학이 끝났다. 사실 월, 화 이틀 밖에 안 되지만 금요일 저녁 때부터 조금씩 들뜨기 시작해서 방학 내내 재밌게 놀았다. 일요일과 월요일엔 학교 가서 공부를 하고, 토요일과 오늘은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것 외에는 집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들어서 내일 학교는 어떻게 갈지 걱정이다.



  어제는(월요일) 점심 도시락 싸서 가려고 채소를 다 썰어놨더니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렸다. 기숙사 사람들로 구성된 groupme가 그것 때문에 엄청 웅성거렸는데, 누가 메인 오피스 가서 물어보니까 건설 중에 뭔가를 건드려서 전기가 나간 것 같다고 했다고 해서 금방 전기가 들어올 줄 알고, 저녁은 집에서 먹을 생각으로 학교에 갔다. 몇 시간 지나서 전체메일로 다섯 시에 전기공급이 재개될 것 같다고 해서 생각보다 심각하긴 한가보다, 그리고 어차피 난 다섯 시엔 집에 있지도 않을 텐데 뭐,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 다음엔 또 일곱 시에 전기가 들어올 것 같다고 해서 실망했지만, 여전히 그 때까지는 집에 도착하지 않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그리고 여섯 시 반이 좀 지나서 몇 군데 알아본 아파트 중 한 곳의 주변을 정탐(?)하기 위해 짐을 챙겨서 퇴근했다. 분명 매니지먼트 사이트에는 연구실이 있는 건물에서 9분 거리라고 했는데 구글 지도에서 계산한 결과로는 13분이 걸렸고, 방학 중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인적이 드물고 길도 몇 번이나 건너야 하는 등 다소 위험해 보여서 마음 속에서 지웠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비록 도보로 25분이 걸리긴 해도 학교 안에서만 걸어다닐 수 있어서 참 좋은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걷는 길에 다른 아파트들도 구경했다. 구글과 레딧에서 검색해 보면 엄청나게 악명이 높은 곳이 두세 곳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이곳저곳 심지어 좋은 위치에 아파트 단지를 많이도 만들어 놨다. 저 회사가 한 달 치 렌트 만큼의 deposit을 별 핑계를 다 대어가며 떼어먹는다는 리뷰를 보지 않았다면 높은 확률로 저 중 한 곳에 입주했을 텐데. 학교 주변의 큰 회사들은 대부분 deposit을 갖가지 명목으로 떼어먹는다니까, 이왕이면 떼어먹는 액수가 적은 곳에 가서 반쯤 포기하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해서 집 밖에 안 나가고 집에서 영어공부 하다가 몇 군데 눈여겨본 아파트 매니지먼트에 이메일을 보냈다. 근무 시간이 끝나고 나서 메일을 보내서 한 곳 밖에 답이 안 왔는데, 모든 조건이 나와 맞지 않아서 못 갈 것 같은데 답장을 보내준 직원이 너무 친절해서 계속 미련이 남는다. 8월부터만 입주가 가능하고, 침대, mattress, dresser가 제공되는 가구의 전부라서 만약 여기로 이사간다면 기숙사에서 나가는 5월부터 8월 초까지 살 수 있는 sublet을 따로 구해서 두 번이나 이사해야 하고, 책상, 식탁, 의자 등 상당수의 가구를 사야 한다는 엄청난 문제가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아직도 좀 고민이 되는데, 이사 두 번할 생각하면 끔찍해서 그냥 여긴 포기하기로 했고, 대신 마찬가지로 방을 찾고 있는 연구실 친구에게 매니지먼트에서 보낸 답장을 포워딩해줬다. 그리고 10시 이후부터는 아무리 그래도 방학인데 금요일에 제출해야 하는 real analysis 숙제를 반도 안 해놓는 건 너무한 것 같아서 숙제를 풀고 있었다.



  사실 어제는 집 생각만 한 게 아니라 saving account 생각도 했고 자전거 사는 것도 생각했었는데, saving account는 그렇다 치고, 자전거는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고 이사하기 전에 짐을 더 이상 늘리면 안 되므로 당분간 사지도 말고 생각도 하지 말아야겠다. 물론 이런 것들이 전부 중요한 것들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 내 본업ㅠㅠ도 제대로 못 하고 있고 하 지금 한 번에 고민 중인 문제가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한 번에 생각할 수 있는 것들만 같이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아파트 매니지먼트에 컨택 메일을 보냈던 것도, 이만하면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정보는 충분히 구했으니 이제 나머지는 계속 검색해서 얻을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한테 직접 얻어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답장을 받기 전까지는 이제 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잊어버리고 기다려야지 뭐. 며칠 동안 알아볼 수 있는 건 다 알아본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재채기, 콧물, 기침이 나와서 조금 전에 자기 전에 먹는 감기약을 먹었다. 벌써 좀 졸리기 시작하는 게 오늘은 일찍 잘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11시 반 수업이 있으니까 일찍 일어나서 시금치두부무침 해서 어제 끓인 카레랑 같이 도시락 싸고 연구실 가는 길에 cvs 가서 낮에 먹는 감기약을 사야지.

'대학원 > 박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1028 토요일  (0) 2017.10.29
20171018 가을방학 끝나고  (0) 2017.10.19
브라우니  (0) 2017.10.06
새 집  (0) 2017.10.05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 2017.09.29

  공부를 하다가 이 새벽에 브라우니를 구웠다. 처음 브라우니 믹스를 살 때의 생각은 구워서 연구실 친구들하고 동기한테 나눠줘야겠다 였는데 금요일 새벽에 난데없이 충동적으로 브라우니를 구웠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어서 그냥 혼자 다 먹으려고 한다. 미국 와서 지금까지 빵을 총 세 번 해봤는데, 아마도 겨울방학 때 전기밥솥으로 만들었던 당근케익은 어떤 면에서 이게 당근이고 이게 케익인지 분별해낼 수 없을 정도로 망했고, 그 다음에 내 생일 케익으로 만들었던 화이트 바닐라 케익?? 은 팬 전체에 식용유를 발라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바닥에만 발랐다가 거의 대부분을 팬에 붙인 채 못 먹게 된 데다, 익었는지 확인할 때 젓가락으로 찔러본다는 안내문을 제대로 못 봐서 흐느적거리는 것을 먹었어야 했다. 오늘 만든 브라우니는 젓가락으로 찔러보는 것도 알고 팬에 식용유도 적절히 잘 바르고 젓가락으로 찔러봐야 한다는 것도 알았는데 이상하게 적정시간이 다 되도록 굳혀지지가 않았다. 다시 상자를 읽어보니 팬 크기별로 조리시간이 다른데 내가 사용한 8인치x8인치 팬은 무려 52분에서 55분이나 조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절망했다. 그래도 뭐, 조리시간 내내 오븐 앞에 붙어 앉아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어차피 오븐에 투명 창이 없어서 보이는 것도 없다) 거의 잊어버릴 때쯤 오븐에서 꺼내왔다.



  작년 말부터 매일 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어놓고 그나마 지금까지 꼬박꼬박 하고 있는 것은 스트레칭(매일)과 플랭크(이건 이틀에 한 번 정도)인데 여름방학 때 라크로스볼을 사서 매일 어깨와 등을 마사지하는 것을 추가했다. 그 밖에 집 밖에서 하는 운동이 학교에서 왔다갔다하고 퇴근할 때 걸어오는 것 등을 합쳐서 하루에 한 시간 반 정도 걷는 것 밖에 없기 때문에 정말 말 그대로 최소한의 운동만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중 스트레칭과 볼 마사지는 사람 하나 살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리도 덜 붓고 한국에 있을 때부터 만성적으로 아팠던 어깨와 목도 잘 때 모로 누워서 잘 수도 있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근육을 단련시키는 운동을 하고 싶긴 한데 아직도(입학한지 벌써 13개월이 넘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학교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한 것이 지난 가을, 봄학기에 총 세 번, 이번 학기에 한 번이 고작이다.



  이번 학기 들어 왜 이렇게 우울할까 또 생각해 봤는데, 단기 목표를 세워서 해내라는 친구의 말대로 단기 목표라고 할 것이 없어서 이렇게 무기력하게 지내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니 내가 가장 생기넘치는 때는 조교 수업을 준비하는 조교 수업 3일 전부터, 그리고 매주 금요일에 제출하는 measure theory 숙제를 시작해서 끝내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였고,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는 수요일에 미리 해석학 숙제를 끝내고 목요일 저녁을 잉여거리며 보냈던 날이었다. 동기랑 하는 paper discussion을 준비하는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도 머리가 다 아플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작 무기력하게 보냈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 같은데, 조교 수업은 지지난주 목요일에 수업을 하고 이제 2주나 더 있어야 다음 수업 일정이 잡혀 있고, paper discussion은 지금 거의 3주째 안 하고 있고 해석학 숙제 제출일은 점점 미뤄져서 이번 주에는 월요일에 지난 숙제를 제출했고 다음 주 금요일에야 다섯 번째 숙제를 제출해야 한다. 따라서 그 사이의 스케줄은 자연히 내 마음 먹기에 달려있는 건데, 다소 강제적인 일정들 외에 개인적인 목표가 없어서 그 짧은 2, 3주 동안에 엄청난 우울함과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오늘 해석학 중간고사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걸 느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까지 마치려고 했던 논문 수정 계획을 다다음주 주말까지로 바짝 앞당길 계획이다. 나란 녀석은 뭔가 여유를 주면 안 되는 것 같다. 요 며칠새 새로 생각 중인 분야의 논문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무기력+일 벌리기+망각이 겹치면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다. 방학 내내 미뤄왔던 것을 이주 만에 숙제+조교수업+시험감독+중간고사와 함께 끝낸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계획인 것 같고 생각만 해도 한숨나오지만 이게 스스로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나한테는 유일한 동앗줄인 것 같다.

'대학원 > 박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1018 가을방학 끝나고  (0) 2017.10.19
20171010 가을방학 마지막날  (0) 2017.10.11
새 집  (0) 2017.10.05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 2017.09.29
새벽  (0) 2017.09.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