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블로그 자주 한다.


 5월 한 달 동안 정말 아무 일도 없이 심심하고(인간적인 대화도 교류도 전혀 없었고) 바빴는데(그 와중에 할 건 엄청 많았는데) 계절학기 개강하자마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자꾸 벌어진다.




  월요일: 오후 4시 50분에 건물 전체 정전돼서 퇴근


  화요일: 너무 더워서 거실에 에어매트리스 깔고 커텐 열어놓고 잤더니 해가 너무 일찍 떠서 새벽 5시 50분에 깨버렸다가 다시 잠들어 버려서 수업 시작 20분 전에 깼다.


  수요일: 천둥폭풍으로 나무가 쓰러지면서 권역 내 1000여 가구가 정전되었는데 거기에 우리 집도 포함됐다. 3시간 동안 지속돼서 연구실로 탈출하다가 인근 신호등에 불 들어오기 시작한 거 보고 복귀


  목요일(오늘): 아침 8시부터 기숙사 전체 에어컨 청소를 하더니 저녁 7시 넘어서 와서 에어컨을 켜려니까 전원이 안 들어온다.




 11시에서 12시까지 있는 통계 수업이 오늘 내일 휴강이지만 일어나는 시간은 8시 40분 시작 수업 때문에 그대로라서 좀 짜증난다. 토요일에 먹기로 한 브런치 때문에 겨우 참고 있다. 누구랑 약속을 한 게 아니라 방학 동안 쌓이는 울분과 스트레스(ㅠㅠ)를 해소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15달러 예산 한도 내에서 외식을 하기로 스스로 정했다. 2주 전에는 햄버거를 먹었고(근데 이건 7달러도 안 됐던 것 같은데) 지난주에는 11.99달러짜리 초밥&롤세트를 먹었다. 이번 토요일에는 무려 브런치 카페에 가서 에그베네딕트+팬케익+커피를 주문할 건데 방금 메뉴판을 보고 계산해 보니까 12.99+2.99+2.79=18.97달러나 된다!! 분명 여기에 세금도 추가될 텐데 음...커피를 뺄까 팬케익을 뺄까 심히 고민된다.


  아무튼 그놈의 브런치 때문에 화요일 수요일 모두 늦잠 자서 아침도 못 먹고 점심 도시락도 변변히 챙기지 못 했으면서도 커피 외에 아무것도 못 사먹었다. 토요일에 브런치 먹을 거니까! 뭐 이러면서. 사실 이번 주만 이런 게 아니라 5월 들어서면서부터 필요한 게 있어도 8월에 한국 갈 거니까! 하면서 안 사고 접은 게 꽤 많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지출이 많지...


  어쨌든 내일은 드디어 금요일이다! 내일은 에어컨도 고쳐져서 시원하게 주말을 즐길 수 있겠지.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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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학기 때 동기와 계절학기를 최대한 이용해서 코스웍을 빨리 끝내기로 했었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 같이 통계수업 하나를 듣고 나는 따로 수학과 수업 하나를 듣기로 했다. 그리고 정확히 지난 주부터 그 결정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계절학기를 들으면 적어도 계절학기를 듣는 기간엔 이 친구를 매일 볼 수 있으니 혼자 심심해할 일은 없지만 문제는 수학 수업이 아침 8시 40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방학 내내 어쩌다 일찍 일어나면 8시에서 9시, 보통은 11시에서 12시, 심하면 오후 2시에 일어나서 느릿느릿 연구실로 기어가던 주제에 아침 수업을 들으러 주중에 매일 7시에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어제는 세탁실에서 빨래 꺼내오고 재빨리 설거지 끝낸 다음 새벽 2시 20분 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못 일어날까봐 불안해서 거의 4시까지 잠을 못 잤다.



  아침에 알람소리를 듣고 몇 시냐! 하는 불안감이 확 밀려와서 핸드폰을 보니 이럴 수가 7시 20분이었다. 내가 이 시간 알람을 듣고 일어나다니! 기쁜 마음에 나만큼 걱정하시던 부모님께 일찍 일어났다고 연락을 드리고 나설 준비를 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밖에 나왔을 때가 8시 20분이었다. 아니 근데 무슨 아침인데도 햇볕이 엄청 따가웠다. 요즘 일출시간이 6시 15분 전후라서 그런가 기온은 21도밖에 안 되는데도 한낮같았다.



  아침 수업은 대학원 5레벨 수업인데도 학부 1학년 수업과 다름없어서 좌절했다. 그래도 성적은 잘 받을 것 같으니 괜찮겠지.



  수업이 끝나고 연구실로 와서 커피 마시고 오늘 필사 과제를 했다.



  11시부터 시작되는 통계 수업도 쉬운 건 마찬가지였다. 웃기는 건 아무리 쉬워도 대학원 과목인데 이전에 통계 과목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학부생이 꽤 많이 수업에 들어와 있던 거다.



  동기랑 연구실로 돌아오는데 학교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어서 군데군데 막힌 곳이 있어서 당황했다. 동기는 처음 얼마간만 학교에 나오다가 시카고에 있는 친구 집에 있었고 미시간도 갔다왔다고 했다(거참 좋겠구만).



  오늘 낮 최고기온이 34도라고 해서 해 질 때까지 연구실에 박혀있을 생각이었는데 맙소사 4시 50분에 정전이 됐다. 무슨 안내방송도 없고 안내메일도 안 와서 당황했다. 어떡할까 한 5분 고민하다가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됐던 것인지 건물을 나가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일몰시간이 9시 20분 정도이니 정확히 하루 중 가장 더운 피크타임에 전기가 나가서 집으로 가는 참사가 벌어진 거다. 온도도 온도이지만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는 시간이라서 햇볕이 엄청 뜨거웠다. 화상입는 줄 알았다. 걸어가면서 혹시 내 집도 정전됐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냉장고 전원 나가면 그거야말로 진짜 재앙인데. 8월 초에 한국 가기 전에 냉장고를 전부 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은 엄청 더웠는데 집은 서늘해서 다행이었다. 씻고 나와서 에어컨 켜고 알로에젤 바르고 시원한 거 마시니 정말 좋았다. 저녁은 뭐 먹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파스타를 먹었다. 파스타로 배가 불러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서 8인분 분량의 면 상자의 반을 전부 끓였다. 귀찮아서 채소같은 건 하나도 안 넣고 토마토 소스만 넣었다.



  그리고 또 뭐했더라. 거실에 깔아놓은 요가매트에서 한 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해가 떠 있었다. 햇볕 가리려고 거실에 암막커텐을 쳐놨더니 까맣게 모르고 있던 거였다.



  그러고 나서도 또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이 시간이다. 밤 10시 48분인데 기온이 29도다. 미친 것 같다 정말. 침실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거실에 에어매트리스 깔아놓고 자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피곤하고 하루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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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시가 지나서 5월 4일이지만 아직 긴 잠을 자고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5월 3일로 생각하기로 한다.


  오늘 학부 과목 시험 감독을 하나 해야 하고 나면 드디어 봄학기가 끝난다. 1월 9일에 개강해서 4개월 좀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거의 무슨 1년은 된 줄 알았다. 특히 2월 말까지만 진행되는 전반기 수업을 하나 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학기가 끝났다는 말은 반성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학기에는 나름 의미있는 변화도 꽤 있었다. 영어가 많이 늘어서 사람들과의 대화나 조교 수업이 한층 수월해졌고, 그러다 보니 조교 수업이나 오피스아워에 조금 재미를 붙이기도 했다. 12월 말부터 집에서 운동을 하기 시작해서 학기 말로 갈수록 바빠서 더 못 하긴 했지만 몸이 뻐근하거나 활력이 없을 때 습관처럼 운동을 하게 되었고 2월 초부터 시작한 포켓몬 고 때문에 집에 올 때는 항상 걸어다니고 어쩌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도 꼭 산책을 하게 된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져서 석사 때나 지난 학기보다 밤을 새는 날도 줄어들었다. 집안일에 익숙해지면서 요리에 투입하는 시간도 많이 줄었다. 생각해 보니 영어책도 두 권 다 읽었다.


  반면 아직 나아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안 좋아진 것도 있다. 이번 학기에는 전반기 한 과목, full semester 과목 두 개랑 리서치 학점 하나를 들었다(F1 비자 유학생은 정규학기에는 의무적으로 12학점을 채워야 함). 일단 보기에는 네 과목을 들으면서 허덕였던 지난 학기에 비해 여유가 있어서 연구할 시간이 많아서 뭔가 굉장한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optional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지원했던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현실은...매주 case study 과제를 제출하고 두 달 동안 시험 두 번을 보는 전반기 과목은 그렇다 치고, optional 프로젝트가 있는 과목은 총 네 번 시험을 보는 과목이어서 2월 14일, 3월 21일, 4월 20일, 5월 3일에 시험이 있었고 중간중간 일주일 이상 시간을 들여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그리고 어제 기말 프로젝트를 제출한 과목은 시험은 두 번 '밖에' 없었지만 매주 숙제를 제출하고 중간고사 이후부터는 기말 프로젝트를 비롯한 코딩 과제가 거의 매주 있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느꼈던 감동이나 새롭게 배운 것들을 차치하면 거의 무슨 함정카드인줄 알았다. 게다가(이제야 조교 수업하는 것을 즐기게 되어서 굳이 힘들었던 것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학기에만 8번 혼자 help session을 진행했고 오피스아워가 거의 항상 숙제 데드라인 전날 저녁에 있어서 그 때마다 연구실 앞에 줄 서있는 학생들을 상대해야 했다. 이렇게 구구절절 바쁨을 강조하는 이유는 연구를 거의 못 한 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optional 프로젝트는 교수님이 주신 논문들을 다 읽고 요약만 했을 뿐이고 내 연구도 고작 지도교수님이 주신 과제 중 하나를 겨우 해결했을 뿐이다. 교수님은 아직 1학년이라서 그런가 닦달하시지는 않는데 방학 중엔 일주일 정도만 day-off 하고 연구에 전념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게 확실히 지금 추이가 엄청나게 안 좋은 것이 분명하다. 하긴 한 게 없는데 진도 운운하는 것이 우습다.


  아무튼 그래서 연구 성과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다음은 영어공부에 관한 것이다. 이번 학기에 영어 말하기 실력이 부쩍 는 것은 1) 미국에 와서 한 학기를 보냈고 2) 말을 많이 해야 하는 mba 수업을 들었고 3) 동기와 이야기를 많이 했고 4) 조교 수업이랑 오피스아워 덕분에 뜻하지 않은 하드 트레이닝을 한 것 등이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지난 학기에 영화랑 드라마를 열심히 챙겨보면서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를 최대한 많이 외웠던 것도 유효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영화를 많이 보지도 않았고, 보긴 했어도 단어만 적어놓고 뜻을 찾아보고 정리하는 등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도 그럴 시간이 없었거나, 시간이 있었어도 머리를 많이 쓰지 않는 일들을 하면서 쉬기 바빠서 못 한 거다.


  이렇게 전부 적어놓고 보니 결국에는 나의 모든 문제는 시간 관리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연구를 거의 못 한 것도, 영어공부를 게을리하게 된 것도, 운동을 띄엄띄엄 하는 것도 전부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거였다. 그런데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난 5년 동안 논문 한 편도 쓰지 못 하고 체류기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졸업하게 될 거다. 우선은 연구자로서의 자질의 문제이지만 이건 나라는 한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도 결코 좋지 않다. 어렵게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힘든 course works를 비교적 잘 해내고 있는 것도 자랑스럽지만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고, 어떻게 더 나은 인간이 될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우선은 길고 긴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진지하게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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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고 있지 않을 때는 절대 침대에 눕지 않기로 결심했다.


 지난 주에만 무려 5일을 '공부 시작하기 전에 잠깐 누워있어야징ㅎㅎ'하고 방에 들어갔다가 그대로 잠들어서 새벽 다섯 시에 깼다. 물론 그래봐야 다섯 시간 밖에 안 잔 거라서 개이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래놓고 아침 수업이 있는 날은 새벽에 깨서 설거지하고 공부하고 씻고는 피곤해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가 수업에 10분씩 지각을 하고, 아침 수업이 없는 날도 설거지하고 공부하고 씻고 나서 다시 누웠다가 느지막하게 학교에 가는 것이 반복되었다. 역시 나라는 인간에게는 조금의 여유도 줘서는 안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혼자 쓰는 침대가 꽤 크다 보니 그 위에 옷이며 책이며 온갖 것들을 다 널어놓아도 밤에 자는 데 지장이 없어서 방에 있을 때면 늘 침대에 붙어있는 와식생활을 했었다. 그렇지만 여긴 잘못하면 자다가 떨어질 수도 있는(실제로 한 번 떨어졌다) 좁은 트윈 침대라서 그런 것은 꿈도 못 꾼다. 거기다 딱딱한 매트리스를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만들어 보려고 메모리폼 토퍼를 사서 깔아놨더니 이건 완전 잠자기에만 최적화된 가구가 되어서 침대에 누우면 무조건 자게 된다. 그걸 알면서도 따뜻하고 안락한 느낌 때문에 매번 실패했는데, 조금 전에 침대에 누우려다가 더 이상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걸음을 멈췄다. 심지어 목요일에 시험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봄방학 끝나고 정말 바빴다. 시험 두 개, ta 세션 두 번, 수많은 숙제들 때문에 일요일에도 학교에 가는 비상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거기다 지금은 완전히 끝났지만 tax refund 서류 준비까지! 저번 일기에도 썼었지만 하루하루를 집에 조금이라도 빨리 기어들어가는 야욕에 사는 나에게 정말 가혹한 일이다. 그렇지만 매트랩이랑 TeXstudio를 정상적으로 사용하려면 학교에 갈 수밖에 없다. 집에서 쓰는 노트북에도 TeXstudio를 깔아놓긴 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컴파일을 몇 번이나 눌러야 겨우 반영이 돼서 답답하다. 그러다 보니 쾌적한 환경에서 Latex를 사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교에 가야 되는 것이다.


  뭐 어쨌든.


  방학 시작하기 전까지는 계속 이런 식일 것 같다. 코스웍도 그렇지만 굳이 지원해서 혼자 하고 있는 optional project를 어떻게 조금이라도 성과를 내보려면 그냥 이번 학기는 글렀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만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맥빠지는 소식이 있다.


  서로 다른 과목을 맡고 있긴 하지만 나나 동기나 1년 동안 과중한 ta 업무에 시달리면서 2학년 때는 ra가 되고 싶다고 생각날 때마다 얘기했었다. 그런데 오늘 다음 학기에도 우리가 ta를 맡아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건 정말 너무하다. ta를 배정받는 학부 과목이 두 개 있는데 1학년 때 그 두 과목을 가을과 봄에 나눠서 번갈아 맡게 된다는 것을 입학할 때 들어서, 지난 학기 말에는 종강하는 대로 동기한테 수업자료 다 넘기고 이 지긋지긋한 과목(사실 지긋지긋하다기보다는 힘들다는 표현이 맞다. ta 세션도 혼자 8번을 다 해야 하고 숙제도 전부 내가 풀어서 설명해야 하고 오피스 아워도 혼자 다 해야 하니까) 빨리 때려치워 버려야겠다고 신났지만 어쩐 일인지 다시 이 과목을 맡게 되었었다. 그래놓고도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못 해서 불과 몇 시간 전에 동기랑 수업 듣고 걸어오면서 이번 여름에 계절학기 ta하고 내년 가을에는 1학년 애들이 ta하면서 힘들어하는 걸 보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고약한 속마음까지 동기에게 털어놨었는데. 사실 내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가을학기에 영어 말하기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한 동기는 올해 또 다른 2학년 선배가 하는 것을 미루어 봤을 때 ta가 아니라 아예 수업 하나를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더 이상 불평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은 다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절대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걸 스물아홉이나 되어서야 깨달았다는 것이 나조차도 믿기지 않지만 갈수록 그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된다. 언젠가부터 내가 사람을 양식화해서 '이런 사람은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미리 단정짓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건 순전히 게으름의 발로다. 한 사람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귀찮게 여기고 미리 내려놓은 결론에 끼워맞추려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게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게 나처럼 인간관계의 주역이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에게는 더 없이 편리한 방법이라서 굳이 고칠 생각을 하지 못 했었다. 그런데 유학을 와서 여러 사람들을 계속 접하다 보니 나의 지식이나 상식 수준에서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이 정말 하나도 안 들어맞는다. 그리고 앞으로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서 내가 우물 안 개구리에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해도 내 예상이나 추측이 맞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자기 전에 절대 눕지 않겠다고 글을 쓰기 시작한지 벌써 한 시간이 되어서 요즘만 간단히 쓰면 이 정도일 거다. 모든 사람들을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냥 꾸준히 도전하고 지켜보자고. 그러면 상대방이 '어느 날 갑자기' 변했다고 느낄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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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공식적인 spring break다. 4월 말이면 여름방학 시작하는데 뭐하러 봄방학까지 챙기나 했었는데 없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지난주 수요일까지 중간고사를 보고 이번 주에 help session, office hour, 숙제 하나 제출하고 내일까지 하나 더 제출해야 하는데 방학 없이 그대로 진행됐다면 그대로 방전됐을 것 같다.사실 어제 오늘도 밤 열 시부터 두 시간 반 정도 자고 일어나서 그대로 밤을 새고 지금 이 시간이라서 정말 죽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수업이 화요일 목요일에만 있고 help session과 office hour도 화요일 목요일에 몰아놓은 것이 정말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당일 또는 전날까지는 죽을 것 같지만 바로 다음 날에는 푹 쉴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오늘(목요일)은 자정까지 블랙보드에 내야 하는 숙제+6시 반부터 8시 반까지 오피스아워+20분 전부터 연구실 앞에 대기하고 있던 학부생들 크리로 인해 저녁도 먹지 못 하고 집에 거의 열 시가 다 되어서 들어왔다. 하루하루를 집에 일찍 들어가고자 하는 야욕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어째서 이런 시련이...그런데 나처럼 9시 넘어서까지 학교에 남아있던 동기가 보통 때 8시에 퇴근한다는 것을 얘기해 줘서 반성 중이다. 나는 요즘 집에 7시에서 8시쯤 들어오면 스스로 엄청 수고했다고 믿고 새벽 한 시까지 푹 쉬거나 놀다가 늦게서야 각성하고 공부를 시작해서 겨우 한두 시간 더 하고 자는데, 심지어 이 친구는 수업 없는 날에도 아침 일찍 출근하는데.아무래도 집에 들어오는 시간을 아예 늦춰버려서 빈둥대는 시간을 줄여버려야 할 것 같다.


  기승전 반성이라니 조금 이상해졌지만 그래도 봄방학이 정말 기대된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내야 한다는 제한이 있긴 하지만 이번 방학에는 돈이 좀 들더라도 외식을 몇 번 해볼 생각이다. 한국에서는 외출을 하는 날이면 하루에 한두 끼는 꼭 밖에서 사먹었는데 여기선 한국 친구들하고 일부러 약속을 잡는 날(거의 3개월에 한 번)이나 학교에서 빵을 주는 금요일이 아니면 삼시세끼를 전부 해먹다 보니 정확히 내 힘으로 조리 가능한 엄청나게 건강하고 간이 심심한 음식만 먹게 되어서 조금 지친다. 요리 실력이 늘면서 요리하는 게 즐겁지만 먹는 재미와 하는 재미는 다른 거였나보다. 그래서 지금은 방학 때 밖에서 뭘 사먹을까 고민하고 있다.


  엄청 힘든 척 글을 썼지만, 아니 실제로 일이 많고 힘들지만 꽤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동기와 지난 학기보다 더 친해지면서 드디어 사소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 친구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언제든 자기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어있는 동시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줄 안다는 거다. 그리고 머리를 정말로 쥐어짜서 해야 하는 숙제들이 간혹 있는데, 수업 내용 뿐이 아니라 어느 레벨에서 공부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나는 것들을 총동원해서 문제를 풀다 보면(사실 이건 지난 학기에 더 심했다) 두뇌개발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숙제를 끝낸 이후의 성취감도 상당하다. 기껏해야 행복한 이유를 두 개 겨우 생각해냈지만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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