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일어나고 좀 더 활동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목표였다. 토요일 오후에 비가 아주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기도 했고 어디서 보니까 무기력증의 원인이 우울증이라고 해서 혹시 내가? 하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처져 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어제는 일찍 일어나서 장을 보고 왔고 오늘은 비록 늦게 일어나긴 했지만 설거지와 청소를 다 끝내 놓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왔다. 토요일에는 오후에 정말로 비가 많이 와서(장대비가 어느 순간 갑자기 함박눈으로 바뀌어서 소름 끼쳤다) 다시 학교에 가지 않았지만 오늘은 가길 잘한 것 같다. 언제나 그렇지만 주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서 연구실에 앉아있는 건 정말 기분 좋고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진다.

 

  블로그에 한 달 넘게 글을 안 썼는데 그 이유는 도중에 한 번 글을 썼는데 그 장문이 희한하게 임시저장도 한 번 되지 않고 날아가 버려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카데믹 라이팅 강의도 한 개 들었고 일주일에 한 번 가던 물리치료도 무사히 끝나고 중간고사도 한 과목 보고, 학부 조교 수업도 두 번인가 세 번인가 더 했고 교수님도 한 번 뵀고 나름 착실하게 보냈다. 교수님을 뵌 건 정말 희한한 상황이었는데, 우선 그전까지 마음고생을 좀 했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연구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두 번인가 교수님께 이메일로 질문을 했었는데 이메일에 쓴 내용 중 일부에만 대답하시거나 아예 무시를 하셨다. 게다가 묘하게 동기만큼 교수님께서 신경을 안 쓰시거나 약간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딘 연구 상황 때문에 나한테 크게 실망하신 건가, 아니면 내 연구주제에 대한 관심이 식으신 건가 별별 생각을 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도 없이 갑자기 오셔서 동기와 나의 성과를 각각 보자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보낸 이메일은 읽었지만 나도 (내가 막히는 부분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답을 보내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general case에 대한 concrete theorem과 proof가 생기면 만나서 얘기해 보자고 하셨다. 교수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지 잘 모르겠지만 보자마자 그 말씀을 해 주셔서 내가 완전히 잊힌 것도 아니고, 뭐가 문제인지 기억은 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 가장 먼저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다음으로는 그게 안 돼서 여쭤본 건데 스스로 한 다음에 보자고 하시다니ㅠㅠㅠ하는 막막함이었다. 그 이메일을 보낸 이후로도 두 달 동안 별 짓을 다 해도 실마리도 안 보이는 상황이라 어떻게든 교수님 도움을 받긴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쫓겨나지는 않겠구나 싶은 안도감이 더 커서 다시 즐겁게 논문 많이 읽고 전개도 많이 하고 있다.

 

  학교 지하의 아시아 음식점에서 파는 생선조림이 맛있어서 매주 가서 먹다 보니 그만 바깥에서 먹는 밥에 질려버렸다. 내가 요리를 아주 잘해서 나만의 레시피를 많이 보유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 어플 보고 따라 만드는 건데도 내가 한 음식이 내 입에 제일 잘 맞는 건 나도 잘 이해가 안 된다. 요리하고 설거지한 스스로의 노력이 가상해서 맛있게 느껴지는 걸까? 이번 주에는 밑반찬을 아주 많이 해서 거의 매 끼니 같은 것을 먹는데도 좋았다.

 

  며칠 전에는 새삼스럽게 박사과정에서의 사소한 성취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이번 학기에는 연구주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졸업요건이라서 들어야 하는 과목 딱 한 개를 듣고 있는데 지난주에 본 중간고사를 아주 잘 봤다. 이 과목 성적 잘 받았다고 연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즐겁다.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작년 여름학기부터 뜻하지 않게 새로운 연구주제를 시작한 이번 학기까지 정말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겪어왔는데 연구에 들인 노력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노력으로(복습과 숙제는 열심히 했지만 시험공부는 이틀밖에 안 했으니 그 정도였을 거라고 짐작된다) 작은 성취를 이루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30분 넘게 딴짓하고 와서 이 문단을 더 이어갈 의욕이 사라짐). 그래서 연구와 관련된 것이든 아니든, 크고 작은 중간 과제를 많이 만들어 놓고 뭔가를 이루어 간다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 적어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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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째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잠깐잠깐씩 틈은 있지만 거의 하루 종일 두통이 있어서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지난 주 수요일에는 학교 병원에 갔었다. 이것저것 물어보시던 의사선생님께서 진통제인 Naproxen과 nasal congestion 약을 처방해 주셨는데(진료받는 내내 재채기를 하도 해대서 알레르기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Naproxen을 아마도 금요일에 잃어버렸다...약국에서 한 번 리필 받으러 오라고 하긴 했는데 15일 동안 먹을 약을 너무 빨리 리필하러 가면 엄한 오해를 받을 것 같아서 참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오늘 특히 실험을 하면서 신경을 바짝 썼더니 머리가 엄청나게 아프다. 방금 아스피린을 먹긴 했는데 안 되면 당장 내일이라도 약을 사러 가야 할 것 같다. 약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금요일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였는데 설마 거기다 흘리고 온 건가? 의심스럽지만 연락이 아직도 안 온 것을 보면 학교나 집에 있는 것일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금요일부터 물리치료를 시작했는데 이것도 두통 때문이다. 미국에 오기 전에 손목이 저리고 머리가 아파서 손목터널증후군을 예상하고 정형외과에 갔더니 목과 어깨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물리치료를 받았던 기억 때문에 의사선생님한테 혹시 목과 어깨 통증이 요즘들어 심해졌는데 이것 때문일까요 하고 여쭤보니 "흠 그렇군 아주 타이트하군" 하면서 물리치료사 명함을 주셔서 난데없이 시작하게 되었다. 막상 가보니 우리 나라에서 받았던 것 같은 적외선 치료나 진동치료 같은 것이 아니고 운동치료라서 좀 당황하긴 했지만 물리치료사 분께 집에서 혼자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을 배우고 그 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다 물어볼 수 있어서 무척 유익했다. 목과 어깨 스트레칭을 매일 하고 있는데 어째서 밴드를 이용한 어깨 스트레칭을 하면 팔이 아픈지는 잘 모르겠다.



  내 동기는 나 말고도 친구가 많지만 난 정말 별로 없다. 한국에서도 아주 오래된 친구들 아니면 먼저 연락을 하기 어려워하는 성격이었는데 미국에서라고 쉽게 친구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기에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몇 명 없고 한국에 있는 오래된 친구들처럼 장난치고 막말하는 척하면서 놀 수 있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다 보니 거의 보는 동기에게 정서적으로 거의 심각한 정도로 의지하는 편인데, 이게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연락을 자주 하거나 시도때도 없이 얘기하자고 하는 건 아닌데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지나치게 오래 고민하기 때문이다. 바쁜 것은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마찬가지이고 성격 자체가 다른 사람 일에 신경을 안 쓰는 편이지만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는 한국에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조금씩 기울였을 관심을 거의 오로지 동기에게만 쏟고 있어서 이렇게 된 것 같은데, 나도 부담스럽고 피곤하고 만약 동기가 이 사실을 안다면 날 피하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병원, 물리치료, 아카데믹 라이팅 수업, 미용실 등등 굳이 공유할 필요가 없는 영역들을 찾아보려고 노력 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중에 새로운 친구를 만날 방법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생활 반경을 넓히는 것은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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