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쌀국수 생각이 난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문제의 베트남 음식점은 내가 사는 곳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곳인데, 그 5분 거리가 매우 험난하고(가는 길이 경사져 있고 대로변이다) 식사시간마다 사람이 항상 많아서 생각보다 가기가 쉽지 않다. 세 번째 학생증을 찾은 이후로 스스로 뭔가 잘했거나 수고했다고 느껴질 때 쌀국수를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악조건 때문에 2개월 동안 한 번도 못 가고 있다.


  지난 주 목요일과 금요일도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뭔가 굉장히 고생을 해서 쌀국수 생각이 많이 났었는데, 집 쪽으로 걸어오면서 계속 얼음과 눈에 미끄러지고 바람에 시달리면서 도저히 식당에 들렀다가 다시 밖으로 나올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바로 집으로 왔었다. 오늘도 과중한(?) 조교 업무에 시달리고 쌀국수 생각이 또 났지만 날도 춥고 심지어 비도 와서 그냥 집에 가서 드러눕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서 그냥 왔다. 사실 꽤 오랫동안 냉장실에서 양념에 재워둔 불고기가 있어서 그걸 빨리 먹어버렸어야 하기도 했고. 근데 이렇게 갖은 핑계를 대가며 안 가는 걸 보면 생각만큼 쌀국수를 안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번 주에는 가게 될지 궁금하다.


  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퇴근해서 오면 밥 먹고 쉬고 집안일하고 운동하느라 거의 공부를 안 했었는데 요즘은 정말로 할 게 많아서 밤에도 계속 한다. 연구실에 혼자 있을 때 좀 더 타이트하게 공부했다면 밤중에 설거지통에 쌓인 설거짓감을 보면서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하다못해 공부를 한두 시간만 더 전에 시작했어도 지금쯤 차 마시면서 책 좀 읽고 잘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텐데. 그래도 밤 공부를 시작하는 시간이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다는 것을 위안삼아야겠다.


  어제 드디어 'The namesake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다 읽었다. 워낙 긴 세월을 담은 책인 만큼 다양한 감정을 느꼈지만 내가 드디어 나이가 들었나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 나는 과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미국이나 또는 다른 나라에 정착하게 된다면 내 자식은 필연적으로 이민 2세가 될 텐데, 내 자식이 내가 나고 자란 문화를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거나 떨쳐버리고 싶어하지 않게 해줄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느끼지 않도록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뭐 이런 식의. 아직은 너무 먼 이야기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이런 문제를 실감하게 되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튼 읽는 내내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집중하게 되고 감정을 이입했던 굉장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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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다이어리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 하는 부분이 아쉬워서 daily habit tracker 어플을 찾다가 제일 덜 복잡해 보이고 시간이 아닌 횟수로 체크할 수 있는 것이 좋아보여서 다운받았다. 일단은 당장 습관을 들여야 하는 것만 시간 순서대로 등록해놨다.


  • 유산균 먹기
  • 아침 먹기(8시)
  • 출근(9시)
  • 점심 전 공부 3시간
  • 점심-저녁 전 공부 5시간
  • 설거지
  •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 요가
  • 저녁 먹고 공부 2시간
  • 스트레칭
  • 영어공부 1시간
  • 30분 책 읽기
  • 2시 반 눕기

  이 중 몇 개는 시간 알림까지 맞춰놨더니 하루 종일 알람이 엄청나게 온다. 특히 원래 쓰고 있던 운동 어플들의 알람 시간이 집중되어 있는 8시부터 9시 반까지는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요가 알람까지 더해져서 정말 끊이지가 않는다. 거기다 10시가 되면 빨리 저녁 먹고 공부하라고 알람이 와서 옆에서 누가 재촉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연속 횟수를 끊기게 하고 싶지 않아서 대부분 어떻게든 하고는 있다. 시작한 지 겨우 이틀 된 주제에...설거지를 이틀 연속으로 해본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근데 점심 전 공부 3시간은 당분간은 절대 못 해낼 것 같다. 세미나가 있는 날은 세미나와 함께 오전 시간이 다 끝나고, 세미나 말고 수업이 있는 날은 아침을 무슨 2시 반 넘어서 먹지 않는 한은 도저히 3시간이 안 난다. 공부를 최대한 많이 하자고 시간을 잡아놓긴 했는데 이번 주만 해보고 시간을 재조정해야 할 것 같다.


  며칠 동안 집 우편함이 안 열려서 이제는 우편함 열쇠 바꾸는 데도 돈을 써야 하나 심란해 하고 있다가 오늘은 혹시나 하고 한 번 열어봤는데 열렸다. 아마도 지난 주 내내 날씨가 너무 추웠던 나머지 우편함이 얼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연 우편함 안에 온갖 쓰잘데 없는 스팸메일이 잔뜩 들어 있어서 놀랐다. 그냥 열지 말고 둘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난 원래 다른 사람들한테 징징대는 걸 싫어하는데 요즘들어 동기한테 너무 자주 징징대고 있어서 심히 걱정된다. 주로 진로 고민 때문인데, 꼭 징징대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별로 기분 좋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게 진짜 못된 것 같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그런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렇게 정해놓고 보니 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 할 얘기가 없으면 동기가 뭔가를 말할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겠다. 날씨 얘기라든지, 공부 얘기라든지, 먹는 거 얘기라든지 어쨌든 우는 소리가 나올 만한 화제는 절대 꺼내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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