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며칠은 수면 패턴 무너짐+감기 기운 때문에 학교에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하는 정도였는데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장 보러 가는 날 딱 하루밖에 나가는 처지가 되었다. 3월 초까지는 그나마 날씨가 좋은 날도 가끔 있어서 햇볕 아래 커피 마시면서 공부하면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매일같이 흐리고 비가 와서 기분이 고조될 일이 아예 없다. 집에 전화할 때 아니면 하루 종일 이야기 나눌 사람 하나 없고, 밥 하기 귀찮아도 사 올 수도 없고, 운동량은 현저히 부족하고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지만 밖에 나가지 않으면 코로나에 감염될 가능성이 없어진다는 압도적인 장점 때문에 외출하는 것을 포기했다.

 

  장을 보러 가야 하는 토요일에는 좀 부지런히 움직인다. 차가 없어서 장을 보러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다 보니 버스나 마트에 사람이 없을 때를 노리게 된다. 지난 주에는 10시에 갔더니 마트에 사람이 제법 많아서 오늘은 아예 8시에 갔다. 이 시간에도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게 놀랍기도 했지만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오히려 코로나에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최대한 사람이 적을 법한 시간에 나왔을 어르신들께 본의 아니게 걱정을 하게 한 것 같아 죄송하기도 했다. 내가 사는 도시가 속한 카운티에는 아직 환자가 두 명 밖에 나오지 않아서인지 재고가 평소보다 많이 떨어진 상품들도 있긴 했지만 인터넷 뉴스에서 본 대도시들처럼 사재기 상황이 심각하진 않았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파스타, Lysol 소독 스프레이, 감자, 우유 등의 재고가 별로 없었고(지난주에는 크리넥스 휴지는 묶음 할인을 했고 화장실 휴지와 키친타월은 확인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이번 주의 특이사항으로는 타이레놀이 전부 팔려 나갔고(액상 타이레놀이 있어서 이거라도 살까 고민하다 작년에 두통 때문에 처방받은 Naproxen이 집에 있는 것이 생각나서 그냥 안 샀다) 희한하게 Chobani 요거트가 털려있었다. 육류(돼지/소/닭)와 유제품(하프갤런/갤런 우유/계란)은 인당 3개까지만 살 수 있는 수량 제한이 있었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육류는 여전히 상당히 많았고 아몬드, 소이 밀크, 저지방 우유 등은 아직도 많은데 무지방 우유(skim milk)가 가장 많이 떨어져 있었다.

 

  지난 주에 장을 보러 갈 때 이번 주에는 외출을 아예 하지 않을 요량으로 2주 치 식량을 샀다고 생각했는데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떨어져서(특히 계란) 하는 수 없이 나왔지만 오랜만에 외출을 하니 좋더라. 집에 도착하니 9시 40분일 정도로 상당히 이른 아침이다 보니 거리에 사람도 없어서 앞으로는 아침에 잠깐이라도 산책을 할까 했지만, 오랜만에 바람 좀 쑀다고 감기 기운이 있는 것을 보면 내 면역력도 그다지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곧 집 근처에 Target 매장이 문을 여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에 개점일이 변경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4월 5일에 열린다고 하니 그때까지는 지금 있는 것들을 파먹으면서 버티려고 한다.

 

  학교 커뮤니티에서 얼마 전에 읽은 댓글 중에 엄청나게 공감가던 것이 있었다. "(남에게 코로나를 옮으면) 밖에서는 내가 피해자이지만 집에서는 내가 가해자다" 이런 것이었는데 혼자 사는 나는 집에만 붙어 있으면 일단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Social distancing을 넘어 Self-isolation을 하고 있어 점점 더 괴롭긴 하지만 생각을 바꿔서 이 시간을 잘 활용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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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ccuWeather (안드로이드 날씨 어플)

  원래 쓰고 있던 구글 기본 날씨 어플이 너무 안 맞아서 여름방학 시작할 무렵에 다운받아서 계속 쓰고 있는 어플인데, 이렇게 소름 돋게 안 맞는 어플은 처음 봤다. 이 어플의 가장 큰 단점은 마치 정확성을 자랑하듯 "몇 분 이후에 강수 시작"과 같이, 현재 시각으로부터 120분 이내에 강수가 예상되면 몇 분 후에 비가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정작 한 번도 적중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어플 때문에 일부러 밖에 안 나가거나 우산을 들고 외출했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분개한 적이 허다하다. 아무리 우리 동네 기상 상황이 변덕스럽다고는 하지만 당장 5분 뒤에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도 맞지 않는 어플은 쓸 데가 없다.

 

2. 개강 후 일상

 

  지난 주에는 학교에 두 번인가 밖에 안 갔는데도 꽤나 생산적으로 공부해서 이번 주에도 그걸 기대하면서 학교에 세 번 밖에 안 갔더니 무지막지하게 게을러져서 힘들었다. 공부시간을 채워야 해서 공부를 하긴 하는데 아침부터 조금씩 시간을 채우는 게 아니라 늦은 오후부터 새벽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 하고 공부를 해야 하다 보니 밤 시간이 정말 불행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서 반드시 학교에서 일정 시간 이상 공부를 하고 오는 것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사실 그것도 그거지만 한국 뉴스를 계속 보게 되는 일이 생겨서 집중하기 어렵기도 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고등학교 때부터 석사를 졸업할 때까지의 일들이 떠올라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참고로 정시로 대학 입학함). 학부 때부터 대학원 2학기까지 계속 과외를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매 학기 장학금을 받기 위해 각종 서류와 신청사유서 등을 준비해야 했으며, 바쁘게 별 추억도 없이 대학 생활을 하고 유학을 위해 처음 cv를 쓸 때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였는데도 막상 '스펙'이라고 쓸 만한 것들이 없어서 황망했던 것 등이 떠오른다. 나는 국가장학금 세대가 아니어서 매 학기 두세 개 이상의 교내외 장학금에 지원했는데(당연히 중복수혜는 안 됨), 항상 주민등록등본, 재산세 납부 증명서, 건강보험 납부 증명서 등의 서류를 필수적으로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지원하지도 않았는데 장학금을 줬다는 변명을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나를 포함해서 우리 학교에 다녔던 똑똑하고 공부에 욕심이 있던 사람들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있었다면 거의 날개를 달아준 것과도 같았을 여러 기회들을 반복적으로 노력 없이 얻어놓고 단순히 우연히 얻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정치적 진영 논리로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실망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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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쌀국수 생각이 난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문제의 베트남 음식점은 내가 사는 곳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곳인데, 그 5분 거리가 매우 험난하고(가는 길이 경사져 있고 대로변이다) 식사시간마다 사람이 항상 많아서 생각보다 가기가 쉽지 않다. 세 번째 학생증을 찾은 이후로 스스로 뭔가 잘했거나 수고했다고 느껴질 때 쌀국수를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악조건 때문에 2개월 동안 한 번도 못 가고 있다.


  지난 주 목요일과 금요일도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뭔가 굉장히 고생을 해서 쌀국수 생각이 많이 났었는데, 집 쪽으로 걸어오면서 계속 얼음과 눈에 미끄러지고 바람에 시달리면서 도저히 식당에 들렀다가 다시 밖으로 나올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바로 집으로 왔었다. 오늘도 과중한(?) 조교 업무에 시달리고 쌀국수 생각이 또 났지만 날도 춥고 심지어 비도 와서 그냥 집에 가서 드러눕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서 그냥 왔다. 사실 꽤 오랫동안 냉장실에서 양념에 재워둔 불고기가 있어서 그걸 빨리 먹어버렸어야 하기도 했고. 근데 이렇게 갖은 핑계를 대가며 안 가는 걸 보면 생각만큼 쌀국수를 안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번 주에는 가게 될지 궁금하다.


  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퇴근해서 오면 밥 먹고 쉬고 집안일하고 운동하느라 거의 공부를 안 했었는데 요즘은 정말로 할 게 많아서 밤에도 계속 한다. 연구실에 혼자 있을 때 좀 더 타이트하게 공부했다면 밤중에 설거지통에 쌓인 설거짓감을 보면서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하다못해 공부를 한두 시간만 더 전에 시작했어도 지금쯤 차 마시면서 책 좀 읽고 잘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텐데. 그래도 밤 공부를 시작하는 시간이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다는 것을 위안삼아야겠다.


  어제 드디어 'The namesake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다 읽었다. 워낙 긴 세월을 담은 책인 만큼 다양한 감정을 느꼈지만 내가 드디어 나이가 들었나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 나는 과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미국이나 또는 다른 나라에 정착하게 된다면 내 자식은 필연적으로 이민 2세가 될 텐데, 내 자식이 내가 나고 자란 문화를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거나 떨쳐버리고 싶어하지 않게 해줄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느끼지 않도록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뭐 이런 식의. 아직은 너무 먼 이야기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이런 문제를 실감하게 되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튼 읽는 내내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집중하게 되고 감정을 이입했던 굉장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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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금요일에 스마트폰 구글 날씨 앱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는데 토요일 새벽부터 일요일까지 winter storm이 있을 거라는 경고문구가 떴었다. Winter storm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날씨 어플에 경고문구가 나오는 걸 처음 보기도 했고 눈이 4에서 7인치 정도 올 거라고 친절히 말해주기까지 했으니 나처럼 버스 타고 장보러 다니는 사람에게는 큰일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서 5시 반에 퇴근해서 집에서 가방을 바꾸고 장을 보러 갔는데 다들 나같이 생각했는지 마트엔 사람도 엄청 많았고 농산물이나 생필품 코너에는 이미 동이 나있는 것들도 상당히 많았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눈이 오려고 이런 소동을 일으키나 싶어서 새벽 두 시부터 온다는 눈을 보고 자려고 했는데 안 오기에 좀 실망한 채로 잤다. 그런데 아침 느지막히 일어나 보니 이미 세상이 눈 천지였다. 주말이라 밖에 나가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잔뜩 내린 눈이 일주일 내내 쌓여있다 겨우 어제부터 조금씩 녹기 시작했는데...오늘 또 Winter storm 경보가 떴다. 윈터 스톰의 매운 맛은 지난 주에 충분히 봐서 오늘 또 퇴근하고 장을 보러 갔다. 그랬는데 마침 거기서 선배님들을 만나서 집에 올 때는 차를 얻어타고 왔다. 운도 억세게 좋지....내일은 또 집에서 눈 오는 거 구경하면서 코코아 마셔야겠다.



  엄청 배고프다. 아침 일찍 세미나가 있어서 하루 종일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은 채로 장을 보러 갔던 거라서 오늘은 기필코 오뚜기밥을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항상 제일 필요할 때마다 집에 밥이 없더라) 막상 사려고 보니 너무 비쌌다. 밥 한 개에 2.5달러, 3.1달러라니.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라면을 끓여먹으려고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라면 냄비에 사골국이 있어서 라면도 먹을 수가 없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비비고 사골곰탕은 파 좀 썰고 후추 뿌려 먹으면 정말 맛있다. 어쩔 수 없이 밥을 새로 해서 이제야 먹는다. 내솥이라도 어제 씻어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은 김치까지 새로 뜯어 놓으니 좀 감격스럽다.



  이번 주는 job talk(교수 임용 후보자들이 와서 자기 연구성과 발표를 함)이 아침에 이틀이나 있어서 평일 5일 중 4일을 학교에 일찍 가야 해서 좀 힘들었다. 사실 첫날이 제일 힘들었고 갈수록 좀 편했다. 화요일이 첫날이었는데, 아침에 못 일어날까봐 불안해하다가 결국 밤을 새고 학교에 갔다. 후유증이 상당해서 초저녁에 잔 날도 있었지만 어제오늘은 상당히 괜찮아서 내가 노력만 하면 일찍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좀 느꼈는데 주말에는 또 밖에 못 나가니까 원래대로 돌아갈까봐 아쉽다. 내 동기는 아예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데, 나도 이참에 7시에 일어나는 습관 좀 들여야겠다.



  이제 밥 먹는 거에 집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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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려고 보니까 생각했던 것이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고 원인을 생각해냈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시간이 너무 늦어서 길게 쓰지 않기로 했다. 간단히 적어보면 지금 당장 느끼는 모든 정신적인 어려움들은 내가 처한 상황을 일시적으로 견뎌야 하는 고통으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 많고, 또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막연히 상대방이 '나와는 다르게' 주는 것보다 받기만을 원할 거라고 보고 방어기제를 항상 발동하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그래서 생각해본 해결책은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좀 더 자주 떠올리도록 노력하고, 내가 남들이 바라지도 않는 지나친 관심과 배려를 쏟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 자신에게 좀 더 애정을 가져야겠다는 거다. 사실 말이 쉽지......그런데 지금 이 단계를 극복하지 못 하면 앞으로도 건강한 인간관계를 쌓는 데에도 문제가 필연적으로 생길 것이고, 살면서 겪게 될 모든 위기상황들이 그저 고통스럽게만 느껴져서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



  12월 전기요금이 나왔는데 생각보다 액수가 적어서 기쁘다. 하루에 난방을 두세 시간 정도만 하는 것이 꽤 절약하면서 쓰는 거라는 건 알고 있었으면서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각오하고 있던 것의 반 정도밖에 안 나왔다. 내일은 집에 오는 길에 보이는 발전소를 기분 좋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정말 자야 한다. 개강하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만 앞당겨지고 하루도 2시 이전에 자기로 한 결심을 지킨 날이 없다. 그러다 보니 초저녁에 너무 졸리다. 오늘도 연구실에서 7시 넘어서부터 졸다가 혼자 놀라서 집에 와서는 또 11시까지 잤다. 빨리 정상적인 공부 모드에 돌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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