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영화들 중에 블로그에 안 남겨둔 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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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극장 별로 안 가고 거의 봤던 영화들을 많이 찾아봤다. 그 동안 블로그에 영화본 걸 왜 안 올렸나 생각해 봤는데, 영화 관련 글을 쓸 때마다 진지해져서 길고 현학적인 글을 쓰려고 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짧게 메모만 하기로 했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내가 영화를 보고 느꼈던 감정들을 간략하게나마 되살릴 수 있겠지.

이터널 선샤인은 3년 전에 보고 올해 들어 2주 동안 두 번 봤다. 또 보는데 처음 봤을 때, 두 번째 봤을 때랑 또 다르다. 예전에 봤을 때는 굉장히 따뜻한 영화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영화 전반에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그냥 내 기분이 그래서 그런가....는 잘 모르겠다. 스무 살 때는 이후의 결말이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일 거라고 확신했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랐는데 지금은 그저 현재의 사랑에 충실하면서 당분간 행복할 거다, 이 정도의 추측밖에 못하겠다.

영화의 배경이 겨울이라 크리스마스 때 보면 좋을 것 같다. 12월에 또 봐야지.

제일 좋았던 장면: 지워지고 있는 조의 기억 중 클레멘타인이 일하는 서점에서 둘이 얘기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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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알게 된 것은 2학년 때였나,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봤을 때였다. 영화의 도입부에, 영화감독인 김태우가 제천에 찾아갔던 것은 음악영화제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때 김태우의 얼굴을 계속해서 담기 위해 카메라가 뒷걸음질치듯 그를 따라다닐 때 배경이 되었던 제천의 시골 같은 풍경이, 영화를 본 이후에도 계속해서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항상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제천에 가서 음악영화들을 보고 오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내 게으름은 어디에 안 가서, 2년이나 지난 이번 여름에야 실행에 옮기게 됐지만 말이다.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연구실 휴가를 연구실에서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8월 14일에 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15일 아침에 출발했다. 밖에서 혼자 자고 오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아서, 애초에 당일치기로 계획했다. 충청도라서 굉장히 멀 줄 알았는데 오전 아홉 시 반에 출발해서 열한 시 이십 분에 도착했다. 애초 계획은 11시 30분 영화를 보고, 2시 영화를 보는 거였다. 그런데 상영관인 TTC에 가던 중 길을 잘못 들어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곳을 한 시간이나 걸려서 찾아갔다. 그 덕에 제천시 구경을 실컷했다는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한참 헤메다 지도에 있는 제천단양농협과 중앙시장 건물을 발견하고, 또 극장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심장이 크게 뛰었는지 아직도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극장에 도착한 건 12시 20분 쯤이어서 당연히 11시 반 영화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2시에 상영하는 '스웰 시즌'을 보려고 했는데........당연히 매진되어 있었다. 그래서 매진이 안 된 작품이 뭔지 물어서, 2시 반에 상영하는 '영화음악의 거장들-크리스토퍼 코메다Komeda-A Soundtrack for a life'와 '영화음악의 거장들-가브리엘 야레In the Tracks of Gabriel Yared' 표를 샀다. 어쩌면 더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스웰 시즌'은 '원스'를 통해 이미 익숙한 '스웰 가든'을 다룬 다큐멘터리이지만, 코메다나 야레는 이름도 생소한 음악가들이어서 새로운 음악을 알게 될 기회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상영 시간이 1시간 반이나 남아서 제천 시내를 구경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또 길을 잃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근처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안내소에서 받은 브로슈어에 주변 음식점이 안내되어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극장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마시듯이 먹고, 중앙시장 건물로 가서 전시회를 구경했다.

 음악영화제에 걸맞게, 오래된 밴드의 CD나 LP판을 비교적 싸게 파는 곳도 있었고, 브라질의 악기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곳, 다방, 우쿨렐레와 오카리나를 파는 곳, 캘리그래피 작품을 파는 곳도 있었다. 집에 아직도 LP 전축이 있었다면 비틀즈 판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미련없이 포기했다. 오카리나를 보고 잠깐 들뜨기도 했는데 이미 벌여놓은 악기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연습하지 못할 것 같아서, 결국 구경만 하고 나왔다. 막상 집에 돌아오고 나니, 가족들이나 친한 사람들, 과외 애기한테 캘리그래피 엽서라도 사다 줄걸, 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시간이 남아서, 극장 앞에 있는 별빛다방에 갔다. 공연이 있다는 건 모르고 갔는데, 어떤 팀이 부지런히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브라질 음악? 라틴 음악? 아무튼 그 쪽 음악을 연주한다는 프리마베라Primavera였다. 당연히 처음 듣는 노래를 노래하고 연주하는 처음 보는 밴드였다.



 몇 안되는 파라솔과 의자가 꽉 차고, 길가에까지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서 공연을 기다렸다. 그래서 한 시 반 예정이던 공연이 한 시 이십 분으로 앞당겨 시작되었다. 브라질에서 굉장히 유명한 가수의 곡을 카피해서 연주(한다는데 가수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집에 와서 찾아보고 싶을 만큼 좋았는데)하고 노래했는데, 다른 밴드의 공연에서도 볼 수 있는 키보드와 베이스, 퍼커션이 젬베 같은 악기들과 어우러져 그렇게 신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쩌면 별로 신기해 하지도 않을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모든 것들이 새로운 경험이고 신기한 일이다.)

 45분 쯤 되자 극장 앞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곧 영화가 시작될 거라고 알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영화를 보러 갔다. 노래를 더 들을 수 없는 게 아쉬운 거였지, 마지못해 영화를 봤던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보고 나서는 공연 때 들었던 음악과 함께 영화에서 들었던 음악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이름도 처음 듣는 음악가들이었지만 익숙한 곡들도 조금 있었다. 둘이 작업을 하는 방식은 많이 달랐지만, 영화를 감독만큼 깊이 이해하고, 영상이 표현하는 것과 함께 영상이 담아내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음악으로 오롯이 표현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감동받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두 영화가 곧바로 이어서 상영된다는 것을 모르고 보러 간 거라서,(사실 두 편이나 상영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야레 편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집중력이 급격히 저하된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JIMFF 스테이지가 마련된 의림지에 가기로 했다. 공연을 보기에는 이른 시간이어서, 이름이 익숙한 의림지가 도대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버스 정거장을 못 찾아서 시내에서 한참 헤매기도 했다. 31번 시내버스로는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렸다. 가는 길에 제천영상미디어센터를 발견해서 돌아갈 때는 꼭 걸어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의림지는 생각보다 큰 호수였다. 왜 이름이 익숙한가 했더니, 삼한 시대에 건설된 저수지였다. '농경 문화의 발상지'라는 표기석과 표지판을 보고서야 알았다. 호수 가장자리로 산책로와 다리, 정자, 폭포가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의림지 놀이동산과 주차장이 있었다.





 부모님이랑 온 거였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아버지가 이런 탁 트이고 나무 냄새 나는 곳 좋아하시는데......아무튼 그냥 보기만 해도 좋은 곳이니 한 바퀴 쭉 돌고 가야지, 했는데 JIMFF 스테이지에서 6시 반 공연 리허설이 있었다. 그래서 앉아서 소년 핑크의 곡을 모두 듣고 왔다. 남녀  보컬의 목소리가 많이 익숙한 느낌이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 재밌게 들었다.



 이제 공연까지 봤으니, 영상문화센터에도 들르고, 좋은 풍경사진도 많이 찍고 싶어서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는 길에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꽃들을 많이 봤다. 꽃 사진만 50장 찍었나....더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영상미디어센터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 시간 쯤 걸어서였나. 가까스로 도착했는데, 관객을 위한 곳이 아니라 관계자들을 위한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 좀 잘 알아보고 갈걸......아무튼 제천시내에는 가야 해서 더 열심히 걸었다. 가는 도중에 두 번이나 길을 잃어서 물어물어 겨우 제천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으니까, 저녁도 먹고 다른 구경도 더 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너무 걸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했다. 그래서 바로 표를 끊고, 일곱 시 반 차를 탔다. 오는 길에는 차가 좀 막혀서 두 시간 십 분 정도 걸렸다.

 원래 자주 밖으로 다니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접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놀라운 것이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이번 여행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선 처음 혼자 떠난 여행이었고, 영화제를 관람한 것이 처음이었고, 거리에서 밴드 공연을 본 것이 처음이었고, 제천에 간 것도 처음이었다. 삼바를 라이브로 들은 것도 처음이었고,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본 것도 처음이었고, 시간과 좌석번호가 써 있지 않은 시외버스 표를 사 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온지 하루 좀 더 지난 지금은 어제의 여행이 꿈같이만 느껴진다. 여행을 하면 다 해결되어 있을 것만 같았던 오래된 고민이나 걱정거리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한 것과 함께, 어떤 친구의 말처럼 그것들이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적어도 한 달은 이번 여행을 생각하면서 좀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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