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내내 혼수상태였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도 자주 졸고, 늦게 일어나서 수업에 지각하기도 하고, 오늘은 또 늦게 일어나서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다가 10시 반에 예정되어 있던 conversation group meeting에 못 갔다. 벌써 지친 건가 해서 어제 저녁 때 진수성찬을 차려서 먹었는데...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


 다른 경영대 친구들과는 달리 경제학 수업을 안 듣고 주 3일만 수업을 들어서 한가했는데 갑자기 바빠졌다. 어쩌다 모든 숙제와 발표, TA 수업이 2주 사이에 몰렸는지 모르겠다. 수업 세 개를 같이 듣는 친구가 "너 이번 달에 조교 영어시험 신청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정말로 그렇다. 20일에 있는 발표는 한참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거라서 발표를 준비할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영어시험을 포함해서 내가 조정할 수 있는 모든 일정은 전부 미뤘는데 하필이면 나중에 정해진 것들이 그 주에 몰린 거다. 그래도 가장 부담되고 힘든 것을 피해서 다행이다.


 아이패드는 정말 잘 쓰고 있다. 주된 용도는 역시 '스크린'이고 그 밖에 부엌에서 요리할 때 요리법을 찾아서 켜놓고 보기도 하고 영어강좌나 빨간책방 팟캐스트도 몇 번 들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사고 싶은 책들도 몇 권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는데(전자책이라면 모를까 종이책은 왜 담아뒀나 모르겠다) 이건 살 책이 좀더 쌓이고 좀 한가해지면 주문해야겠다. 사실 한국에서 보낸 우체국 택배가 1/4도 도착하지 않아서 책을 꽂을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 두어야 한다.


 오늘은 두 시 전에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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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드디어 주말이 되었다. 심지어 다음주 월요일이 Labor day라서 월요일에도 쉰다!! 물론 나는 원래 월요일에 수업이 없긴 했지만 연휴라서 그런지 괜히 기분이 좋다.


 이번 주에는 삶의 질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다. 일단 아마존에서 구입한 라디오 겸용 cd플레이어가 와서 한국에서 가져온 cd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한국에서 선박택배로 보냈던 겨울옷과 책도 도착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주문했던 아이패드도 도착했다.


1.

 노래야 이전에도 워낙 많이 들었지만 미국에 가져오려고 출국 직전에 온 cd들을 비로소 들을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그저께 받아서 어제 처음 작동시켜 보았는데 어둑어둑한 거실에서 노래를 듣고 있으니 분위기가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달라진 건 20불도 안 되는 cdp를 설치한 것 뿐인데도 그렇다. 아마도 한국에서도 즐겨 듣던 노래 cd를 틀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구글에서 내가 사는 주의 라디오 방송국 주파수를 찾아서 들어봤는데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노래들이 흘러나와서 기분이 묘했다. 아 물론 마룬파이브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인기가 많은 것 같다.


2.

 주문한 아이패드가 기숙사 오피스에 도착했다는 이메일을 받고 잔뜩 설레서 일찍 퇴근했는데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보낸 택배도 같이 와 있었다. 20kg에 육박하는 짐이다보니 택배를 먼저 집에 갖다 놓고 다시 아이패드를 가지러 가야 했다. 어제 처음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긴 했지만 근 한 달 동안 읽을 책이 없어서 굶주려 있던 터라 어떤 상자가 도착했을까 궁금했는데 전공책 아홉 권을 제외하면 읽을 책이 두 권 밖에 안 들어 있어서 실망했다. 뭐 모든 물건이 무사히 도착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지만. 운 좋게도 상자는 찢어지거나 헐지 않았고, 진공팩으로 압축한 니트류가 구겨져서 왔을 뿐 대부분 멀쩡하다. 거실 책꽂이에 책들을 꽂아놓고 비어있던 옷 서랍장을 채우고 나니 이제 진짜 내가 여기에 완전히 옮겨왔다는 실감이 났다. 물론 익숙한 책들을 다시 보게 되니 이상한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3.

 처음 아이패드를 사고 싶다고 생각한 시점부터 장장 4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아이패드를 갖게 되었다. 아직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것이 아닌데도 참고논문이나 책이 너무 많아서 연구실 캐비넷이 무슨 쓰레기통이 되었다. 거기다 여기 오기 전부터 알X딘 us에서 한국 책을 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책값이 비싸서 전자책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원래 아이패드를 갖고 싶기도 했고. 마침 베스트바이에서 에어2를 399달러에 팔고 있어서 더욱 결심이 굳어졌다(물론 세금을 포함하면 훨씬 비싸지지만). 처음 상자를 개봉했을 때 느낀 것은 '아이패드가 이렇게 연약한 존재였나...?' 하는 것이었다. 화면이 커서 그런가 더 약해 보인다. 애플 매니아들이 말하는 애플 제품의 매력이 연약함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걸 예상 못 해서 아직 케이스랑 액정보호필름은 안 샀는데 빨리 주문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문을 입력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농락당하고 생각보다 비싼 어플 가격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뭐 마음에 든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iBooks인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고,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그림형제 동화책의 첫 번째 장의 이야기가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365일 동화>에 실려있던 이야기라서 더 기뻤다.


4.

 며칠 전에 한국인 친구들과 오피스를 같이 쓰는 동기 친구와 같이 밥을 먹다가 이 친구가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리다는 것을 알았다. 학부를 마치고 바로 진학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어릴 줄은 몰랐다. 기껏해야 세네 살 어린 줄 알았지...아무튼 그 때부터 내가 학교 대충대충 다니다가 늦게야 박사과정에 온 만학도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군대를 다녀온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 중 한 것이라곤 고작 석사학위 받은 것 밖에 없으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오늘 저녁을 먹고 나서야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원래 계획보다 1년 늦게 유학을 오긴 했지만 가장 적당한 나이에 나온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3, 4년 전의 나는 연구방법론 같은 건 전혀 몰랐을 뿐 아니라 집안일은 할 줄 아는 것이 거의 없었고, 성격적인 면에서도 지금보다도 더 꽉 막힌 사람이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방법도 몰랐으니까. 물론 지금도 고쳐야 할 점들 투성이지만 그나마 예전보다는 나아졌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시작은 한참 늦었지만, 앞으로 더 잘하겠지.



 요즘 부쩍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원래 쉽게 기분이 좋아지고 자주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특히 어제 더 그랬다.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사실 요즘은 이상할 정도로 아무 일도 없다) 그냥 안정적인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것이 좋다. 출국 직전에 내가 미쳤다고 이 많은 것들을 다 놓고 가냐고 자책하고 후회했던 것이 먼 옛날의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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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동안 밖에 안 나가고 잉여로운 생활을 했다.


 그나마 한 것은 2월 1일부터 듣기 시작한 ebs 회화교재 공부(아마 2월이 끝나면 공부 후기를 쓸 것 같다)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놀긴 엄청 놀았는데 정확히 뭘 하면서 놀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시덥지 않은 웹서핑하느라 시간이 다 갔을 거다.


 오늘 오랜만에 밖에 나갔다가 이메일로 좋은 소식을 전해들었다. 땅으로 꺼져만 가던 자존심, 그리고 날로 커져만 가던 자괴감을 일순간 역전시킬 만큼 기쁜 소식이었다. 학교 오래다닌 것이 마냥 헛짓은 아니었구나 하고 이제야 마음놓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다른 곳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더 기다려봐야 한다.


 아무튼 그래서 이제부터 생활패턴을 고치기 위해서 무조건 3시엔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내 인생이 걸린 부분인데 이마저도 제대로 안 되면 난 정말 답도 없는 사람일 것이다. 블로그에까지 썼으니 이번엔 정신차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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