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해서 아침형인간의 시대가 끝난 건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다시 여섯 시에 일어났다.


  실은 이번 주 내내 6시에 일어났다가 다시 자고 하는 것을 반복했는데, 역시 한 번에 일어나는 날은 몸의 상태가 다르다. 어제만 해도 일어났는데도 눈이 감기고 침대에서 몸이 안 떨어졌는데 오늘은 다소 가뿐하다. 다소라고 쓴 것은 어제 스트레칭을 제대로 안 하고 자서 삐걱거리는 곳이 좀 있어서다.


  일어나자마자 메일 확인을 했는데 그저께 저녁부터 숙제를 물어보던 학부생한테서 다시 질문 메일이 와 있고 새벽 세 시에 이 과목 교수님이 보내신 답장도 와 있었다. 다른 학생이 나한테 물어봤던 내용을 전달하면서 애들이 제일 자주 물어보는 게 이거였다 라고 보냈는데 왜 나한테 답을 보내신 건지 모르겠다. 내가 모른다는 게 아닌데...아무래도 시간 때문인 것 같다. 질문하는 학생한테는 이전 메일에서 블랙보드에 있는 handout을 보라고 했더니 무슨 handout을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핸드아웃 업로드된 건 하나밖에 없는데...이 녀석아 공부는 하고 숙제를 해야지! 이번 숙제는 유독 기본 지식이 숙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질문을 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 뭐 중간고사 날짜도 정해졌으니 알아서들 하겠지.


  금요일에 또 학과 세미나를 한다. 2016-2017 학기에는 1년 동안 세미나가 서너 번 밖에 없던 것 같은데 이번 학기에는 아직 개강한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두 번째 세미나다. 그런데 금요일에 수업을 듣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려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해석학 수업이 11시 반부터 12시 20분까지인데 세미나 시간이 10시 반부터 12시까지다. 하긴 그런 사소한 사정까지 전부 고려하다 보면 절대 시간을 정할 수 없겠지. 아무튼 그 덕분에 수업시간에 제출해야 하는 숙제를 제출할 수 없어서 미리 해서 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이번 학기는 목요일과 금요일이 가장 바쁘다. 오늘은 숙제를 제출하고/조교수업을 하고/세미나 전에 guest speaker랑 박사학생들 만나는 자리 준비하러 논문을 미리 읽어야 하고, 내일은 세미나를 듣고/동기랑 하는 paper discussion을 준비해야 한다. 다른 날에도 물론 공부를 하고 논문을 읽고 오피스아워도 하는데 목요일과 금요일의 무게감은 확실히 다르다.


  요즘은 밤이 많이 길어져서 벌써 6시 51분인데도 아직도 해가 안 떴다. 몇 주 전만 해도 아침 일곱 시에 밖에 산책하러 나가면 그 이른 시간에 학교 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도 그런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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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학기에 어쩌다 보니 "Real analysis and Measure theory"라는 과목을 듣고 있다. 해석학이랑 관계된 대학원 과목이 "Real analysis"와 이 과목 이렇게 두 개 있었는데 이전 학기 교재목록을 찾다 보니 Real analysis 교재가 학부 2학년 때 들은 해석학 1, 2 교재인 Principles of Mathematical Analysis이던 때가 많아 보여서 이미 봤던 책을 또 볼 필요는 없지! 하고 자신만만하게 Measure theory 과목을 신청했다.



  이 과목은 일주일에 세 번 수업하기 때문에 개강 첫주가 끝난 지금까지 벌써 세 번의 수업을 들었고, 이제 와서 내가 얼마나 자만했는지 절실히 느꼈다. 나중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번 주엔 해석학2 부분의 시작인 Riemann integral에 대해 배웠는데(결국 PMA를 피하지는 못 했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하다못해 가장 먼저 나오는 Riemann integrable의 정의를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였으니...하기야 Basic topology, continuity, differentiation 등을 포함하는 해석학1 부분이야 전공과 논문에서도 많이 사용되니까 잊어버리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지만 적분 부분은 2009년 2학기 때 해석학 2를 수강한 이후로는 거의 활용한 적이 없어서 복습을 따로 하지 않는 이상 기억나는 것이 있으면 다행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학기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언젠 안 그래도 되는 학기가 있던 것처럼). 수업은 전체 학기 2개, 후반기 수업 1개 이렇게 들으니 시간이야 당연히 넉넉하겠지만 한두 과목 삐끗하면 학점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나올 것 같다. 이번 주 지내 보니까 아직 시차적응이 완벽히 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영어공부에 드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연구나 수업 공부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 같다. 뭐 차차 고쳐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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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시가 지나서 5월 4일이지만 아직 긴 잠을 자고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5월 3일로 생각하기로 한다.


  오늘 학부 과목 시험 감독을 하나 해야 하고 나면 드디어 봄학기가 끝난다. 1월 9일에 개강해서 4개월 좀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거의 무슨 1년은 된 줄 알았다. 특히 2월 말까지만 진행되는 전반기 수업을 하나 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학기가 끝났다는 말은 반성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학기에는 나름 의미있는 변화도 꽤 있었다. 영어가 많이 늘어서 사람들과의 대화나 조교 수업이 한층 수월해졌고, 그러다 보니 조교 수업이나 오피스아워에 조금 재미를 붙이기도 했다. 12월 말부터 집에서 운동을 하기 시작해서 학기 말로 갈수록 바빠서 더 못 하긴 했지만 몸이 뻐근하거나 활력이 없을 때 습관처럼 운동을 하게 되었고 2월 초부터 시작한 포켓몬 고 때문에 집에 올 때는 항상 걸어다니고 어쩌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도 꼭 산책을 하게 된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져서 석사 때나 지난 학기보다 밤을 새는 날도 줄어들었다. 집안일에 익숙해지면서 요리에 투입하는 시간도 많이 줄었다. 생각해 보니 영어책도 두 권 다 읽었다.


  반면 아직 나아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안 좋아진 것도 있다. 이번 학기에는 전반기 한 과목, full semester 과목 두 개랑 리서치 학점 하나를 들었다(F1 비자 유학생은 정규학기에는 의무적으로 12학점을 채워야 함). 일단 보기에는 네 과목을 들으면서 허덕였던 지난 학기에 비해 여유가 있어서 연구할 시간이 많아서 뭔가 굉장한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optional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지원했던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현실은...매주 case study 과제를 제출하고 두 달 동안 시험 두 번을 보는 전반기 과목은 그렇다 치고, optional 프로젝트가 있는 과목은 총 네 번 시험을 보는 과목이어서 2월 14일, 3월 21일, 4월 20일, 5월 3일에 시험이 있었고 중간중간 일주일 이상 시간을 들여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그리고 어제 기말 프로젝트를 제출한 과목은 시험은 두 번 '밖에' 없었지만 매주 숙제를 제출하고 중간고사 이후부터는 기말 프로젝트를 비롯한 코딩 과제가 거의 매주 있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느꼈던 감동이나 새롭게 배운 것들을 차치하면 거의 무슨 함정카드인줄 알았다. 게다가(이제야 조교 수업하는 것을 즐기게 되어서 굳이 힘들었던 것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학기에만 8번 혼자 help session을 진행했고 오피스아워가 거의 항상 숙제 데드라인 전날 저녁에 있어서 그 때마다 연구실 앞에 줄 서있는 학생들을 상대해야 했다. 이렇게 구구절절 바쁨을 강조하는 이유는 연구를 거의 못 한 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optional 프로젝트는 교수님이 주신 논문들을 다 읽고 요약만 했을 뿐이고 내 연구도 고작 지도교수님이 주신 과제 중 하나를 겨우 해결했을 뿐이다. 교수님은 아직 1학년이라서 그런가 닦달하시지는 않는데 방학 중엔 일주일 정도만 day-off 하고 연구에 전념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게 확실히 지금 추이가 엄청나게 안 좋은 것이 분명하다. 하긴 한 게 없는데 진도 운운하는 것이 우습다.


  아무튼 그래서 연구 성과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다음은 영어공부에 관한 것이다. 이번 학기에 영어 말하기 실력이 부쩍 는 것은 1) 미국에 와서 한 학기를 보냈고 2) 말을 많이 해야 하는 mba 수업을 들었고 3) 동기와 이야기를 많이 했고 4) 조교 수업이랑 오피스아워 덕분에 뜻하지 않은 하드 트레이닝을 한 것 등이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지난 학기에 영화랑 드라마를 열심히 챙겨보면서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를 최대한 많이 외웠던 것도 유효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영화를 많이 보지도 않았고, 보긴 했어도 단어만 적어놓고 뜻을 찾아보고 정리하는 등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도 그럴 시간이 없었거나, 시간이 있었어도 머리를 많이 쓰지 않는 일들을 하면서 쉬기 바빠서 못 한 거다.


  이렇게 전부 적어놓고 보니 결국에는 나의 모든 문제는 시간 관리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연구를 거의 못 한 것도, 영어공부를 게을리하게 된 것도, 운동을 띄엄띄엄 하는 것도 전부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거였다. 그런데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난 5년 동안 논문 한 편도 쓰지 못 하고 체류기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졸업하게 될 거다. 우선은 연구자로서의 자질의 문제이지만 이건 나라는 한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도 결코 좋지 않다. 어렵게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힘든 course works를 비교적 잘 해내고 있는 것도 자랑스럽지만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고, 어떻게 더 나은 인간이 될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우선은 길고 긴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진지하게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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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교 생활


 지난 주에는 두 번째 help session, 첫 번째 수업 발표, 세미나 참관, 시험 감독, 그리고 conversation group까지 무사히 끝냈다. 조교수업이랑 발표 때문에 청소도 못 하고 일요일까지 학교에 갔어야 할 정도였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끝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help session은 내가 생각해도 확실히 저번보다는 잘한 것 같고, 발표는ㅜㅜ교수님이 분명 발표 전에 슬라이드 보시고 괜찮아 보인다고 하셨으면서 막상 발표 도중에는 이론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서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겠냐고 이론적인 내용은 건너뛰고 intuition만 말하라고 하셔서 좀 멘붕했다. 두 번째 발표가 바로 다음주이니 다음 발표는 더 잘하겠지.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주에도 화요일 10시 반 시험, 저녁 7시 발표 이렇게 중요한 일정이 잡혀있다. 그 다음주 금요일에는 세미나 수업 숙제를 내야 하고(이번 학기 과목 중 가장 재밌는 과목인데 숙제가 너무 어렵다) 또 그 다음주 수요일에는 코딩 숙제를 해서 내야 한다. 지난 주에 블랙보드에서 숙제를 확인하고 결국 올 것이 온 건가, 싶었다. 한때 블로그에서 가장 자주 썼던 태그가 '일상' 다음으로 '코딩유망주'였을 정도로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코딩은 내내 내 발목을 잡았고 그 때문에 고생도 꽤 많이 했었다.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번 숙제는 Newton method, gradient method 같은 걸 구현해서 해를 구하는 숙제라서 의외로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미리 시작해야겠다.



2. conversation group


 8월 말부터 학교 writing lab에서 주관하는 conversation group에 가고 있다. 매주 하루씩 평일 중 가장 마음이 가벼운 목요일과 금요일에 번갈아서 가고 있다. 이번 주에는 금요일 모임에 갔는데 저번 모임 때도 만났던 일본인 visiting scholar 아저씨, 그리고 미국에 오기 전 출국자 모임에서 뵀던 한국인 언니가 먼저 와 계셨다. 그리고 조금 늦게 어떤 백인 친구가 와서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자기가 콜롬비아에서 온 visiting scholar라고 했다. 와 지금까지 갔던 모임 중 가장 많이 떠들고 온 날이었던 것 같다. 그 친구도 특별히 수다스러운 편은 아닌 것 같은데 '가족'과 관련해서 콜롬비아와 한국이 어떻게 다른지 계속 질문을 해와서 거의 머리를 쥐어짜면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평소보다도 훨씬 유창하게 말했던 것 같다고 스스로 느꼈다. 이유는 모르겠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우리 과 인도인 동기인데, 그 친구는 내가 무슨 말을 하다가 막히면 그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알아차려서 평소에는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기도 한다.



3. 아메리칸 울트라


 아마존 프라임 영화에 '아메리칸 울트라American ultra (2015)'가 추가됐다는 것을 이메일로 받아서 어젯밤에 봤다. 안 그래도 요즘 영어 때문에 고민이 많아서 영화를 보면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영어 듣기를 연습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였다. 등장인물 모두가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말하고, 중간중간 모르는 단어가 있었지만 알아듣기 어려운 슬랭이 많이 나오지도 않았다. 근데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잔인해서, 그것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피가 튀어서 엄청 무서웠다. 분명 병맛코드의 영화라고 들었는데, 이건 병맛도 아니고 그냥 잔인하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봐야 공부가 된다는데 이 영화를 또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



4. 80/90


 언젠가부터 자주 이용하던 도서관 커피머신이 작동을 안 한다. 맛이 꽤 괜찮고 가격도 1.50달러로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거스름돈으로 25센트를 두 개씩 꼬박꼬박 받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그렇다고 도로 맞은편에 있는 건물 지하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기에는 지하 통로를 통하더라도 너무 멀다. 그래서 오피스가 있는 층에 있는 커피 머신을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여기선 블랙 커피를 대용량은 90센트 (그래봐야 스타벅스 톨 사이즈 2/3 정도밖에 안 된다), 보통 용량은 80센트에 사서 마실 수 있다. 그렇다고 맛이 별로인 것도 아니고 단점은 쿼터를 받을 수 없다는 것ㅎ; 정도다.


 처음에는 80센트 짜리를 마셔봤는데 양이 너무 적어서 아쉬웠다. 그래서 10센트를 더 내고 대용량을 마시게 되었는데, 또 어느 날부터는 1달러를 넣으면 거스름돈으로 20센트가 나온다. 처음엔 내가 자판기 버튼을 잘못 눌러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오는 양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20센트가 나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뭐...커피를 싸게 마실 수 있으면 좋은 거니까. 아무튼 그래서 이제 10센트 동전이 제법 쌓였다.



5. 신용카드


 학기 초에 그렇게 처리해야 할 서류가 많아서 고생스럽더니, 이제 TB(폐결핵) test 받는 것 외에는 모두 끝났다. 지지난 주에 social security card가 집에 도착해서 학교 보험을 등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미국에 정착하려면 신용카드로 신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여기 오기 전부터 들어서 신용카드를 신청해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막상 한 군데 신청해 놓고 나니 부담스러워진 거다. 살면서 과소비라고 할 만한 것을 해본 적은 없지만 갑자기 내가 무분별한 소비를 할 것 같고 카드대금도 제 때 못 낼 것 같고 저축도 못 할 것 같고 그렇다. 그래서 이번 달 stipend가 나오면 사려고 카트에 추가해뒀던 물건들을 몇 번이나 다시 보면서 뺐다 넣었다 하고 있다.


 8월 초에 미국에 와서 돈을 허투루 쓴 적은 없다고 자부하면서도 예상보다 돈을 더 많이 썼다. 사실 그것 때문에 무서운 거다. 그나마 8월 중순까지는 가계부를 열심히 썼는데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영수증만 모아놓고 가계부는 안 써서 뭔가 엉망진창이 된 느낌이다. 화요일 시험이 끝나면 밀린 가계부를 전부 정리하고 진짜 생활비 내역을 작성해야겠다.



6. 진로


 이번 주에는 동기랑 진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리고 대학 선배님들 몇 분께도 연락을 취해서 여러 조언을 들었다. 사실 미국에 와서 경영대 나오면 다 미국에서 교수할 수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어서 정말 그럴까? 하고 의심을 하면서도 거기에 도취되어 있었다. 우리 과는 경영대보다도 산공과에 가까우면서 말이다. 선배들 말씀을 들으면서 드디어 은연 중에 품고 있던 거품이 터진 것 같다. 나쁜 뜻은 전혀 아니다.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코스웤은 최대한 열심히 듣고, 그러면서도 최신 논문들 열심히 읽으면서 트렌드를 읽고, 잘 모르는 남들이 내 연구에 관해 무슨 말을 하든 휩쓸리지 말고 꿋꿋이 밀어붙이자는 것, 그리고 바라던 대로 졸업하고 바로 교수가 되지 못해도 절대 좌절하지 말고 차근차근 연구 경력을 쌓겠다는 것 뭐 이 정도다. 당연한 이야기를 굉장히 거창하게 쓴 것 같긴 한데 이런 건 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글로 써야 더 절실하게 느낄 것 같아서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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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멘탈이 탈탈탈탈 털렸다.


 첫 번째 TA 세션이 있는 날이라서 다른 바쁜 일 제쳐가며...는 솔직히 아니고 다른 일들이랑 병행해 가면서 주말을 바쳤는데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오피스 아워 때는 비교적 말이 잘 통하는(왜 그런지는 모른다) 아시아 친구들하고만 봤었는데, 세션에는 미국인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당황하기도 했고 현재 나의 가장 큰 문제인 영어가 또 말썽이 되어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왜 내가 t 분포의 critical value 구하는 법을 설명을 못 했을까!!!' 하고 계속 자책했다.


 말 그대로 머릿속에 '절망'만 가득 채우고 집으로 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오자마자 밥 잘 챙겨먹고(냉동실에 있던 피자를 데워먹긴 했지만) 씻고 팀 과제 마무리해서 메일로 보내고 지금까지 열심히 숙제를 한 거 보면 내 정신력은 이상한 방향으로 발달된 모양이다. 다음주 화요일 밤까지는 계속 이렇게 멘붕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다음 과제를 준비하는 것이 계속될 것 같다. 뭐 이러다 보면 학교 생활에 적응도 하고 강의도 더 잘 할 수 있게 되겠지. 좋은 쪽으로 생각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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