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에서 보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영화였다.


 포스터는 무슨 'mit 천재들이 카지노를 턴 이야기' 내지는 '세계를 속인 마술사 이야기' 같은 분위기인데, 실상은 kbs 일요스페셜 또는 ebs2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 차라리 아주 지적인 분위기로 홍보를 했다면 입소문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스페셜이나 다큐멘터리 분위기가 난다는 것은 영화가 재미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카메라의 거친 움직임이나 극 중간에 화면이 멈추고 등장인물들이 배경지식 등을 설명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중간중간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들(예를 들어 아이폰의 발명)도 그런 분위기를 강화했던 것 같다. 금융위기 전후의 일련의 사건들이 너무 극적이어서 최대한 등장인물들의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하게 '아, 이 영화가 극영화이구나'하고 느낄 수 있었던 건 브래드 피트가 등장하는 부분에서였다. 배가 나오고 수염이 덥수룩했지만 극중 이름이 브래드 피트였어도 별로 위화감이 없었을 것 같다. 스티브 카렐이 등장하는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그못 알아봤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쩐 일인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객관적 수치만을 믿는 외골수 박사가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그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한창 금융공학에 관심이 있던 2010년에 샤이아 라보프가 나오는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를 봤었다. 금융위기 직후에 제작된 영화여서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오로지 인간의 탐욕! 그리고 그 해결책은 가족주의! 라는 식으로 맺고 끝낸 것이 무척 실망스러웠다. 그에 비하면 '빅쇼트'는 금융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비교적 냉엄하게 분석하고 금융시장 전체에 만연한 비합리성과 도덕적 해이를 자세히 그린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금융시장의 붕괴에 베팅한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던 내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꼈다는 거다. 금융시장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들을 비웃는 사람들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웃을 수 있나 두고보자 했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2008년, 2009년의 경제위기를 간접적으로 체험했던 주제에 어서 붕괴시점에 도달하기를 바랐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금융시장만 부도덕한 게 아니라 나도 부도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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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와 지지난 주에는 집에서 네이버를 통해 영화를 다운받아서 봤다. 졸업하려고 거의 2년 동안 영화를 안 보다시피 하다 보니 영화 보려고 시간 내는 게 귀찮게만 느껴졌는데, 주말마다 한 편씩 보니까 또 재밌다. 이번 주말에는 극장에 가봐야겠다.


1. 소셜포비아(2014)

 연말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을 때, 말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고등학교 동창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언젠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이고를 떠나서 대사와 사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밑바닥까지 보여주려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건 알겠지만, 너무 거칠고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불편하다는 것은 꼭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2. 행복한 사전(2013)

 일본영화 특유의 감성이 싫어서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일본 아카데미상을 휩쓴 작품이라고 해서 봤다. 역시...고통스러웠다. 중간중간 딴짓을 해서 몇몇 대사들은 아예 알아듣지도 못했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정말 아무런 사건도 위기도 없이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 미야자키 아오이가 이혼을 요구할 거라는 어처구니 없는 기대까지 했었다. 몇 년에 걸쳐 사전을 편찬하는 작업을 한다고 해서 언어로 세상을 빚어내는 과정을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로지 낱말을 수집하고 의미를 수정하는 데서 생겨나는 장인정신에만 집중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무튼 원작도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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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며칠 전에 책을 또 샀다.

 

유학 가기 전에 영어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영어책을 사면서 저번에 사려고 했다가 안 산 책들을 몇 권 더 샀다. 매달 책을 사는 건 직장인들이나 감당할 수 있는 습관인데 참 대책이 없다.

 

새로 산 책:

1. 글쓰기의 최소원칙(도정일 외): 지난 일 년간 글 쓸 일이 많아서 제대로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다.

2. Advanced grammar in use with answers(Hewings)

3.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탈로 칼비노): 저번에 읽었던 나무 위의 남작이 재밌어서.

4. 리퀴드 러브(지그문트 바우만):

이 책을 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읽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 전에 읽었던 바우만의 여러 책들이 떠올랐고 특별히 반짝이는 부분을 발견한 것 같지 않았는데 지나고 나서 여러 다른 책에서 인용된 것들을 보다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얼떨결에 샀다.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르겠지 뭐.

 

 

1. 데미안(헤르만 헤세): 만약 나도 소설을 쓴다면 이렇게 명징한 글을 쓰고 싶다.

2.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

3. 키친(요시모토 바나나): 여러 번 읽었던 책인데, 커서 보니까 더 좋은 것 같다.

4. 들뢰즈 이해하기(클레어 콜브룩): 데미안부터 키친까지 빠르게 읽고 맞닥뜨린 암초같다. 다 읽는 데 일 주일이나 걸렸고 당연하게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5. 카탈로니아 찬가(조지 오웰): '판의 미로', '유럽사 산책' 등 스페인 내전에 관한 텍스트를 접한 이후에 읽고 나니 그 시대가 조금은 이해된 것 같다. 전투 장면보다도, 급작스럽게 상황이 바뀌면서 조지 오웰이 귀국해야만 했던 끝부분이 더 안타까웠다.

6. 황금물고기(르 클레지오): 기구하다 기구해

7. 신자유주의의 위기(제라르 뒤메닐): '들뢰즈 이해하기'가 비극의 시작이었다면 이 책은 비극의 정점이다. 다 읽는 데 9일이나 걸렸다. 저자가 목표한 독자의 수준을 잘 모르겠다. 거시경제학의 기초인 화폐정책을 한 페이지 가득 설명하면서도 금융상품에 대해서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아직도 ABS가 뭔지 모르겠다.......게다가 "자세히 알아보자" 다음에 별 다른 설명없이 다른 주제로 넘어가 버린 부분도 있어서 황당했다. 그러면서도 신자유주의의 경향(이라기보다는 2008년 경제위기-대수축 전후의 경제체제의 실태라고 보는 것이 맞지만)과 경제위기의 전개 등에 관해 비교적 충실히 설명한다. 

8. 단 한 권의 책(김형중) 

9. 촘스키, 실패한 국가 미국을 논하다(노엄 촘스키)

10.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철학 아카데미):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입문서답게 비교적 쉬운 책이다. '악마의 창녀', '철학자들', '들뢰즈 이해하기', 그리고 라캉에 관한 슬라보예 지젝의 저서에 이르기까지 몇 번을 읽어도 이해 못했던 철학자들의 사상이 이해되어서 감격스러웠다.

11.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맹 가리): 왜 이렇게 하나같이 답답하고 짜증나니

12. 늑대(전성태): 이 책을 읽고 나니 몽골에 대한 약간의 환상과 함께 가보고 싶던 생각이 사라졌다. 소설 자체의 완성도를 떠나서 그나마 희망이 엿보이고, 그나마 덜 비열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중국산 폭죽', '코리안 쏠저'가 가장 좋았다.

13.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 무신론을 반박하는 신학자들의 사소한 의견 하나하나까지 반박하는 것을 보다보니 싸움닭같다는 생각도 했다. 수잔 블랙모어니, 리처드 스윈번이니 다른 여러 책에서도 등장했던 사람들이 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역시 지식인의 사회는 좁은가보다(?!?!??!).

14. 도둑맞은 편지(에드거 앨런 포): 연초에 라캉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고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학교 도서관을 드나들 수 있는 특혜를 누리면서 읽었던 '우울과 몽상'이 생각났지만 지하철, 버스에서만 책을 읽는 주제에 짐을 너무 늘리면 안되겠다 싶어서 읽었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에 속해있는 책인데, 보르헤스가 기억하는 내용을 적은 건지 예전에 읽었던 것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다.

15. 몬스터 멜랑콜리아(권혁웅): '사랑의 단상'의 오마주를 빙자한 세계(특히 일본) 괴물들에 관한 책이다. 일본의 귀신이 이렇게 많은줄 몰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질투, 외설이 좋았다. 당분간 책을 안 사려고 하고 있지만 이 책은 꼭 사서 다시 읽고 싶다.

16. 다이어트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팻 FAT(돈 쿨릭, 앤 메넬리): '다이어트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아까울 만큼 한없이 얄팍하고 가볍다. 어느 파트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라틴아메리카 어딘가에서 인디언의 엉덩이 부위의 지방을 강제로 빼앗아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산품을 생산하는 데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정말인지 의심스럽다.

17. 유럽의 교육(로맹 가리): 나는 같은 작가의 책을 세 권 이상 자발적으로 찾아읽으면 그 작가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드디어 나도 로맹 가리의 팬이 된 것 같다. 로맹 가리의 대표작은 '자기 앞의 생''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데, '자기 앞의 생'은 아직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읽은 '가면의 생',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보다 데뷔작인 이 책이 더 좋았다. 나치 독일군이 적으로 상정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폴란드 빨치산이 절대적 선()으로 묘사되지 않고, 전쟁을 온몸으로 겪는 그들의 모습이 아무 감정 없이 건조하게 서술되어 있다.

18.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 예전에 읽었던 우디 앨런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와는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내가 너무 세속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차라투스트라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한 줄 한 줄 적어놓고 싶은 구절이 참 많았다(특히 초반부의 ''에 대한 부분). 만약 정말로 초인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정신나간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요즘 소설들과는 달리 주제의식이 너무 뚜렷하고 그걸 소설 속 화자가 아주 직접적으로 말해서 근대소설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긴 1976년 작품이면 그럴 만도 하지...조 원장이 정말로 잘못한 건 무엇이었나를 좇으며 읽다가 어쩌쩌 나병 환자들의 천국은 절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0.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은희경):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매번 헷갈려서 안 읽은 책이었다. 난이도가 높은 단편들은 아니었다. 맨 처음에 실린 '의심을 찬양함''이거 판타지 또는 스릴러인가'하고 흥미를 가지려던 찰나에 끝나버려서 아쉬웠다. 장편으로 늘리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겠지만 장편으로도 읽어보고 싶다. 표제작인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처음에 완전히 잘못 읽고,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가 아버지에게 건강한 장기를 이식해주려는 것인줄 알았다.

21.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단 한 권의 책'의 찬사를 읽고 다시 봐서 그런지 예전에 읽었을 때보다 더 아름다웠다. '별자리식 구성'이 뭔지 알 것 같다. 정민이와 ''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그 전엔 왜 몰랐을까 아마도 대충대충 읽었나보다).

22. 비평가의 사계(김윤식): 신형철, 김형중의 비평집에 매료되어 읽었는데 아아 이것은 비평집이 아니라 산문집이었다는 것을 거의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비평집을 좋아하게 된 건 다양한 문학 이론과 좋은 책들을 소개받고 찾아 읽으면서 똑똑해지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는데, 이 책은 문학 이론에 깊숙이 들어간다기보다는 작가의 체험과 관계된 문학사를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3 때 교과서에 있는 근현대 문학사 부분이 좋아 몇 번이나 읽고 고등학교 문학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했으면서 카프(KAPF)는 처음 듣는 나의 무식함에 좌절했다.

23. 에고트릭(줄리언 바시니): 처음 읽었을 때는 자아가 핵심을 가진 어떤 형태를 띈 것이 아닌, 신체기관들의 기계적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는데, 다시 읽고 나서 머리에 남은 것은 '자아는 연속된 기억의 사슬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므로 노화를 자연스러운 미덕으로 여기는 건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피부 탄력이 급격히 떨어진 것 같은 요즘 계속 곱씹게 되는 부분이다.

24. 마술 가게(H. G. 웰스): 초등학교 6학년 때 '타임머신'을 재밌게 봐서 기대하고 읽었다. '타임머신'같은 미래지향적인 판타지가 아닌, 기괴하고 마술적인 판타지라서 어리둥절했지만 재밌었다. 몇 작품 실리지도 않았지만 드물게 실린 작품들이 전부 재미있었다.

25. 환상동화(프란츠 카프카 외): 제목만 보고 '근친상간 버전의 백설공주' 같이 잘 알려진 동화들을 비튼 책인 줄 알고 안 읽었는데 '몬스터 멜랑콜리아'에서 여러 번 인용되기에 궁금해서 읽었다. 이제 보니 완전히 오해한 것이었다. '심장 피의 동화'가 이상하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장미정원과 힌첼마이어'도 그랬는데, 읽는 내내 까마귀 이 XX는 왜 착한 사람을 죽을 때까지 괴롭히나 내가 다 억울했다.

26.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김연수): 내가 생각하는 김연수 작품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진 것 같은 단편집이었다. 수록작 면면이 손이 가는 대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자기가 쓰고 싶은 주제가 뭔지를 끈질기게 생각하고 그 주제를 여러 방식으로 반복해서 쓴듯이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묶인 인상을 받았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실제와 기억의 괴리를 말했다면, 이 책은 실제의 역사와 기록으로 남은 역사의 간극을 말한다. '뿌넝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한 달'이 아니라 '한달'일까 궁금했는데 찾아보니 '한달'도 허용된단다),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이 특히 그렇다.

27. 논쟁(크리스토퍼 히친스): 596쪽에 달하는 두께에 비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다만 내가 이전에 '유럽사 산책''한밤의 아이들'을 읽지 않았어도 그랬을까 의심스럽다. 정말 명성에 걸맞게 다양한 잡지에 글을 쓴 양반인데, 어째서 여성지인 '배니티 페어'에 여성의 재미없음에 관한 칼럼을 썼을까 궁금하다. 미국의 외교정책과 중동 정세에 관해서는 촘스키('실패한 국가 미국을 말하다')의 입장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어 흥미로우면서도 자기 주장이 굉장히 세고 노골적이라서 불편한 부분도 있다.

28. 나를 보내지마(가즈오 이시구로): '남아있는 나날' 만큼이나 답답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혁명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자기 목숨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초연할 수 있는지는 이해가 잘 안된다.

29. 무신예찬(피터 싱어, 마이클 셔머, 그렉 이건): 여러 사람들의 글을 모아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수준의 편차가 무척 크다. 초반부를 읽을 때는 내가 이 책을 계속 읽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뒤로 갈수록 심도 있는 글이 많아서 재밌게 읽었다.

30. 초조한 마음(슈테판 츠바이크): 소설에서 간만에 보는 우유부단한 남성상이라 느낌이 새로웠다. 앞부분에서 묘사된 사건들이나 인물들보다도, 종반부에서 우연에 의해 휘몰아치는 전개가 더 인상깊었다.

31. 알레프(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은 읽어놓고도 무슨 내용이었는지 머릿속에 잘 안 남았는데 이 책은 재밌다고 느낄 정도로 좋았다. 미노타우로스 얘기가 나오는 단편이 가장 마음에 든다.

32. 한밤의 아이들2(살만 루쉬디): 1권에서는 언급된 적 없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가족들의 비극이 너무 담담하게 그려져 있어서 소름끼쳤다. 덤으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근현대사를 공부하게 된 것 같다.

33. 롤리타(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두 번인가 도전했지만 역겨워서 끝까지 못 읽었는데 순전히 히친스의 '논쟁'에서 언급된 것을 보고 다시 도전해서 결국엔 다 읽었다. 화자인 험버트가 자신이 돌로레스의 삶을 완전히 망쳐버렸다는 것을 나중에라도 알게 되어서 비록 소설일 뿐이라고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덧붙인다면 돌로레스가 소아성애의 대상이 된 것은 돌로레스가 어떤 특별한 성적 매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돌로레스를 본 험버트의 음험한 시선 때문이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 아이가 비틀린 성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순전히 성적 매력을 읽어낸 사람의 문제다.

34. 인간생태보고서(한나 홈스): 원제가 '잘 차려입은 유인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책에서는 인간을 유인원에 빗대어 묘사하지 않아서 우리말 제목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다. 뒤로 갈수록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35. 사랑의 단상(롤랑 바르트): 두 번째 읽은 건데 처음 읽었을 때보다도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그냥 읽는 것보다도, 따로 적어놓고 싶은 구절들이 많았다. 

36. 의식의 재발견(마르틴 후베르트): 뇌에 관한 책들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인 '에고 트릭'과 상당 부분 겹치지만 사회 속에서의 자아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서는 인간의 자아를 마냥 기계적 기관들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37. 기계가 된 몸과 현대 건축의 탄생(임석재): 30쪽부터 50쪽까지가 페이지가 온통 섞여 있어서 너무 짜증이 나서 더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엔 읽었다. 철학의 인식론의 발전에 따라 건축 기술이나 형태가 변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38.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지그문트 바우만): 2장까지는 서론의 내용이 반복해서 나와서 '이해할 때까지 계속 말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한 민족이 어떤 계기에 의해 돌출의 형태로 홀로코스트를 행한 것이 아니라, 어느 때보다도 효율적이고 분업화된 사회에는 그것을 제재할 만한 수단이 없어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39. 숨그네(헤르타 뮐러): 장편소설보다는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처럼 수용소에서의 여러 에피소드들을 나열한 소설이다초반부부터 화자가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명시해서 안심하고 읽었는데 수용소에서보다 수용소를 나와서의 삶이 더 참혹한 것 같다고 느꼈다

40. 터부(하르트무트 크라푸트)

41. 통섭(에드워드 윌슨): 신의 존재에 근거하여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입장과 대치하는 이론들을 리처드 도킨스로 대표되는 계몽주의, (철저히 이 책만 봤을 때) 에드워드 윌슨으로 대표되는 불가지론 등의 위치를 머릿속에서 배치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놓고도 이해 못하고 있던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을 확실히 정립하게 된 것은 또 다른 수확이다. 

42. 거울 속의 거울(미하엘 엔데): '모모', '끝없는 이야기' 등 주제나 표현이 간명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중반부까지는 무슨 내용인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교실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등장인물들과 이야기들이 형태만 달리 해서 나타나는 식으로 각 이야기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위상수학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예로 도너츠와 손잡이 달린 머그컵이 위상적으로 같은 도형이라고 말하는 것이랑 비슷하다고 표현한다면 제대로 된 설명일까.

43. 이방인(알베르 카뮈)

44.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지그문트 바우만): 바우만의 많은 책들이 얇은 편이긴 하지만 이 책은 특별히 더 얇다. 제목만 알고 도서관에 가서 찾다가 깜짝 놀랐다. 심지어 초반부에는 글의 밀도도 낮아서 원래 두꺼운 책의 한 장()으로 쓴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경제적 불평등을 부추기는 정부의 정책을 다소 공격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45. 나르치스와 골드문트(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수레바퀴 밑에서'의 두 주인공을 한 데 모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두 주인공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앞선 두 작품의 주인공들과 닮아있다. 찾아보니 '수레바퀴 밑에서'1906,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 '유리알 유희'1943년 작품이라고 한다.

46. 거짓된 진실(데릭 젠슨): 서문부터 참혹한 사건을 언급해서 계속 읽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대체 왜 절판됐는지??). 언젠가 읽었던 촘스키의 '촘스키 실패한 국가 미국을 말하다'(이 책도 역시 절판됐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읽었던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이 책도 절판됐다)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47. 모두 다 예쁜 말들(코맥 매카시): 이전에 읽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핏빛 자오선'과 비슷한 정도로 잔혹하지만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대화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따옴표로 묶인 대화가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여러 사건들이 숨가쁘게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굉장히 정적이다. 존이 수용소에서 그를 암살하려는 소년과 싸움을 벌이는 부분이 제일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48. 소설의 이론(게오르크 루카치): 와 정말 어렵다. 그리스 소설을 설명하는 부분은 너무 이해가 안 돼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노발리스, 플로베르 등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돈키호테'는 학부 때 우리 나라 스페인 문학의 권위자이신 민용태 교수님의 교양 수업 때 배웠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도스토예프스키를 현대소설의 새로운 가능성 내지는 시작으로 본 부분은 굉장히 놀라웠는데, 루카치의 안목에 놀랐다기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루카치가 비슷한 시대의 사람이라는 것에 놀랐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동시대를 살았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는 것이, 도스토예프스키는 1821년에 출생하여 1881년에 사망했고 루카치는 1885년에 출생하여 1971년에 사망했다).

49. 문학이란 무엇인가(장 폴 사르트르): 프랑스의 작가들의 포지션이 사회의 변화에 따라, 주된 독자층에 따라 달라진 것을 목격하는 것도 즐거웠고 당시 사르트르를 공격했던 여러 작가들을 신랄하게 논박한 것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50. 목소리의 結晶(롤랑 바르트): 너무 어려워서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를 먼저 읽고 읽었더니 훨씬 이해가 쉬웠다.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코드화된 대중 문화를 디코드(decode)해서 읽으려는 시도가 롤랑 바르트 사상의 기조였다는 건 알겠다. 어떤 면에서는 다른 철학자들에 비해 명료하다고 느꼈다(절대 쉽다는 뜻이 아니다).

51.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우치다 타츠루): 지금까지 읽은 구조주의 철학 책들 이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그 먼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쉽다. 구조주의의 큰 틀 안에서 다른 분야에서 활약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52. 은밀한 생(파스칼 키냐르): 소설이라고 보기에도, 에세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책이다. 처음에는 현재의 사랑을 얘기하는 줄 알았더니, 그리고 다음에는 과거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더니, 밀란 쿤데라의 잠언 같은 구절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읽으면서 그 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음 그랬나?' 했다. 

53. 리퀴드 러브(지그문트 바우만): 바우만의 책을 몇 권이나 읽고 또 쓰는 건지 모르겠다. 그 만큼 바우만의 책을 좋아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동어반복적인 것 같다고 느낀다. 모든 것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하에서 어느 한 곳에 묶이지 않고 쉽게 변한다는 것이 씁쓸했다.

54. 번역한다는 것(움베르토 에코): 내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읽었을 것 같다. 번역은 단어 하나하나를 대응시켜가며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55.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제롬 뱅데): 세계화, 과학의 발전 등이 인류의 가치관과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여러 석학들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부제가 '유네스코, 21세기의 대화, 세계의 지성 49인에게 묻다'인데 글을 두 개 이상 쓴 저자들이 꽤 있어서 정말인가....? 싶다. 저자들 이름값 만큼 좋은 글들이 많은데 하나의 주제 안에 여러 명의 글이 있다보니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서 지겨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 장마다 그 장에 있는 글들을 요약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56. 몰락의 에티카(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정확한 사랑의 실험'만 보고 읽기에는 굉장히 깊고 넓은 책이었다. 초반부터 라캉, 바디우 등의 철학자들이 인용되는 것을 보고 이게 본격적인 평론이구나 싶었다. 난 시는 거의 읽지 않고 소설을 많이 읽어서 아는 시가 별로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시들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을 했다.

57.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지그문트 바우만): '액체근대', '유행의 시대' 등에서 본 듯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회의 변화를 해설한 이전의 책들과는 달리 여성 잡지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글들답게 유동성이 사회 곳곳에 어떤 식으로 침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바우만의 이론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8. 미사고의 숲(로버트 홀드스톡): 분위기가 음침하다. 프롤로그부터 무슨 내용이지...? 하고 호기심을 갖고 읽고 있었는데 로빈 후드 얘기가 나와서 좌절했다. 여기서 그만둘 수도 있었지만 참고 읽다보니 중세, 또는 더 이전의 서양 판타지 세계관이 흥미로웠다. 사람이 새로 변한다는 건 미국 원주민들의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켈트 신화와도 상관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59. 무의미의 축제(밀란 쿤데라)

60.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그램 질로크):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어보려고 빌렸는데 가독성이 너무 안 좋아서(왜 그런지는 책을 펼쳐보면 안다) 대신 이 책을 읽어보았다. 낯선 곳을 보는 어린이의 시선으로 도시를 보는 발터 벤야민의 생각이 흥미로웠다.

61. 나무 위의 남작(이탈로 칼비노):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보고 칼비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싶어서 읽어보았다. 굉장히 유쾌하고 재미있는 책이지만 "왜 멀쩡한 녀석이 반항한답시고 나무 위에 올라가나?" 하는 의문을 품는 순간 아무 재미도 못 느끼게 될 것 같다.

62. 믿음의 엔진(루이스 월퍼트): 인간이 왜 종교를 믿는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하여 믿음이 인간의 문명을 일으켰고, 잘못된 믿음이 어떻게 정신병의 형태로 나타나는가를 굉장히 흥미롭게 풀어서 쓴 책이다. 따지고 보면 종교보다는 과학, 특히 뇌과학에 관핸 책이다. 올해 들어 무신론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고 있는데, 이 책은 신이 없다는 주장을 밀어붙이지는 않지만 왜 사람들이 종교를 믿을 수도 있게 되었는지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63. 마교사전1(한소공): 지식청년들이 시골로 보내지는 시대상을 처음부터 장황하게 서술하는 대신, 여러 키워드들로 이루어진 각 장에서 지식청년인 화자가 관찰한 마교 사람들의 생활 등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64. 오늘의 사회이론가들(김문조, 김원동, 유승호, 김철규, 김남옥, 박수호, 박희제, 정일준, 김종길, 이재혁, 민문홍, 정헌주, 김무경, 유승무, 하홍규, 조주현, 함인희, 박형신):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면 저자가 '김문조, 김원동, 유승호 외 2'이라고 되어 있는데, 머릿말만 쓰신 김문조 교수님 성함은 표기하면서 다른 교수님들 성함은 안 쓰는 것은 엄청난 결례라고 생각한다. 머릿말을 인용한다면, 위르겐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2세대 사회학자들 이후의 3세대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여러 명의 사회학자들이 쓴 책이다. 사회학 입문서로 손꼽히는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사회학'을 먼저 읽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번역서들을 읽으면서 '글이 왜 이래....'하고 한숨이 나올 때가 많았는데 명료하게 잘 써진 문장들을 읽는 것이 좋았다.읽으면서 특히 관심이 갔던 학자들은 리처드 세넷, 니클라스 루만, 제임스 콜만, 피터 버거, 에바 일루즈 등이었다. 특히 피터 버거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따로 메모도 많이 했고, 참고문헌에 있던 '실천적 전환에 대한 비판적 고찰: 기든스와 부르디외를 중심으로'라는 학술논문도 읽어보려고 인쇄해뒀다.

65. 감정 자본주의(에바 일루즈): '오늘의 사회이론가들'을 다 읽기 전에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꽤 얇은 두께에 그리 어렵지 않는 문장이었는데도 빠른 속도로 읽히지는 않는 책이었다. 기업경영에서의 감정적인 부분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이론에서 시작하여,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하나 이상은 감정/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믿음이 어떻게 심리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는지 설명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인터넷에서의 감정, 특히 사랑에 관한 마지막 장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별한 사랑을 꿈꾸지만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마는 것은 규격화된 특질로 자신을 선전하는 사람들 뿐이라는 것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66. 글로벌 위험사회(울리히 벡): 반쯤 읽고 나서야 '위험사회'를 먼저 읽고 읽었어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의 유명한 이론인 '위험사회론'을 전 지구적으로 적용하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위험이 danger가 아니라 risk라는 것을 읽는 도중에 알았다. 사회 발달이나 지식 발전에 의하여 발생하는 위험이 세계에 이로울 수도, 해로울 수도 있고, 어떠한 사회현상을 국가의 이익에 따라 위험으로 인식할 수도,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해서 위험도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덧붙임: 번역은 최악이다. 사회학 용어는 내가 알 길이 없으니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인 조사나 문장 호응조차 틀린 부분이 많아서 읽다가 턱턱 걸린다. 이런 블로그 포스팅을 할 때에도 몇 번씩 퇴고를 하는데 책, 특히 전문서에 있어서는 그것이 더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67. 월플라워(스티븐 크보스키): 몇 번이나 읽은 건지 모르겠다. 사회학 책들만 연달아 읽어서 피폐해진 머리를 식혀줬다.

68. 사랑은 왜 불안한가-하드코어 로맨스와 에로티즘의 사회학(에바 일루즈):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사회학적으로 해석했다. '그레이' 시리즈를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소재도 소재지만 '트와일라잇'보다 글이 별로라고 해서 안 읽었는데('트와일라잇'도 겨우 다 읽긴 했지만 크게 실망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렇게 대단한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로맨스 소설에 자율성을 잃지 않으려는 여성의 노력을 담은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69. 호모 사케르(조르주 아감벤): 죽어도 무방한 죽음, 죽어야만 신성화될 수 있는 죽음.

70. 돈 끼호떼1(미구엘 드 세르반테스): 읽는 내내 이 정신 나간 사고뭉치 양반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두들겨 맞아도 금방 회복하는 것이 신기했다.

71.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우치다 타츠루): 레비나스의 '자칭 제자'인 저자가 레비나스의 사상을 비교적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유대교의 가르침이 구전을 통해 스승에게서 제자로 전해지는 것으로부터 타자성의 모델을 인식하고, 자아가 타자에 대한 의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레비나스의 생각을 전달한다. 또한 남성 위주로 전개된 레비나스 현상학을 비판한 보부아르 등의 여성 철학자들을 반박한다.

72.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 뒤에 실린 '3기니'의 분량이 더 많은데 어째서 '자기만의 방/3기니'가 아닌 '자기만의 방'이 이 책의 제목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 중이던 시대였는데도 여성이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도 없었다는 것이 의문스러웠다.

73. 고양이 대학살(로버트 단턴): 앞의 '빨간 모자' 이야기를 보고 여러 민담들로부터 시대상을 읽는 책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여러 기록들을 통해 18세기 프랑스 사람들의 삶을 분석해낸 책이다. 한 장 한 장이 재밌던 책이었다.

74. 언더그라운드(무라카미 하루키):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너무 어렸을 때 일어났던 일이라 얼마나 큰 파장이 있었던 일인지도 몰랐는데 보는 내내 끔찍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 간부들에 대한 피해자들의 복수심이 크지 않다는 것이 놀라웠다.

75. 느낌의 공동체(신형철)

76. 계몽의 변증법(테오도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읽는 내내 굉장한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지는 않다. 메모라도 해뒀으면 좋았을 텐데. 1월 중에 다시 읽어보고 글로 써볼 예정이다.

77. 가짜 팔로 하는 포옹(김중혁): 그 전에 읽었던 김중혁의 단편들보다도 아름답다. 아직도 왜 이 책이 '김중혁의 첫 연애소설집'인지 이해는 안 되지만 말이다(''이 문제가 아니라 '연애'가 문제다). 표제작인 '가짜 팔로 하는 포옹'에서 "정윤이 누르고 있던 의자 등받이의 천이 아주 천천히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중략) 의자 등받이의 천은 아직도 복구되는 중이었다."라는 구절이 이상하게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보트가 가는 곳', '요요'는 이게 김중혁의 소설이 맞나 싶으면서도 가장 좋았다.

78. 마교사전 2(한소공): 왜 이렇게 마교 사람들의 말로는 하나같이 비참한가 모르겠다.

79. 현대사회학(앤서니 기든스): 2009년에 출판된 5판으로 읽었다. 올해 81권 밖에 못 읽은 건 순전히 이 책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 게으름 탓이다. 책은 거의 버스나 지하철에서만 읽는데, 11, 12월을 무지막지하게 게으르게 살면서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니까 책을 안 읽었다. 덕분에 이 책을 다 읽는 데에만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고(127일부터 1228일까지) 막판에는 책을 많이 못 읽을까봐 집에서까지 읽어야 했다. 그 전에 읽었던 사회학 책들에 비하면 확실히 쉽고, 우리의 삶에 더 밀착되어 있는 책이지만, 애초에 사회학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 사회학을 조금이나마 맛보고 싶다고 708쪽이나 되는 이 책을(최근에 출판된 2014년판은 1100쪽에 달한다) 읽을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인 것은 분명하지만 책이 무척이나 두껍고, 거기다 2단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고 시작해야 하겠다.

80. 에로스의 종말(한병철): 지난 몇 년간 다양한 철학책들, 특히 프랑스 현대철학에 관한 책들을 읽었던 것은 이 책을 읽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는 이 책이 다른 책들에 비해 우월하다는 뜻도 아니고, 이 책이 단지 그 전의 책들을 요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몇몇 언론사들이 왜 이 책을 일반 독자들을 위한 권장도서로 선정한 것인지 의아할 뿐이다. 용어해설까지 110쪽밖에 안 되고 심지어 double-space로 된 적은 분량의 책이지만 그 안에 망라한 이론들과 생각은 버겁기까지 하다. 자본주의, 성과사회에서 타자의 부재와 죽음의 부정성이 제거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한다. 또한 이론보다 데이터에 의한 분석이 더 강조되는 사회에서 왜 이론이 중요한지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은 특히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81. 골렘(구스타프 마이링크): 소설 전체의 음울하고 신비한 분위기에 빠져 있다가 뒤에 실린 저자와의 가상 인터뷰를 읽고 확 깨는 책이었다. 책의 줄거리와 주제를 구구절절이 설명한 가상 인터뷰를 보고 내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을 읽은 줄 알았다. 다른 사람의 모자를 씀으로써 다른 사람의 체험을 마치 현실처럼 목격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졌다.

0.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발터 벤야민): 해제까지만 읽음;

 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안 했는데 또 샀다.


 원래 계획은 읽으려고 빌려놓은 책 두 권하고 저번에 산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다 읽고 나서 새로 사는 거였는데.


 아무튼 새로 산 책들은 이렇다.


1. 가짜 팔로 하는 포옹(김중혁)


2. 에로스의 종말(한병철)


3. 이방인의 사회학(김광기)-마지막까지 살까말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는데, 올 가을에 읽었던 책 중 이 책을 인용한 어떤 책이 계속 생각나서 결국 샀다.


4.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발터 벤야민)


5. 자유의 감옥(미하엘 엔데)


 갈수록 내 책꽂이가 뒤죽박죽이 되어가는 것 같다.

1. 무의미의 축제(밀란 쿤데라): 읽은 책 목록 보다보니 누락되어서 다시 적는다.


2.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그램 질로크):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어보려고 빌렸는데 가독성이 너무 안 좋아서(왜 그런지는 책을 펼쳐보면 안다) 대신 이 책을 읽어보았다. 낯선 곳을 보는 어린이의 시선으로 도시를 보는 발터 벤야민의 생각이 흥미로웠다.


3. 나무 위의 남작(이탈로 칼비노):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보고 칼비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싶어서 읽어보았다. 굉장히 유쾌하고 재미있는 책이지만 "왜 멀쩡한 녀석이 반항한답시고 나무 위에 올라가나?" 하는 의문을 품는 순간 아무 재미도 못 느끼게 될 것 같다.


4. 믿음의 엔진(루이스 월퍼트): 인간이 왜 종교를 믿는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하여 믿음이 인간의 문명을 일으켰고, 잘못된 믿음이 어떻게 정신병의 형태로 나타나는가를 굉장히 흥미롭게 풀어서 쓴 책이다. 따지고 보면 종교보다는 과학, 특히 뇌과학에 관핸 책이다. 올해 들어 무신론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고 있는데, 이 책은 신이 없다는 주장을 밀어붙이지는 않지만 왜 사람들이 종교를 믿을 수도 있게 되었는지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5. 마교사전1(한소공): 지식청년들이 시골로 보내지는 시대상을 처음부터 장황하게 서술하는 대신, 여러 키워드들로 이루어진 각 장에서 지식청년인 화자가 관찰한 마교 사람들의 생활 등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걸 쓰려다 2권을 아직 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6. 오늘의 사회이론가들(김문조, 김원동, 유승호, 김철규, 김남옥, 박수호, 박희제, 정일준, 김종길, 이재혁, 민문홍, 정헌주, 김무경, 유승무, 하홍규, 조주현, 함인희, 박형신):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면 저자가 '김문조, 김원동, 유승호 외 2명'이라고 되어 있는데, 머릿말만 쓰신 김문조 교수님 성함은 표기하면서 다른 교수님들 성함은 안 쓰는 것은 엄청난 결례라고 생각한다. 머릿말을 인용한다면, 위르겐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2세대 사회학자들 이후의 3세대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여러 명의 사회학자들이 쓴 책이다. 사회학 입문서로 손꼽히는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사회학'을 먼저 읽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번역서들을 읽으면서 '글이 왜 이래....'하고 한숨이 나올 때가 많았는데 명료하게 잘 써진 문장들을 읽는 것이 좋았다.읽으면서 특히 관심이 갔던 학자들은 리처드 세넷, 니클라스 루만, 제임스 콜만, 피터 버거, 에바 일루즈 등이었다. 특히 피터 버거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따로 메모도 많이 했고, 참고문헌에 있던 '실천적 전환에 대한 비판적 고찰: 기든스와 부르디외를 중심으로'라는 학술논문도 읽어보려고 인쇄해뒀다.


7. 감정 자본주의(에바 일루즈): '오늘의 사회이론가들'을 다 읽기 전에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꽤 얇은 두께에 그리 어렵지 않는 문장이었는데도 빠른 속도로 읽히지는 않는 책이었다. 기업경영에서의 감정적인 부분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이론에서 시작하여,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하나 이상은 감정/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믿음이 어떻게 심리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는지 설명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인터넷에서의 감정, 특히 사랑에 관한 마지막 장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별한 사랑을 꿈꾸지만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마는 것은 규격화된 특질로 자신을 선전하는 사람들 뿐이라는 것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8. 글로벌 위험사회(울리히 벡): 반쯤 읽고 나서야 '위험사회'를 먼저 읽고 읽었어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의 유명한 이론인 '위험사회론'을 전 지구적으로 적용하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위험이 danger가 아니라 risk라는 것을 읽는 도중에 알았다. 사회 발달이나 지식 발전에 의하여 발생하는 위험이 세계에 이로울 수도, 해로울 수도 있고, 어떠한 사회현상을 국가의 이익에 따라 위험으로 인식할 수도,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해서 위험도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덧붙임: 번역은 최악이다. 사회학 용어는 내가 알 길이 없으니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인 조사나 문장 호응조차 틀린 부분이 많아서 읽다가 턱턱 걸린다. 이런 블로그 포스팅을 할 때에도 몇 번씩 퇴고를 하는데 책, 특히 전문서에 있어서는 그것이 더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9. 월플라워(스티븐 크보스키): 몇 번이나 읽은 건지 모르겠다. 사회학 책들만 연달아 읽어서 피폐해진 머리를 식혀줬다.


10. 사랑은 왜 불안한가-하드코어 로맨스와 에로티즘의 사회학(에바 일루즈):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사회학적으로 해석했다. '그레이' 시리즈를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소재도 소재지만 '트와일라잇'보다 글이 별로라고 해서 안 읽었는데('트와일라잇'도 겨우 다 읽긴 했지만 크게 실망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렇게 대단한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로맨스 소설에 자율성을 잃지 않으려는 여성의 노력을 담은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11. 호모 사케르(조르주 아감벤)(읽는 중): 아직 100쪽 밖에 안 읽어서 잘 모른다. 법은 예도 포함하고 예외도 포함한다는 설명에서, 두 영역을 가르는 초평면(hyperplane)과 전공간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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