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과제를 하고 다소 우울한 마음으로 9시가 좀 넘어서 집에 도착했다. 우울한 시점에선 우울한 감정이 한없이 크게 느껴지지만 그런 불안감이나 자조가 지금껏 한두 번 찾아온 것이 아니라서 이제 어느 정도 그런 감정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사실 가끔 찾아오는 안 좋은 감정보다 평소에 느끼는 즐겁고 편안한 마음이 더 커서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울하기도 하고,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나서 피곤한 것이 겹쳐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고, 옷을 갈아입다가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12시 43분이었다. 한참 잔 줄 알았는데 4시간도 채 못 자서 웃겼다. 근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때까지 저녁을 안 먹어서 사놓은 지 적어도 한 달은 넘은 것 같은 클램차우더 통조림을 열었다.



(다 먹은 통조림이 설거지통에 들어있는 모습)



  캠벨수프는 이번이 두 번째 먹어보는 거다. 버섯 수프는 처음엔 엄청 맛있었다가 갈수록 질려서 마지막 몇 숟갈은 무슨 맛으로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는 캠벨수프 통조림을 먹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우연히 클램차우더라는 음식의 이름을 알게 되어서 궁금해서 사봤다. 그래서 식당에서 파는 클램차우더 맛이 어떤지는 아직 모른다. 통에 써있는 대로 전자렌지용 그릇에 옮겨서, 전자렌지에서 3분 동안 데우고, 먹었는데 정말 너무 짰다. 그래서 우유를 좀 붓고 다시 데웠는데도 여전히 짜다(먹는 중). 그래도 우유를 더하고 나니 식감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짠맛이 강하긴 하지만 감자랑 조갯살이 큼직큼직하게 들어있어서 씹는 느낌이 좋다. 다음엔 우유를 더더더 많이 먹고 데워서 먹어야겠다.



 조립하는 데 세 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옆에 있는 건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배치한 스테들러 연필깎이다. 재미있었다. 봄 학기 끝나면 하나 또 사야지.

  한 주 내내 엄청 바빴다. 화요일 자정까지 내는 숙제 때문에 금요일 밤부터 고생하고, 금요일 3시 15분 수업시간까지 내는 숙제 때문에 며칠동안 학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다가 어제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해방되었다. 석사 때는 숙제가 많지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랑 공부나 숙제를 같이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동기랑 숙제를 같이 하지 않았다면 둘다 완전 망할 뻔해서 협업에 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1. 인테리어


  곧 블랙프라이데이라고 해서 어제 아마존에 딜 상품으로 올라온 것들을 보다가 갑자기 내 집이 너무 삭막하게 느껴졌다. 거실이나 부엌이나 침실이나, 장식품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한국에서 가져온 그림 엽서들, 예쁜 사진들 몇 개, 셰드 수족관에서 산 해달 인형, 주토피아 닉 피규어(쓰고 보니까 완전 많은데?)가 전부다. 안 그래도 혼자 살기엔 넓은 편인데 가구는 하나도 장만하지 않고 처음부터 있던 6, 70년대 미국식 것들을 그대로 쓰면서 꾸민 흔적조차 없으니 말 그대로 단지 생존만을 위한 공간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취방 인테리어'를 검색해서 보다가 여기엔 집 가까운 데서 자취에 필요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다이소같은 곳이나 무것운 것들을 완제품 형태로 집까지 무료배송해주는 온라인 쇼핑몰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유학생 인테리어'를 검색해보았다. 방 예쁘게 꾸며놓고 사는 사람들 많더라. 방 크기는 내 방보다 작은데 가구나 소품이나 하나같이 다 깨끗하고 예뻐서 부러웠다.


  하 근데 검색 막바지에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 방이 예뻐보이는 건 진짜 가구나 소품이 예뻐서 그렇기도 했지만 일단 정리정돈 상태가 훌륭하니 안 좋아보일 수가 없는 거였다. 그에 비하면 지금 내 집의 상태는......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장식품 사다가 짐 늘릴 생각하지 말고 정리상자같은 거나 사서 깨끗하게 정리부터 하자는 거였다.



2. payless


  오늘 늦은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payless에 갔다. payless는 처음 혼자 가보는 거였는데 이건 내 나름대로 굉장히 합리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1) 월마트에 가지 않고 페이리스에 간 이유

- 신선한 식품을 사기에 월마트는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에

- 페이리스에 무, 대파, 생강 등 아시아 채소가 많아서

- 맥주 사러 갔다가 동기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


2)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장을 보러 간 이유

- 맥주를 사러


3) 가까운 마켓에 안 가고 굳이 멀리까지 있는 페이리스에 간 이유

- 맥주를 사러


  결국 맥주가 그 험난한 길을 나서게 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 내가 사는 주에서는 일요일에는 술을 판매하지 않고, 술을 구입할 때는 반드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맥주를 살 거면 무조건 토요일에 장을 보러 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유들은 사연이 좀 복잡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가까운 가게에서 장을 보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멀리 있는 큰 마트에 가기로 한 이유 중 하나가 또 맥주다. 무슨 알콜중독자라도 되는 것처럼 썼지만 사실 일주일에 한 캔도 안 마신다. 가까운 가게의 채소가 상태가 좋긴 한데 지난 주까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여기엔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크래프트 맥주만 많다. 처음 사서 마셔본 건 하와이의 마우이 brewing company라는 곳에서 나온 6도짜리 맥주였는데 처음에는 워낙 맛이 강하고 알콜 도수도 높아서 잘 마시지 못 하다가 마지막 한 캔 남았을 때에야(6캔씩 묶음으로 된 것을 샀었다) 엄청 단 taffy 팝콘이랑만 어울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다음으로 샀던 것은 무슨 스카치 에일이었는데 알콜 도수가 8도로 아주 높은 편이어서 금요일에 저녁 먹으면서 한 캔을 마시면 꼭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새벽 두세 시 쯤 깨서 다시는 사지 않기로 했다. 어제 겨우 마지막 한 캔을 다 마시고 어김없이 초저녁에 자다가 깨서 이젠 좀 큰 마트에서 유명한 맥주를 사다가 마셔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월마트에서 맥주를 사면 안 됐다. 10월 초에 혼자 월마트에 갔다가 우연히 동기를 만난 적이 있었다. 뭐 그때보다 지금은 더 친하니까 마트에서 만나도 훨씬 덜 어색하겠지만, 인도인인 이 친구에게 술을 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인도에서 여자가 술을 사면 대놓고 손가락질을 받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착한 친구가 내가 술을 산다고 대놓고 욕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도 충격을 받는데 술을 사는 것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걱정이 되었다. 여러모로 내 행동의 기준이 되는 친구다.


  아무튼 그래서 30분 걸려서 페이리스에 도착했다. 식료품은 확실히 페이리스가 좋지만 다양한 상품을 구경하기엔 월마트가 더 재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맥주를 살 수가 없었다. 알콜을 파는 곳에 이르러서야 여권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나중에 쓰겠지만 이게 결국엔 엄청 다행스런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것들을 보는데 어제 사기로 마음먹었던 정리상자는 보이지도 않아서 채소 엄청 사고, 쌀 4.5kg 사고, 우유 사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버스는 거의 30분에 한 번 꼴로 오니까 일찍 나서봐야 좋을 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도 화장품 정리함과 욕실 코너 장식장을 발견해서 얼른 집어왔다.


  체크아웃을 하고 카트를 반납하고 짐을 드는데 이럴 수가 그제야 내 계산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생각은 물은 무거우니까 동네에서 사야지★였는데 우유도 동네에서 사야 했다. 우유 하프 갤런(1.89L)의 무게를 간과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고, 정리함과 장식장의 부피가 크다는 것을 뒤늦게 안 것이 또 하나의 실수였다. 짐을 들고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너무 무거워서 걸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올 때는 우유가 들어있던 비닐봉지가 터져서 안에 있던 것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하필이면 오늘 풋볼 경기가 열리는 날이라서 사람이 많았는데, 경기장 앞에서 장식장이 든 봉지가 터져서 쏟아지는 바람에 지나가던 학부생 몇 명이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느낀 해방감이란......


  장 봐온 것을 전부 정리하고 물을 사러 동네 마트에 갔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배낭과 여권까지 챙겨서. 500ml 병 24개짜리 물을 카트에 넣고 맥주 있는 쪽으로 갔는데 처음으로 내가 그 동안 맥주를 샀던 코너에 'CRAFT BEER'라고 쓰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크래프트 맥주를 따로 구분한 것을 보면 일반 맥주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캔 맥주는 전부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 아니면 버드와이저/버드라이트 24캔 묶음밖에 없었다(버드와이저 맛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그 무거운 24개를 사서 들고 올 수는 없지). 그런데 버드와이저 캔 옆에 마침 호가든과 스텔라 아르투아 병 6개들이 묶음이 보여서 얼른 스텔라를 집어왔다. 페이리스에서 원래 목적이었던 맥주를 사지는 못 했지만 결국에 맥주를 겟했다는 나름대로 괜찮은 결말이다.


  페이리스에서 올 때도, 동네에서 물과 맥주를 사서 들고 올 때도 개고생했지만 전부 잘 샀다. 잘 산 것 같다. 이번 주에 바빠서 요리를 거의 못 하는 바람에 지난 주에 장본 것들하고 오늘 사온 것들하고 하면 앞으로 2주 동안은 우유만 사오면 식료품 장을 더 안 봐도 될 것 같다.


  아 근데 결국 맥주는 못 마셨다. 병맥주를 샀으면 병따개를 같이 사왔어야 했는데 그걸 생각을 못 했다. 다음주에 우유 사러 갈 때 병따개도 같이 사와야겠다.



3.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영어 때문에 고생하면서 가장 절실히 느낀 것은 내가 영어권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들을 잘 알지 못 한다는 거였다. GRE나 토플 공부하면서 외웠던 단어들이나 전공에서 많이 쓰는 단어/표현들은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사용할 만한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오피스 아워 때 학생들에게 문제를 푸는 것을 알려주는 것보다 동기나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일상 대화를 할 때 더 막히는 부분이 많다. 처음에는 드라마를 보려고 했다가 내가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transparent, veep 전부 한 편씩만 봤다), 영화를 보면서 단어와 표현을 공부하기로 했다. 아마존 비디오에서는 자막도 같이 나오니까 잘 안 들리는 부분이 있으면 자막을 보면 돼서 이 이상 좋은 것이 없었다.


  오늘 본 '볼링 포 콜럼바인'도 같은 이유에서 본 거였다. 이전에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감독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은 논쟁을 일으키는 것을 즐기고 어떤 이슈에 관한 비주류적 생각을 떠들썩하게 주장한다는 그런 부정적인 쪽이었다. 아마 마이클 무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이 '화씨 911'이 화제가 되었을 때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본 이 영화는 굉장히 재치 넘치고, 직설적이고, 한편으로는 슬펐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있어서나, 신념에 있어서나 중요한 문제이지만 쉽게 입에 올리기 어려운 문제를 직접적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4. 택배


  8월 중순에 부모님이 우체국을 통해서 보내셨던 택배가 해운 사태 때문에 한 달 이상 한국에 묶여 있다가 이번 주 금요일에야 도착했다. 굉장히 기뻤다. 뿌듯했다. 찬장이 꽉꽉 찼다. 어떤 것들은 미국에도 다 있는 건데 몰라서 이것도 다 보내주세요 하고 말씀드렸던 것이 생각나서 우스웠다. 그리고 여기 와서 3개월 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서도 혼자 지내는 것에 적응이 되어서 어쩌면 난 처음부터 혼자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쓸쓸한 생각을 했었는데 택배를 받고 나니까 나도 가족이 있는 사람이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 그늘에서 살아왔다는 것이 기억났다. 앞으로 집에 더 자주 전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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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에는 워낙 숙제나 조교 업무 등 일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바람에 상태가 엄청 안 좋았다. 그러다보니 금요일에는 심지어 동기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세 번이나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었다. 내가 영어를 잘 못 해서 그런가, 컨디션에 따라 영어가 유난히 잘 되는 날이 있고 전혀 안 되는 날이 있다. 어쨌든 그래서 금요일에는 12시가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들어서 주말 내내 잠을 충분히 자면서, 심지어 낮잠까지 몇 시간씩 자면서 휴식을 취했다. 물론 이번 주에 더 큰 규모(?)의 숙제를 두 개나 더 내야 해서 이번 주도 지난 주와 비슷할 것 같다.


  나와서 산지 석 달이 넘어가면서 가족들하고 살 때는 느끼지 못 했던 소소한 즐거움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살림에 관해서는 주로 음식이 잘 됐거나 새로운 조리법을 스스로 터득했을 때 그런 즐거움을 느낀다. 3주 전이었나, 수도꼭지 필터를 갈았더니 난데없이 그 동안 수압이 약해서 조금씩밖에 나오지 않던 수돗물이 콸콸콸콸 잘 나오기 시작했다. 난 아무것도 안 하고 필터만 갈았을 뿐인데...? 아무튼 굉장히 놀랍고 행복했다.


  금요일에는 장을 보러 갔다가 Barley라는 곡물을 사왔다. 생긴 것을 보고 현미인 줄 알고 밥할 때 넣어서 먹으려고 샀다(방금 사전을 찾아보니 현미가 아니라 보리라고 한다). 여기 와서는 계속 검은 쌀과 노란색 퀴노아를 넣고 밥을 해서 한 번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밥이 달다. 보리를 안 불린 상태에서 밥을 해서 그런가 약간, 아주 조금 딱딱한 느낌이 있긴 한데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기대한 것 이상으로 밥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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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오전에 학교에 갔는데 도시락 데우러 나왔다가 열쇠를 연구실 안에 두고 문을 잠가서 두 시간 만에 집에 왔다. 할 것도 많은 주제에 잘 하는 짓이다, 어제 내내 놀아놓고 진짜 어쩌려고 그러냐, 등등 별의별 생각을 다 했는데 막상 집에 와서는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았으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목요일에 보는 시험 공부를 좀 하다가 낮잠을 한 시간 자고 일어나서 청소를 하고 집에 있는 채소(고구마, 감자, 그린빈, 브로컬리, 파)를 전부 손질해서 일부는 삶고(고구마, 감자), 브로컬리는 저녁 때 먹을 만큼만 잘 데치고 나머지는 살짝 데쳐서 냉동실에 넣어놨다. 그린빈은 잘 삶았고 파는 다 썰어서 냉동실에 넣었다. 그리고 된장찌개를 끓여서 냉장고에 있던 불고기(국물 내기 전에 볶으면서도 상한 게 아닌가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무, 감자, 양파도 전부 처리했다. 저번에 만들어놓고 한 번도 먹지 않았던 닭육수도 처음으로 써봤다. 하여튼 이렇게 뭔가 제대로 된 요리를 해야 식재료가 줄어드는 게 보인다. 지금은 기숙사 지하실에 빨래를 돌려놓고 집에 올라와 있는데, 설거지를 하려고 봤더니 수세미까지 전부 세탁기에 넣어버려서 설거지를 할 수가 없어서 밥만 안쳐놓고 기다리고 있다.


  사실 오늘보다 어제 한 요리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자주 이용하는 요리 어플이 설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꼭 새벽 3시 30분에 추천 레시피 알림을 보내는데 어제 알림으로 왔던 표고버섯 튀김이 너무 맛있어 보였다. 마침 그저께 양송이 버섯 사다놓은 게 있어서 호기롭게 요리법을 보는데, 맙소사 튀긴 버섯을 볶을 때 쓰는 양념치킨 소스를 만드는 데 케첩이 필요했다. 30분 정도 장을 또 보러 갈까(사실 장 보러 가는 김에 과자를 사오고 싶었다) 고민하다가 냉장고 야채칸에서 말라가는 토마토 생각이 나서 직접 케첩을 만들기로 했다.




  케첩을 만드는 거랑 버섯을 튀기는 것 중 뭐가 더 재미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결과물은 훌륭했다. 일단 케첩은 시판 제품처럼 맛이 강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간도 잘 맞춰졌고 무엇보다도 향긋하다. 냉장고에 있던 토마토 세 개를 전부 사용하는 부수적인 이점까지 있었다. 버섯 튀김은 또 다른 의미에서 뜻 깊은데, 그 동안 세 번이나 튀김 요리를 시도했는데 매번 튀김옷이 저절로 풀려버리는 바람에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밀가루를 묻히기 전에 계란옷을 입혀서 성공했다. 나도 이제 두 번 튀겨서 튀김옷을 바삭바삭하게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ㅠㅠ그리고 직접 만든 케첩을 넣어서 만든 소스도 진짜 치킨 소스맛이 나는 데다 버섯 자체가 닭고기보다 부드러워서 정말 맛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모든 요리들 중 가장 맛있었다. 비록 버섯 양이 많지 않아서 세 끼 먹을 만큼밖에 안 나와서 이젠 없지만. 


  빨리 빨래가 다 됐으면 좋겠다. 건조가 끝나려면 아직도 20분이나 남았다. 세탁실에 내려가기 전에 밥이나 반찬통에 옮겨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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